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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화재 적응성 불분명한 소화기에 ‘조달청 혁신제품’ 지정 논란
정부 마련 인증 기준 통과 못 한 소화기인데… 조달청 “문제없다”
성능 검증 없이 기업 제시 정보로만 지정 “실제 성능 보장 어려워”
전문가 “리튬배터리 소화기 기준 정립하려는 정부 노력 반하는 일”
최누리 기자   |   2025.12.24 [09:24]

▲ 올해 9월 혁신제품으로 지정된 A 사의 ‘전기차 및 리튬배터리 화재전용 소화약제 및 소화장치’  © 혁신장터 캡처

 

[FPN 최누리 기자] = 조달청이 배터리 소화 효과를 알 수 없는 소화기를 ‘혁신제품’으로 지정해 논란을 낳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배터리 소화기 인증을 통과하지 않았음에도 정부로부터 소화 성능이 공식화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자체나 공공기관들이 배터리 화재 적응성이 불분명한 소화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조달청은 올해 9월 A 사의 ‘전기차 및 리튬배터리 화재전용 소화약제 및 소화장치’를 혁신제품으로 지정했다. 

 

혁신제품은 조달청이 상용화 직전 제품을 혁신시제품 평가와 조달정책심의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혁신성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혁신제품으로 지정되면 최대 6년간 수의계약이 가능하고 조달청 예산으로 제품을 구매해 수요기관에 제공하는 시범구매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다. 또 공공기관의 전체 물품구매액에서 1~2%는 혁신제품으로 구매해야 한다. 

 

문제는 해당 제품이 ‘전기차와 리튬배터리 화재전용’이란 명목으로 혁신제품 지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에 따르면 혁신제품 지정을 받은 A 사는 AㆍK급 강화액으로 소화기ㆍ소화약제 형식승인을 받았다. 이는 일반화재(A급)와 주방화재(K급)에 대한 성능만 입증됐음을 의미한다.

 

소방청은 화성 아리셀 화재 이후 ‘소화기의 소형리튬이온전지화재 소화성능의 KFI인증기준(이하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지난해 12월 제정ㆍ시행했다. 

 

KFI에 따르면 배터리 소화기 기준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인증을 통과한 제품은 단 1개다. 소화기 업계에서는 그만큼 배터리 화재 소화 성능 구현은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다는 평이 많다. 

 

A 사 제품은 아직 이 기준에 따른 인증을 받지 않았다. 소화기의 배터리 소화 성능이 입증되지 않은 조달청 혁신제품이 마치 국가로부터 성능을 보증받은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혁신제품 지정 과정에서 실제 성능을 확인하거나 배터리 소화기 인증 보유 여부를 살펴보지 않고 서류와 발표 위주로 검토가 진행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혁신제품 지정절차는 크게 서류 검토와 공공성 심사, 혁신성 심사, 현장 실태조사, 최종심의 순으로 진행된다. 우선 업체가 혁신장터를 통해 제안서와 규격서, 시험성적서 등을 제출하면 서류 검토 후 1단계 공공성 심사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는 분야 적합성과 공공현안 해결 여부, 개발완성수준(TRL) 등을 평가위원들이 서면으로 심사한다. 

 

공공성 심사를 통과한 이후에는 업체의 제출 제안서를 바탕으로 20분간의 발표(10분)와 질의응답(10분)으로 이뤄진 2단계 혁신성 심사를 받는다. 이후 조달정책심의위원회(공공수요발굴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혁신제품으로 지정된다. 그러나 실제 화재진압 실험이나 공인 기준에 따른 검증은 거치지 않는다. 업체가 제시한 데이터와 발표에 의존하는 셈이다.

 

소화기 업계에서는 혁신제품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배터리 소화기의 인증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소화기 업계의 ㄱ 씨는 “해당 제품이 혁신제품으로 지정된 건 결국 정부에서 만든 배터리 소화기의 기준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라며 “기업의 제시 자료만 보고 지정하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의 ㄴ 씨는 “우리도 형식을 획득한 소화기가 많다”면서 “이들 제품이 모두 배터리 화재에 적응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통과해야만 소화 성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조달청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해당 제품이 소화기와 소화약제 형식(A, K급)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심사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에서다. 또 혁신제품 제도는 상용화 전 시제품(기술개발단계 7~9단계) 발굴이 목적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혁신제품은 완전히 상용화된 제품이 아니라 시제품을 대상으로 지정한다”며 “지정 이후 시범 구매를 통해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이 배터리 소화 성능을 검증받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평가위원들은 심사 과정에서 업체가 제출한 시험성적서 등을 검토한다”면서 “해당 제품은 소방 관련 기관 입회하에 성능 테스트를 진행한 거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소방 관련 기관의 입회하에 성능 테스트를 진행했다는 주장은 소화기의 성능을 검증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14일 충북 청주시 미래지농촌테마공원에서 진행한 시연회에선 해당 업체가 전기차 화재진압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전기차에 화재를 일으킨 후 A 사 직원이 해당 소화약제를 특수 관창을 이용해 방사하고 이후 충북소방 소속 소방관들이 여러 소방장비를 활용해 화재를 최종 진압했다. 사실상 소화약제를 방사한 사실은 있지만 배터리 화재에 대한 소화기 성능 테스트는 없었다.

 

충북소방 관계자는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업체에서 진행한 실험과 본부에서 추진한 훈련은 별개”라며 “소화약제는 업체에서 알아서 진행한 부분이고 그 이후는 본부가 보유한 장비를 테스트하는 차원이었지 해당 업체의 소화약제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소방 분야 내에서는 소화기처럼 화재 시 성능을 입증해야 하는 제품의 경우 객관적인 성능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혁신제품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소방용품 검ㆍ인증 체계마저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 또는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를 겪으면서 성능이 불분명한 소화기가 무분별하게 홍보ㆍ판매돼 국민이 혼란을 겪는 상황”이라며 “조달청의 유사 혁신제품 지정은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갖추려는 정부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배터리 소화기 기준을 받은 제품과 혼동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며 “해당 혁신제품 인정을 배터리 소화기 기준 통과까지 보류하거나 그 이후 재지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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