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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119] “덜 뜨거운 셀은 뭐야?”… 전북소방 실화재 훈련시설에 가다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5종’ 전국 최초 구축ㆍ운영… 벤치마킹 잇따라
‘카렐 램버트’ㆍ‘션 라펠’ 교관 노하우 융합, 국제 수준 실화재 교관진
“보건ㆍ안전이 최우선”… 콜드 드릴, 디자, 집진ㆍ정화ㆍ제독설비까지
김태윤 기자   |   2025.11.03 [10:00]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에 등장하는 대사다. 태어나자마자 완성되는 사람은 없고 배움과 성장을 통해 인격을 형성해야만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접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소방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지키는 든든한 소방공무원으로 거듭나려면 교육ㆍ훈련이라는 담금질이 필요하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기 전까진 재난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긴커녕 자기 안전조차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담금질 중 가장 ‘핫(Hot)’한 과정은 단연코 ‘실화재 훈련’이다. 불을 제대로 경험한 대원과 그렇지 못한 대원의 차이는 ‘생’과 ‘사’를 가를 만큼 현격하다는 게 일선 베테랑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나라 실화재 훈련의 역사는 10여 년 전 시작됐다. 현재는 전국 대부분 소방학교에서 훈련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중앙과 경기소방학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교육생 수용 능력이 떨어지고 시설ㆍ장비가 열악한 건 물론 교수(이하 교관)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 왔다.

 

이 가운데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5종’을 모두 갖춘 훈련장이 곳곳에 신설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소방청이 규정한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5종’은 ▲백드래프트셀 ▲플래시오버셀(데모셀) ▲어택셀 ▲T셀 ▲멀티스토리셀을 뜻한다.

 

이 중 전북은 지난 7월 훈련장 구축과 시범훈련을 모두 마치고 9월 22일 본격적인 훈련 과정 운영에 돌입했다. 그간 표준 훈련 셀 중 일부를 보유ㆍ운영해 온 소방학교는 있었지만 5개 셀 전체를 아우르는 곳은 없었다. 전북이 최초인 셈이다.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5종’은 어떤 형상이고 이를 활용한 실제 훈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궁금증을 참지 못한 <119플러스>가 전북소방교육대를 찾아 불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전북소방교육대 실화재 훈련장은?

 

전국 최초로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5종을 전부 구축한 이곳은 K-실화재 훈련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북 장수군 계남면 호덕리 소방안전타운 내 8천㎡ 규모 부지에 총사업비 39억7600만원을 들여 조성됐다. 훈련용 셀 외에도 이론교육동과 창고 등 6개 단층 건물, 대규모 집진ㆍ정화설비 등을 갖췄다. 2024년 첫 삽을 떴고 이듬해인 지난 7월 준공을 축하하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이 완공되기 전까지 전북엔 실화재 훈련장이 없어 전북소방 화재진압대원들은 광주소방학교나 중앙소방학교 등 타 지역 훈련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대한민국 소방은 모두 한 식구라지만 화재 교육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실화재 훈련을 멀고 먼 친척 집(?)까지 가서 받아야 한다는 건 내심 서러운 일일 테다.

 

전북소방교육대 실화재 훈련장은 전북소방인이 마음 한편에 숨겨둔 그간의 설움을 다 풀고도 남을 만큼 근사하게 완성됐다. 전국 최고 수준의 실화재 교육ㆍ훈련을 제공한다는 점에선 또 하나의 자부심까지 되고 있다. 

 

새 건물 냄새가 채 다 가시지도 않았지만 이미 차세대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중 최초ㆍ우수 사례로 알려져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실화재 훈련의 전통적 명가인 중앙소방학교를 포함해 서울ㆍ경남ㆍ강원ㆍ광주ㆍ대구소방본부가 벤치마킹을 위한 견학을 다녀가기도 했다.

 

전북소방교육대 실화재 훈련장이 지닌 가장 큰 의의는 표준 실화재 훈련시설 5종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점과 대규모 집진ㆍ정화설비, 개인 제독설비로 훈련생의 건강에도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세계적 수준의 전문 교관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백드래프트셀


산소가 부족하거나 훈소 상태인 실내에 산소가 일시적으로 다량 공급될 때 연소 가스가 순간적으로 발화하는 현상인 백드래프트를 구현하는 셀이다. 백드래프트 관찰은 물론 전조 증상과 연기에 대한 판별 능력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플래시오버셀|화재성상 훈련장

 

화재 진행 단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복사열의 위험성과 개인보호장비의 중요성 등을 인지하는 데 주안점을 둔 셀이다. 순간적인 연소 확산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어택셀


선착대 대원의 화재 진압 능력 향상을 위한 셀이다. 화재 진압 시 문 개방 절차와 호스 전개, 관창 조작, 주수 기법 등의 훈련이 진행된다.

 

T셀


상부에서 바라봤을 때 T자 형태의 구조물로 전술훈련을 위한 셀이다. 전북의 경우 지하층 화재 상황을 가정한 채로 팀 단위 화재 진압과 생존자 구출 등의 훈련이 이뤄진다.

 

멀티스토리셀


대규모 화재와 복합 재난 사고 대응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셀이다. 2층 이상 다가구주택, 지하실, 노래방, 고시원 등을 배경으로 팀 전술훈련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집진ㆍ정화설비


쾌적한 교육ㆍ훈련 환경과 대기오염 방지를 위해 각 셀에서 발생한 연기와 가스를 빨아들인 후 정화하는 시설이다. 고온의 굵은 분진을 선별ㆍ제거하는 싸이클론과 미세 분진을 고효율로 제거하는 백필터, 초미세 입자까지 제거하는 스크러버 등으로 구성된다.

 

제독설비

 

훈련 후 개인보호장비의 오염을 줄이는 설비다. ㄷ자 형태의 통로를 걷기만 해도 거의 모든 방향에서 분사되는 물줄기로 잔여 유해물질을 씻어내 준다. 사용된 물은 정화 작업을 거친 후 방류된다.

 

세계적 수준의 교관진


8명의 교관 모두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4일까지 벨기에 정부 공공교육기관인 ‘캠퍼스 베스타(Campus Vesta)’에서 카렐 램버트(Karel Lambert) 교관의 지도하에 ‘CFBT Attack Cell 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난 7월 14일부터 25일까지는 션 라펠(Shan Raffel) 강사를 초빙해 ‘CFBT Instructor Lv Ⅱ 과정’을 교육받기도 했다.

 

 

무거운 마음 안고 2년여 만에 다시 전북으로

 

전북 장수군으로 향하는 길은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고 성공일 소방교(1계급 추서)의 영결식 취재를 위해 김제에 다녀온 뒤 첫 전북행이어서다. 고 성 소방교는 2023년 3월 김제 단독주택 화재 현장에서 고립된 70대 노인을 구조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향했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내년이면 나도 순직 당시 성 소방교의 나이가 된다. 하지만 타인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던 그 살신성인의 각오와 용기는 아직도 헤아리기 어렵다. 더 이상 화마가 삼키는 청춘과 유족의 눈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차에 올랐다. 

 

당초엔 최누리 선배와 둘만 참여하려고 했지만 고작 두 명의 기자를 위해 교관님들이 실화재 훈련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훈련은 통상 8명이 한 조다). 성의를 보이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시키고 싶었다.

 

그 한 사람에 김건우 PD가 ‘당첨’됐다. 나와 최누리 선배는 <119플러스> 독자들을 위해서라면 고생을 마다한 적이 없고 실제로 여러 취재 현장에서 ‘피ㆍ땀ㆍ눈물(피는 과장이다)’을 함께 흘렸던 터라 이번에도 별생각 없었지만 김 PD는 달랐다.

 

입사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불구덩이(물론 안전하다)로 밀어 넣어도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김 PD는 선뜻 실화재 훈련을 체험하겠다고 말했다. 좀 더 생생한 영상을 담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나이는 어려도(동갑이다) 참 배울 점이 많다.

 

“평소 사우나를 좋아해서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재밌을 것 같은데요? 하하”

 

‘선 넘지 마라’와 ‘노 플레이(No Play)’

본격적인 실화재 훈련에 앞서 사전 브리핑이 진행됐다. 훈련의 전반적인 흐름과 학습 목표는 물론 안전 관련 주의 사항을 안내받는 과정이다. 일반 재직자 훈련 시에도 유사한 브리핑 절차가 있다.

 

많은 내용을 새롭게 알게 돼 유익했지만 잠시 후 화마와 마주 서기로 한 내 머리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핵심은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당장 기억해야 할 건 두 가지였다. ‘선 넘지 마라’와 ‘노 플레이(No Play)’.

 

‘선 넘지 마라’는 말 그대로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세상 다정한 우리 교관님들(?)이 이리 매정하게 말씀하신 건 아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아 스스로 정색하며 간결하게 정리한 표현이다.

 

 

전북 실화재 훈련장은 평상시엔 장내 이동에 제약이 없지만 어느 셀에서든 훈련이 시작되면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바로 ‘콜드 존(Cold Zone)’과 ‘웜 존(Warm Zone)’, ‘핫 존(Hot Zone)’의 구분이다.

 

훈련장 바닥엔 빨간색 선과 파란색 선이 있는데 셀에서 가장 가까운 빨간색 선 안쪽이 ‘핫 존’이다. 직접적인 복사열과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이 구역에선 공기호흡기를 포함한 모든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빨간색 선과 파란색 선 사이 완충지대는 ‘웜 존’이다. 비교적 유해물질 농도가 떨어지고 장비ㆍ신체를 제독하는 공간이다. 공기호흡기는 벗어도 되지만 즉시 KF94 마스크와 니트릴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파란색 선 바깥쪽은 ‘콜드 존’이다. 셀에서 가장 먼 구역이라 위험도가 낮은 편이다. 이곳에선 샤워까지 모두 마친 깨끗한 상태여야 한다. 복장 제한 없이 마스크를 벗은 채 수분 섭취 등이 가능하다.

 

‘노 플레이’는 실화재 훈련을 중단시킬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몸이나 장비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되거나 훈련을 중단해야 할 기타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면 교관을 포함한 누구나 외칠 수 있다.

 

 

‘노 플레이’가 선언되면 모든 인원은 ‘노 플레이’를 따라서 외친 후 이유를 묻지 않고 일단 셀 밖으로 신속히 나가야 한다. 훈련 중단ㆍ재개 여부는 셀 밖에서만 논의한다.

 

대원 안전을 위한 조치로 이 역시 엄격히 지켜지는 이곳의 룰이다. 다만 학교 폭력 방지를 위해 “멈춰!”라고 외치는 공익광고 생각이 난 건 나뿐일까.

 

잠깐의 민망함은 있겠지만 훈련을 무리하게 받다가 부상을 당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범생이 된 기분으로 손을 번쩍 들어 실제 화재 현장에서도 ‘노 플레이’를 외칠 수 있는지 질문했다. 순간 교관님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기자님,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현장에서도 ‘노 플레이’를 외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계속 홍보할 계획입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훈련을 강행하는 건 결코 동료를 위한 배려가 아니에요.

부상으로 팀에 공백을 만드는 것보다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요?”

 

콜드(Cold)는 알겠는데, 왜 드릴(Drill)이죠?

전북 실화재 훈련장의 모토(Motto)는 ‘안전, 안전, 안전’이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훈련생의 보건ㆍ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실제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곳에선 시뮬레이션 사전훈련, 일명 ‘콜드 드릴(Cold Drill)’을 통해 교육생의 안전을 극대화한다.

 

 

콜드 드릴…. 참 좋은 절차지만 내겐 약간의 흑역사(?)로 남았다. 교관님께서 전북 실화재 훈련장의 차별성 중 하나로 이 절차를 소개하시는데 이렇게 되물어서다.

 

“콜드와 핫으로 구분하면 사전훈련이 콜드인 건 알겠는데, 

드릴은 왜 드릴이죠?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그렇다. 내게 ‘드릴’이란 나무나 금속에 구멍을 뚫는 공구다. ‘드릴’에 ‘반복적인 연습ㆍ훈련’ 따위의 뜻도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멋쩍게 웃으시는 교관님과 고개를 떨군 최누리 선배. 

 

90년대생이 받은 주입식 영어교육의 한계를 절감하며 수치심에 몸을 살짝 떨어야만 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내 전공은 ‘국어’ 국문학이다.

 

아무런 장비 없이 마스크와 니트릴 장갑만 착용한 채 진행된다고 해서 콜드 드릴을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친다. 사전 브리핑 내내 웃음과 농담을 건네시던 교관님들이 이때부터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기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캄캄한 셀 안에서 숨이 턱턱 막히고 울렁거렸지만 엄숙한 분위기에 숨소리 한 번 편히 낼 수 없었다. 교관님들은 온몸으로 ‘훈련은 지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콜드 드릴이 없었다면 패닉에 사로잡히기 마련인 실화재 훈련 셀 내부에서 분명 나는 ‘새우깡’이 되고 말았을 거다. ‘새우깡’은 손이 많이 가는 초심자를 지칭하는, 선배들의 애정이 담긴(?) 현장 속어다.

 

이걸 다 입고 화재 현장으로 간다고?!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등 개인보호장비를 모두 착용하자 몸이 천근만근 너무 무거웠다. 방화복 내부는 이미 푹 젖어 마치 두꺼운 솜이불을 두르고 온천에 뛰어든 것 같았다.

 

등지게에 달린 벨트는 코르셋처럼 몸을 콱 조여왔고 면체를 쓴 얼굴은 터질 것 같이 부풀었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데 어떻게 이 상태로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공포스러운 건 숨소리였다. 처음엔 숨을 전혀 쉴 수 없어 아차 싶었지만 강하게 들이켜자 공기호흡기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쒜헥, 쒜헥’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 분명 숨을 쉬고는 있지만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깊게 들이마셔도 가슴이 갑갑했다. 그야말로 ‘멘붕(멘탈의 붕괴)’이 왔다. 호루라기 같은 숨소리가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렸다. 이렇게 숨을 과하게 쉬다 보면 공기 잔량이 부족해질 것 같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평소 엄살이 심하다는 말을 듣곤 했지만 이건 일반적인 수준의 불편함이 아니었다. 폐쇄 공포증 증세에 가까웠다. ‘노 플레이’라는 네 음절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셀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노 플레이’를 외치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 같았다.

 

날 믿고 이곳까지 보내주신 <119플러스> 유은영 편집부장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전부 망칠 순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다. 

방독면도 10초 내에 쓰던 내가 아닌가. 

하나, 둘, 삼, 넷! 무적 포병은 포기를 모른다’

 

속으로 군가까지 불렀다. 오해를 남길까 밝혀두자면 나는 포병단에서 전우들의 당분 보급 등을 책임지는 PX병으로 복무했다. 찬란했던 전성기(?)를 떠올리자 용기가 샘솟았고 조금씩 상태가 안정됐다.

 

무섭도록 아름다운 당신의 이름은 ‘불’

본 실화재 훈련은 30~40분가량 진행되지만 이에 앞서 미리보기와 같은 전북소방교육대만의 절차가 있다. 바로 ‘디자(DIZA)’다.

 

사람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온 이 훈련은 가연물로 목재 대신 종이박스를 사용해 30~40초 만에 점화부터 롤오버까지의 화재 성상을 빠르게 관찰하는 게 핵심이다. 전북소방교육대 실화재 교관들이 벨기에에서 배운 후 국내에 처음 도입시켰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제대로 된 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불의 첫인상은 그저 아름다웠다. 우주의 한 공간에 온 것처럼 순식간에 압도감과 평안을 느꼈다.

 

감히 LED 불빛 따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초월적인 감각이었다. 맹렬한 불의 소리는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이 웅장하게 연주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이토록 아름다운 불이 적어도 수천 년에 걸쳐 인류와 문명을 위협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빛과 에너지처럼 불이 주는 선물만 원하는 건 욕심일까? 무섭도록 아름다운, 불을 향한 애증이 깊어만 간다.

 

그날 우리는 ‘천국’을 봤다

어택셀에선 본 실화재 훈련이 진행됐다. 나와 최누리 선배, 김건우 PD는 한 줄로 서서 교관님들의 지시에 따라 순서를 바꿔가며 화재 진행 과정을 관찰했다.

 

점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연료인 목재 더미에 열분해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연기를 통해 가스의 움직임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발화지점 약 1m 앞까지 기어서 이동했다.

 

불 앞에 도착해선 완전히 엎드려 누운 채 고개만 돌려야 했다(잠깐이지만 누워서 좋았다). 몸에 열이 축적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방화복도 이런 무시무시한 열 앞에선 무적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불안했다.

 

 

불이 커지자 진압을 시작했다. 관창을 분무로 두고 좌우에 고루 주수한 후 직사로 바꿔 화점을 직접 공격하는 방식이다. 콜드 드릴과 사전 관창 주수 훈련을 통해 연습하고 왔지만 막상 불 앞에 서니 쉽지 않았다. 물이 찬 호스는 생각보다 무겁고 반동으로 인해 방향 조절이 힘들었다.

 

본래 8명 정도의 훈련생이 돌아가며 하는 훈련이기에 우리는 여러 차례 진압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과장을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숨이 머리끝까지 차서 울렁거림과 함께 당장이라도 탈진할 것 같았다. 운동장을 50바퀴쯤 돈 기분이었다. 다년간의 야근 생활로 완성된 저질 체력을 깨닫게 되자 스스로가 불쌍해졌다.

 

가장 걱정했던 뜨거움은 의외로 참을 만했다. 습식 사우나의 모래시계를 한 5번 돌리고 한계에 임박한 정도의 기분이었지만 분명 그나마 참을 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관님들의 기량이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밀한 화재 컨트롤로 교육에 필요한 화재 성상을 모두 구현하면서도 열은 다른 시도 훈련장에 비해 70~80% 정도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했다. 이 역시 훈련생의 부상 가능성을 낮추는 세심한 배려다. 

 

 

훈련이 끝나고 열린 문이 ‘천국의 문’으로 보였다. 하늘이 어찌나 밝고 시리게 빛나던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제독을 위해 ‘웜 존’으로 이동하기 전까진 갑갑한 공기호흡기를 집어 던질, 아니 벗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좀 살 것 같았다. 그날 우리 <119플러스>의 세 남자는 잠시지만 천국에 있었다.

 

샤워도 훈련이다! 꼼꼼한 제독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곧바로 향한 곳은 제독(Decon)시설이다. 바닥을 제외한 사방에서 쏘아지는 물줄기가 온몸을 구석구석 핥았다(?). 유해물질을 씻어냈다기보다는 씻겨진 기분이었다.

 

신기한 건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았다. 한편에 준비된 솔과 세제로 꼼꼼히 추가 세척을 했다. 장비류를 벗은 후엔 특수 세정 티슈로 한 번 더 닦아냈다.

 


교관님들은 방화복을 벗고도 더위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를 물이 가득 담긴 세면대(?)로 안내했다. 팔을 겨드랑이 부근까지 집어넣자 열이 빠르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가장 빠르게 심부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이라고 했다.

 

 

완전히 ‘콜드 존’으로 이동한 후엔 수분 보충을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혼자 이온음료 3캔과 500㎖ 생수 2병을 비웠다. 물론 얼마든지 마셔도 좋다고 하셨지만 교관님들까지 모두 드시기엔 음료가 충분치 않아 보였다.

 

캔을 뜯을 때마다 눈치가 보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잠시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지면을 빌려 사죄드린다.

 

“샤워도 훈련의 일환이니 꼭 따라주셔야 합니다”

 

최누리 선배, 김건우 PD와의 샤워는 참 생경한 경험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알몸으로 샤워한다는 건 정말 민망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샤워를 미루지는 않았다. 이날 처음 뵌 교관님들과의 샤워는 더 민망했을 거다.

 

나와 김 PD는 쭈뼛거리며 옷을 벗다가 속옷을 벗을 타이밍이 되자 괜히 다른 옷가지 정리를 이어갔다. 누가 봐도 더 이상 정리할 거리가 남지 않자 우리는 최후를 직감한 사람들처럼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최누리 선배는 평소의 쿨한 캐릭터를 증명이라도 하듯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다행히 샤워는 금방 끝났다. 눈동자가 계속 위를 향했기에 누가 봤으면 머릿속으로 가계부를 정리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여담이지만 이날 선배와 김 PD는 여러모로 참 훌륭했다.

 

디브리핑

 

실화재 훈련의 완성은 디브리핑이다. 경험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구술하는 과정에서 이해가 한층 넓어지기도 하고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시각도 알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교관들은 팀의 미비점을 지적하거나 개선 방향을 객관적으로 제시해 준다.

 

하지만 이날 기자들이 디브리핑에서 화재 대응 전술의 기술적인 디테일까지 논하기엔 내공이 부족했다. 사실 훈련을 무사히 마치는 데 급급해 뭘 배웠다기보다는 체험했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 훈련 소감에 대한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최누리 기자  “화재 현장을 멀리서만 봤지 그 내부를 깊숙이 보진 못했는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돼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김건우 PD  “화재 시 연기가 많이 나서 시야가 무척 제한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훈련 땐 앞뒤로 움직이면 됐지만 구조가 복잡한 실제 현장에선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안 됩니다”

 

김태윤 기자  “현실적으론 어렵겠지만 전 국민이 이 실화재 훈련을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소방공무원분들의 처우 개선이 왜 필요한지, 왜 화재를 예방하는 게 중요한지 상당 부분 공감하시게 될 것 같아요”

 

장준희 교관 “현장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이 실화재 훈련장처럼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없습니다. 제독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유해물질이 많은 곳에서 공기호흡기를 교체하거나 간식도 드셔야 합니다. 또 이곳과 달리 내부 연료의 종류와 양도 알 수 없고 구조대상자가 존재하기에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합니다. 기자님들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계신 분들께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종택 팀장  “팀원들과 손발을 맞춰 실질적인 교육을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계속해서 개선할 점을 찾아나가겠습니다. 전북소방교육대 실화재 훈련장이 힘차게 출발할 수 있도록 소방가족 여러분의 많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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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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