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인천 청라동 소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264세대 822명에 달하는 입주민을 하루아침에 이재민으로 만든 화재였다.
불은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멀쩡히 서 있던 전기차에서 시작됐다. 충격적인 건 당시 이 차량은 충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충전이나 추돌사고 등 배터리 충격이 전제돼야 한다는 전기차 화재에 대한 그간의 상식을 한순간에 뒤집어 버린 사고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우리 아파트에서도’, ‘내 차에서도’ 언제든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19~’23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57건이다. 2019년 7건에 불과하던 전기차 화재는 2020년 11, 2021년 24, 2022년 43, 2023년 72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의 경우 7월까지 32건이 발생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엔진이 아닌 전기모터를 이용해 구동하는 방식이다.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소방 분야에는 고민이 늘고 있다. 바로 화재에 대한 우려다.
전기차 화재는 대부분 배터리에서 시작된다. 열ㆍ전기ㆍ기계적 요인으로 배터리가 충격을 받으면 열폭주 현상이 나타나는데 일반적인 진압 방식으론 불을 끄기 어렵다.
소방은 현재 다양한 장비를 활용하며 전기차 화재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차량 하부로 방사장치를 투입한 뒤 물을 뿌려 배터리팩을 냉각하거나 배터리팩을 천공하고 물을 직접 주수해 열폭주를 멈추게 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딥테크 스타트업 기업인 (주)리 모빌리티가 개발한 ‘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장비는 배터리팩을 천공해 소화약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화재를 진압한다.
2024년 7월 조달청 혁신제품에 선정되면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혁신제품 시범 구매 대상으로까지 매칭되면서 소방청(11)을 비롯해 한국가스공사(1), 한국도로공사(1), 서울시 중구 시설공단(1) 등에 14대의 공급이 확정됐다.
<119플러스>가 최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사이에서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 개발로 주목받고 있는 (주)리 모빌리티를 찾아 이재환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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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모빌리티는 어떤 기업인가?
2022년 9월 설립한 딥테크 스타트업이다. 생소할 수 있겠지만 딥테크 스타트업은 과학과 공학 기반의 원천ㆍ독보적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후 이를 사업화하려는 10년 이하의 기업을 지칭하는 단어다.
지난 2023년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1000+ 스타트업에 선정되면서 공식적으로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딥테크 스타트업이 됐다.
구성원은 현재 8명으로 이 중 5명이 박사학위 보유자다. 각자의 전공에 대한 경험과 역량을 집결해 최고의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전기차 안전과 관련, 국내외 특허를 비롯해 관통 노즐 형상에 대한 출원 등 20여 건의 지식재산을 보유 중이다. 연간 10여 건의 특허 확보를 목표로 매일같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로 주목받고 있다. 어떤 제품인가.
전기차 배터리는 대부분 차량의 하부 금속 하우징(케이스)에 내장된 채 장착된다. 우린 전기차에서 배터리 열폭주로 인한 화재 시 차량 하부를 관통한 후 소화액을 고속으로 주입하는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지난해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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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비의 특징은 불이 난 전기차에 소방관이 직접 접근하지 않고도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거리에서 조종장치를 이용해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 하부로 관통장치를 이동시킨 후 구멍을 내고 소화약제를 배터리에 직접 분사한다.
배터리가 탑재된 위치를 정확히 관통할 수 있도록 레이저를 이용해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했다. 또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도록 멀티 분사 노즐을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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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는 현재 조달청 혁신제품에 등록돼 있다. 단순히 조달청의 평가 때문에 혁신제품으로 지정된 게 아니라 소방청 수요 공고를 통해 소방장비로 개발된 제품이다.
타 사 제품과 달리 ‘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는 물이 아닌 소화약제를 사용한다. 배터리 냉각에 다량의 물을 사용하는 게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열폭주 전성기에 물이 주입될 경우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관통장치에는 유압으로 밀어 올리는 특수 형상의 강한 노즐 2개가 장착돼 있다. 배터리 하우징에서 모듈이 배치된 좌측과 우측을 각각 담당한다. 배터리팩 천공 후엔 노즐을 통해 내부로 신속하게 소화약제를 주입하는데 열폭주가 시작된 배터리와 아직 전이되지 않은 배터리까지 모두 침전시킨다.
주입된 소화약제가 밖으로 다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천공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배터리를 침전시킨 소화약제가 팩 내부에 그대로 담겨있어 혹시 모를 재발화를 방지해준다.
조달청 혁신제품으로 선정됐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창업 이전부터 전기차 화재의 심각성을 예상하고 연구진들과 함께 기술적 구상과 특허 출원, 설계와 제작을 진행했다.
2023년 말 혁신제품 공고를 통해 소방청에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의 수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운이 좋게도 그간 우리가 준비해 온 기술을 상당 부분 적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본격적으로 시제품 성능을 검증하고 혁신제품 심사를 신청했다.
서면 평가와 발표평가, 특허 적용성 검토 등 여러 단계를 무사히 마치고 혁신성과 공공성까지 인정받아 2024년 7월 마침내 혁신제품에 선정됐다.
이후 혁신제품 시범 구매 대상 품목에 ‘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가 포함되자 다수의 소방관서를 비롯해 공공기관 등에서 문의가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4개 기관이 매칭되면서 납품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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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모빌리티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다. ‘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는 박사급 인력 다수가 다년간의 노력 끝에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물론 연구진의 학력이 높아야 기술도 훌륭하다는 고정관념은 아니다.
다만 전기차 화재 자체가 복합적이고 위험하며 이전에 없던 양상이므로 기술적인 접근에 신중해야 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리 모빌리티의 연구진은 IT융합ㆍ정밀기계ㆍ기계공학ㆍ금속공학 분야의 공학박사를 비롯해 섬유ㆍ의류 분야의 이학박사 등으로 구성된다. 무엇보다 학술적이고 실무적인 연구개발에 강하다.
흔히 엔지니어와 개발자, 연구자들은 내가 이 분야에서 최고라는 자가당착에 빠지곤 한다. 당연히 기술은 최고여야 하지만 늘 다른 기술을 파악하고 존중하며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내 기술만을 짝사랑하는 건 결국 혼자만의 슬픈 사랑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기술에 또 다른 기술이 더해지면 더욱 좋은 기술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우린 관련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거다. 기술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련 분야에서 어떤 기술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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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모빌리티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공공조달은 물론 민간 시장에서의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다. 먼저 2025년 3월 나라장터엑스포와 5월 대구에서 열리는 국제소방안전박람회 참가를 확정했다. ‘원격 조작 로보틱스 전기차 화재진압 장비’는 견인형과 이동형 등으로 개발됐는데 국제소방안전박람회에서 2종 장비에 대한 시연을 계획 중이다.
현재 대기업 몇 곳과 납품, 협업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중에는 NDA 체결 기업도 다수 있고 대형 건설사와 해운물류회사, 완성차 1차 벤더도 포함된다. 성공적인 수주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마케팅 역량을 충분히 갖추려면 자금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 지난해 Seed 투자는 국내 메이저급 투자사에서 진행했다. 이와 연계해 중소기업벤처부의 R&D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는 소방청 납품을 계기로 매출 기반을 다져 Pre-A 투자 라운드를 20억원 규모로 유치하고 제품군 다변화와 대규모 양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산 설비와 인력 확충에 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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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전기차 화재는 매우 시급한 문제다. 이슈 몰이로 고가의 장비를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전은 늘 주위에, 손 닿는 곳에 갖춰진 안전 설비로 지켜진다. 몇 번이나 사용할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더욱 신중하게 수억 원에 육박하는 중장비급 장비를 도입하길 소방 분야에 당부하고 싶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공통점만으로도 향후 오랜 기간 사회적 위험이 될 거다. 우린 기술을 우선하는 기업이다. 금전적인 이익보다 우리의 기술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을 늘 상기하며 밀집된 주차, 충전 환경에 최적화된 전기차 화재 솔루션을 개발ㆍ공급하는 기업이 되겠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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