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최누리 기자] = 위험물시설 안전산업의 현황을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6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용혜인ㆍ양부남ㆍ이상식ㆍ정춘생ㆍ채현일ㆍ허종식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사)한국위험물안전협회(회장 손주달, 이하 협회)와 (사)한국소방기술사회(회장 박경환)가 주관한 ‘위험물산업 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협회 발족 10주년을 맞아 전문가들과 위험물 사고 예방을 위한 기술ㆍ현안을 공유하고 정책 개선 방향을 제안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손주달 회장과 박경환 회장을 비롯해 위험물 안전관리 관련 전문가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윤명오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세미나에선 박경환 회장이 발제자로 나섰다. 토론에선 ▲함승희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김승수 한국소방기술사회 위험물기술위원장 ▲이택규 (주)위이엔지 부설 위험물안전관리연구소장 ▲이상범 (주)세이프 대표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이날 나온 세미나의 주요 발언 내용을 정리했다.
“전문가에 의한 허가 체계 마련돼야”
박경환 한국소방기술사회장
위험물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큰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5년간 발생한 위험물 사고는 343건에 달한다. 이로 인해 65명이 숨지고 280명이 다쳤다. 피해액은 1100억원이다. 2022년 기준 1건당 4억5천만원의 재산피해가 났기도 했다.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선 가연물과 산소공급원을 별도로 분류하고 있다. 가연물은 가연성 고체(제2류)와 자연발화ㆍ금수성 물질(제3류), 인화성 액체(제4류), 자기 반응성 물질(제5류)이다.
특히 위험물의 약 95%가 인화성 액체다. 일상에서 접하는 경유나 등유, 증류 등의 주요 물질이기도 하다. 이런 가연물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유해 화학물질, ‘화학물질관리법’에선 화학물질에 해당된다.
그러나 소방법상 위험물은 화재ㆍ폭발 전문성이 낮은 산업안전ㆍ화학물질 분야에서 주로 관리하고 있다. 소방청에선 이런 주요 위험물에 대한 현황 등만 관리하고 규제나 산업 발전 등을 적극적으로 하진 않는다.
위험물 관리체계에선 여러 문제가 있다. 현재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서 선박, 철도 등의 운송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초기 대응에 나서는 소방관의 안전 확보를 위해 규제 사각지대로 남은 영역을 규제 영역으로 편입해야 한다.
또 위험물에 의한 허가 체계가 수립돼야 한다. 위험물시설은 허가와 공사, 준공 등의 과정을 거친다. 허가의 경우 건축, 소방, 산업안전, 화학물질 등 여러 법에선 전문성을 인정받은 자 또는 업체에서 허가를 대리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위험물은 허가 주책임이 사업주로 돼 있다. 불법 인허가 사례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려면 해당 과정부터 전문 기술자가 참여해 검토ㆍ점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생애 주기적인 관리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관련법에선 위험물안전관리자를 지정하게 돼 있다. 이후 예방규정을 작성하고 정기점검을 받는다. 특히 정기점검은 관계인이 연 1회 진행하고 옥외 탱크 저장소 중 50만ℓ 이상은 11~13년 주기로 정기점검을 받는다. 이 대상을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 점검하고 있지만 민간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 체계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보통 소방서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소방서 위험물 담당자는 전문성이 낮고 인력도 부족하다. 지정 수량 이상 위험물을 취급하는 모든 사업장으로 연 1회 이상 전문 기술자로부터 점검받고 그 결과를 소방서에 보고해 조치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성능 중심의 안전 평가체계의 전환도 요구된다. 공정안전관리(PSM) 등 성능평가를 통한 검증은 사업장에서 요구되는 공정상 변동 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토지를 구매할 수 없거나 한정적인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와 관련해 공학적인 검증과 평가법은 이미 충분하다. 성능 중심의 안전평가 체계 활성화를 위해 위험물 안전 전문가가 업무를 진행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리튬배터리, 위험도 기반 안전관리 규제체계 개선 필요”
함승희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위험물안전관리법’은 물질 중심의 규제다. 이 때문에 위험물이 없는 공간에선 방호 계획을 수립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니 화성 아리셀 공장 내 완성되지 않은 배터리가 있었다. 즉 위험 등급 개념이 적용되지 않은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방호 계획을 수립하는 형식으로 규제를 운영하다 보니 위험물 안전관리에도 어려움이 있다.
리튬배터리 내 전해질이 인화성 액체 특성을 갖는다. 이에 리튬배터리가 다량으로 보관될 경우 인화성 액체의 화재 위험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취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량 취급 또는 운반, 저장할 때 위험물을 어떻게 다룰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UN 운송기준에선 기타 위험물로 지정하는 등 기준을 마련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선 위험물을 등급화하고 이를 시설 운영자와 제도 설계자 등에게 해당 위험물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해설하는 체계가 없다. 앞으로는 이런 위험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위험물산업이 더 전문화되고 체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물 예방규정 평가대상 확대해야”
김승수 한국소방기술사회 위험물기술위원장
2023년 소방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위험물 제조, 취급, 저장의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인 곳은 10만9천곳이다. 이중 지정수량 3천배 미만은 약 10만5천곳으로 전체의 97%를 차지한다. 3천배 이상은 3689곳으로 3%에 불과하다.
위험물은 실생활에서 매우 밀접한 물질로 공업화되면서 사용량이 증가하고 종류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또 위험물 화재는 일반 건축 화재와 달리 성장기가 없이 즉시 최성기에 도달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화재 발생과 화재 확대 위험성이 매우 크다. 또 초기 소화가 실패할 경우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위험물 예방규정 평가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소방청에서 배포한 ‘위험물안전관리법’ 개정에 따른 위험물 예방규정 이행실태 평가 보도자료에 따르면 평가대상을 지정 수량 3천배 이상 대규모 위험물시설만 수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3천배 이상은 관리가 잘 되고 있다. 그 이하의 시설물 또한 화재 폭발이나 위험물 사고 시 대형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에 예방규정을 작성하는 대상과 평가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위험물시설에 대한 설계업 도입해야”
이택규 (주)위이엔지 부설 위험물안전관리연구소장
위험물시설은 지역과 지구, 지형, 저장ㆍ취급 형태, 물질 종류, 주변 상황 등 여러 환경 요인에 의해 검토할 게 많다. 하지만 소방서 위험물 담당자는 경험이 없는 데다가 2년마다 교체된다.
위험물 인허가와 검토는 해당 담당자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수준이다. 즉 민원 담당자의 개별적인 판단에 따라 허가가 이뤄진다. 위험물시설 설계업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위험물 설계업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여러 시설 기준이 마련됐음에도 사고 사례를 보면 보수나 개선, 개량 등의 작업 과정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위험물안전관리법’은 관리와 점검, 진단 부분이 미흡하다. 반면 ‘위험물안전관리법’ 이후 생긴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전문가에 의한 점검과 진단이 필요하다.
“위험물 안전관리에 대한 이원화 체계 구축해야”
이상범 (주)세이프 대표
석유화학 산업단지는 상당히 오래됐다. 1963년 대한석유공사는 울산에 국내 최초로 정유공장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보수나 점검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정유ㆍ석유화학 공장의 경우 설비 규모가 커질수록 설비관리기술 없이 공장 운영이 불가능하다. 석유화학 공장에서의 사고 원인 중 작업자 실수에 의한 사고는 20%인데 반해 설비 손상에 의한 사고는 무려 40%에 달한다.
관련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민간 전문기관에서 법규와 현장 상황을 컨설팅해 보완하고 안전관리 전문 협회에서 검증ㆍ확인 후 해당 관서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선 PSM 진단평가를 받기 전 등급별로 민간 전문기관에서 컨설팅을 진행해 보완ㆍ개선한다. 이를 통해 높은 등급을 받는 등 안전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또 민간 자율 위험물 안전관리 협의체에 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각 지역에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 업무에 대해 검토를 진행한다. 또 문제점과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토론하는 등 상호 협력체계를 만들면서 교류하고 있다.
하지만 협의체는 협회나 기관에서 규제하지 않은 민간 협의체다. 예를 들어 안전소통위원회나 안전협의회, 홍보협의회, 발전협의회 등이다. 이런 협의체에서 나온 사례나 전문 기술 등은 우리가 모르는 사항들이 많다. 이런 내용이 공유된다면 화재ㆍ폭발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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