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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일 년 살기- Ⅸ
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2024.12.02 [10:30]

끝없는 밤 그리고 끝없는 일

흔히들 남극의 극야기간엔 해가 뜨지 않아 밖이 어둡고 혹한의 날씨가 지속되다 보니 특별한 업무가 없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극야기간에 뭐하고 시간을 보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과연 그럴까? 물론 해가 있고 날씨가 온화한 하계기간보다는 업무량이 줄긴 하지만 그래도 장보고 과학기지는 항상 바쁘게 돌아갔다. 그래서 뭐 하냐고? 남극에서 동계기간 주요업무 중 하나는 바로 시설유지다. 

 

▲ 동계 외부 시설물 점검

 

24시간 기지의 전기공급을 책임져야 하는 발전 대원이나 전기 대원은 물론이고 기계설비 대원과 중장비 대원 등 시설유지반 대원들은 하계기간 못 한 기계설비와 시설 정비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부 시설에 대한 보수 역시 동계기간에 이뤄진다. 중장비 대원들은 기지 주변 이동통로 확보를 위해 수시로 쌓인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 동계기간 실내시설 보수작업

 

▲ 통신실 시설 보수작업

 

이렇게 시설유지 관련 업무와 중장비가 움직이는 업무가 진행될 때면 안전 대원인 나 역시 안전관리를 위해 작업에 함께 투입된다. 하지만 말이 안전관리지 결국 각종 작업의 보조자 역할을 하게 된다. 

 

▲ 동계기간 식당 타일보수 작업 중인 필자

 

▲ 본관동 시설을 정비하는 기계설비 대원

 

나름 대학 시절 방학 때 막노동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다고 자부했지만 장보고 과학기지에서는 난생처음 해보는 각종 시설관리작업 공정이나 기계설비 관련 일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거기에 안전업무까지 병행하다 보니 소방관인 내가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가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기지에도 여러 안전 관련 업무가 신설됐다. 작업 공정마다 해야 하는 안전프로그램을 시행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사실상 현장 안전관리자 업무를 수행하게 됐고 이로 인해 안전관리 업무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 전동공구 사용절차 안전교육

 

연구 대원들도 동계기간 진행 중인 연구 자료를 정리하고 각종 시설ㆍ장비 관리에 힘을 쓴다. 이들의 업무 역시 안전 대원인 나와 함께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예를 들어 연구 장비 교체를 위한 고공 작업을 할 때 동행해야 한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실험실 안전관리 업무도 관여하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약품이나 장비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연구반 대원들의 도움을 받거나 협력해 여러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 환경 정리와 같은 사소한 잡일까지 해야 하기도 했다.

 

▲ 연구실 위험성평가 환경개선 전

 

▲ 연구실 위험성평가 환경개선 후

 

처음엔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안전관리업무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지금은 안전 관련 업무 자격증 중 하나인 인간공학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렇게 다른 대원들과 함께 진행하는 업무 외에도 본연의 업무인 안전교육과 소방시설 점검 등 각종 업무를 병행했다. 특히 극야가 한참 진행 중인 6, 7월은 극지연구소의 모든 부서가 참여하는 정기 위험성평가와 심폐소생술 교육에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정기 위험성평가는 2주간 진행돼 모든 대원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줘야 했다. 나 역시 처음 해보는 업무였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진행했다. 하지만 많은 대원의 도움 덕에 성공적으로 정기 위험성평가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심폐소생술 교육은 이론과 실습으로 나눠 두 차례 진행됐다. 일반적인 심폐소생술 교육과 차별을 두고 심정지 인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여러 사례와 영상을 활용했다. 그 결과 기존 심폐소생술 교육보다 현실적으로 어려워했던 부분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

 

▲ 심폐소생술 이론 교육

 

▲ 심폐소생술 이론 교육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어느 날 단체대화방에 대장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 같이 축하할 경사가 생겼습니다. 금번 2023년 정기위험성 평가에서 우수사례로 장보고 과학기지가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해당 평가는 외부위원평가로 결과를 산정하여 산업안전 보건위원회에서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무려 외부위원평가 결과라고 합니다. 모두 열심히 노력하신 덕분이고 특히 정기 위험성평가를 이끌었던 안전 대원에게 감사드립니다”

 

▲ 위험성평가 우수 표창장

 

▲ 위험성평가 감소대책

 

앞서 특별히 공들였다고 언급한 정기 위험성평가가 좋은 결과를 얻었다. 부상으로 포상금까지 받게 됐다. 남극에서 포상금까지 받게 되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우린 이 포상금을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회의 결과 10차 월동대 단체 점퍼를 제작하기로 했다. 생물 대원에게 여러 도안을 제안받아 투표로 최종결정한 후 한국 업체에 주문했다. 그 결과물은 동계가 끝나고 아라온호가 기지에 도착했을 때 받아볼 수 있었다.

 

▲ 포상 기념품 설명

 

▲ 포상 기념 단체 점퍼를 착용하고 좋아하는 중장비 대원들

 

이 사건을 계기로 안전 관련 업무를 진행할 때 평소보다 더 많은 대원의 호응을 얻으며 일할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는 안전 대원으로 해야 할 역할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활력의 계기가 됐다.

 

남극 홍보대사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여러 기관에서 남극 관련 인터뷰나 기고문 요청이 들어 온다. 그럼 요청 관련 분야에 해당하는 대원들이 인터뷰하거나 기고문을 작성한다. 이러한 일 역시 하계기간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동계기간에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기고문

 

남극의 많은 이슈를 받는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대기과학 대원이나 기상 대원도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정기적으로 지방 초등학교와 화상으로 남극에 대한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각자 자기 분야의 남극 활동을 소개하며 한 명, 한 명의 대원이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의 홍보대사가 된다.

 

▲ 화순초등학교 화상교육

▲ 생물, 해양 분야 화상인터뷰

 

나는 장보고 과학기지를 알리는 웹진 ‘눈나라 얼음나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격월로 웹진을 발행하는 홍보 업무에 참여했다. 웹진은 기지에서 이뤄지는 여러 활동을 소개하고 다양한 전문 연구 분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분야별 소개로 구성된다.

 

업무 외에 이런 활동을 하려면 자기 시간을 쪼개야 했기에 자발적으로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대원들은 열의가 넘쳤다. 

 

▲ ‘눈나라 얼음나라’ 웹진 표지

▲ ‘눈나라 얼음나라’ 편집장 인사말

▲ ‘눈나라 얼음나라’ 글쓰기

 

덕분에 초반엔 편집회의를 하면 항상 열띤 토론과 함께 회의가 길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각자 자기 색이 확실한 대원들의 이견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고 이로 인해 어떤 대원은 마음 상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돌아가며 편집장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편집장에게 다양한 권한을 주자 이후엔 순조롭게 웹진을 발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웹진 발행 업무에 참여했고 남극 생활에 대한 한편의 기고문까지 해양 관련 잡지에 기고하면서 남극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 잠시나마 문학인을 꿈꿨던 내겐 엄청 소중한 기회가 됐다.

 

▲ 남극에서 시 쓰기

 

이런 활동 외에도 극지연구소 유튜브 채널에서 세종 과학기지와 장보고 과학기지가 동시로 진행하는 인터뷰 형식의 유튜브에 출연했다. 귀국해서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내가 바로 남극의 열혈 홍보대사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유튜브에 출연한 필자

 

반갑다 태양아

8월이 시작되면서 여명이 밝아오며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우주과학 대원이 광복절쯤 태양을 보게 될 거라고 예보했다.

 

드디어 극야가 끝난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 반가웠다. 과거에 남극을 경험한 대원들에 따르면 해가 처음 뜨는 날 해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아이처럼 박수를 치게 될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잠깐 떴다가 금세 지는 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세 달간의 극야기간 뭔가 표현하기 힘든 답답함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해가 뜬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된다는 걸 남극에 와보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거다.

 

▲ 일출 감상

 

그날은 장보고 과학기지 관측 최저온도인 영하 38.3℃를 갱신한 영하 38.4℃가 관측된 날이었다. 하지만 어느 다른 날보다 훨씬 따뜻한 햇볕을 받은 날로 기억된다. 해가 뜬 기념으로 대장님은 그날을 장보고 과학기지 임시휴일로 정하셨다. 바비큐 파티를 열고 지난 동계기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기념했다.

 

그렇게 우리의 극야기간은 아무런 사고 없이 남극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만큼 많은 추억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그리고 맥주

한국에서 대량의 쇼핑을 통해 1년 치 먹거리를 아라온호에 선적한 후 장보고 과학기지로 들여오게 된다. 보통 전년 9월 말께 식료품 구매가 진행되는데 그렇게 들어온 식료품들이 동계가 끝날 때쯤이면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나게 된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식료품을 안 먹을 수 없다 보니 유통기한을 따지는 게 무의미한 일이 됐다.

 

그러나 각 품목에 대한 소비기한은 관심사와 논쟁거리였다. 식약처가 내놓은 소비기한 참고 값은 식품별 실험을 바탕으로 세균수와 대장균, 수분과 산도, 겉모습과 냄새 등을 조사해 과학적으로 ‘품질안전한계 기간’을 설정해 놓은 것이다.

 

통상 품질 안전 하계기간의 60~70%를 유통기한, 80~90%를 소비기한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이제 그만 먹어야 한다는 대원과 지금까지 그냥 먹어도 괜찮았다는 대원으로 의견이 갈렸다. 특히 멸균우유와 라면같이 수시로 먹는 음식들이 문제였다. 멸균우유의 경우 외관상으로 봐도 조금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라면 역시 외관상 문제는 없지만 조리해도 기름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대체할 방법이 없으니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더욱 소비기한을 주관적인 의견에 대입시켜 늘리고 싶었다.

 

그래서 각자 여러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었다. 우유의 경우 초등학교 이후로 먹어본 적이 없었던 전지분유가 대체했다. 라떼를 한잔 마시기 위해 전지분유를 잘 풀어 녹여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전지분유 맛도 좋았다.

 

이렇게 라떼를 만들어 먹자 그럼 커피믹스랑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하는 대원들도 있었지만 전지분유를 계속해서 즐겼다. 사실 소비기한을 훌쩍 넘긴 걸쭉하고 결정까지 생긴 멸균우유를 더는 삼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면 역시 기름 냄새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끓이기 전에 고춧가루와 파를 이용해 먼저 기름을 내서 라면을 끓이기도 하고 김치를 많이 넣고 김치 라면으로 끓여 냄새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의외로 먹을만한 라면이 됐다. 하지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의 경우는 달랐다. 다른 방법으로 조리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기름 냄새가 더 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컵라면마저도 월동기간이 끝나가며 품절돼 기지에서 구하기 힘든 품목이 됐다는 사실이다.

 

맥주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남극에서 처음 알았다. 막걸리를 제외하고는 술에 유통기한이 없는 거로 알았는데 맥주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극야가 끝났던 시기가 우리가 가져온 맥주의 유통기한이 지난 시기와 맞물렸다. 아니 세상에 맥주가 유통기한이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 기지에 있는 모든 맥주가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게 2차 충격이었다.

 

맥주를 즐기는 나에게는 이 모든 일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일이 닥쳤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1년간 먹을 주류를 극지연구소 음주 규정에 맞게 계산해 기지로 반입한다. 그렇게 반입된 주류는 총무 대원이 철저하게 관리하는 주류창고에 보관한다. 이후 대장님이 허락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주 2회 정량만 분출하며 관리한다. 

 

▲ 기지 도착 직후 창고에 정리된 맥주

 

처음 기지에 도착해 주류를 정리하면서 주류창고에 쌓인 수많은 맥주를 보며 매우 뿌듯해한 기억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수많은 맥주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졌다는 표현보다는 우리가 소비했다는 표현이 맞긴 하지만 아무튼 사라졌다. 

 

▲ 동계기간이 끝나고 얼마남지 않은 주류

 

비단 사라진 게 맥주뿐만은 아니었지만 맥주를 즐기는 나는 맥주 이외에 다른 주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듯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맥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유통기한, 소비기한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극에서 맥주를 대체하거나 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단순한 에피소드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우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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