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화재조사관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조사관들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리튬이온 배터리 열폭주에 대해 공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이 컸다. 강의 시간이 길지 않기에 공학적인 내용을 상식 기반에서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화학 원소와 주기율표가 등장할 때 교육생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 내 마음마저 흔들릴까 싶었다. 정신을 다잡고 일관성 있게 준비한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는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표정인데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쉬는 시간까지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배터리로 이어지는(BOT) 세상의 변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여기에 더해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화재조사관들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대한민국 소방의 화재조사관 아니던가?
세상의 변화와 과학의 발전에 맞춰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재난도 적응하고 분석하는 게 우리의 숙명 아니던가.
다시 돌아와 강의가 끝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한껏 드러내며 다가온 교육생의 질문이 생각난다.
“얼마 전 배터리팩을 보관 중이던 공장에서 불이 났는데요. 1년간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넣어둔 상태였어요. CCTV를 확인해 보니 배터리팩을 원인으로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1년간 사용하지 않고 보관 중인 배터리팩인데 방전이 안 되고 불이 날 수 있는 건가요? 감식 중에 관계자와 다른 기관에서 배터리가 방전돼서 불이 날 수 없다고 주장하더라고요”
이와 관련해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며 정황과 상황을 파악한 후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자가 방전율에 대해 명확한 문헌을 찾아보지 않은 터라 궁금하기도 했다.
과학에 근거를 두는 업무 특성상 그 근거가 확실해야 화재 원인을 특정할 수 있다. 이번에도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문헌 조사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자체 방전 메커니즘이 문헌에서 제안됐다. 이들은 비가역적인 메커니즘과 가역적인 메커니즘으로 나눠질 수 있다.
비가역적인 자가 방전은 음극에서 고립된 SEI(고체 전해질 계면) 층의 부반응에 의한 리튬 감소로 인해 발생한다. 반면 가역적인 자체 방전은 리튬 감소와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극에서 산화되고 음극에서 환원되는 레독스 셔틀 분자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음극에서 양극으로 전자가 셔틀링 될 때마다 Li+ 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한다. 이는 효과적으로 자가 방전을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면 열, 온도의 영향을 받게 되면 자가 방전은 어떻게 되는 걸까?
리튬이온 배터리 자가 방전
열 노출에 의한 자가 방전의 근거를 찾던 중 2018년 3월 영국 왕립화학회(Royal of Society of Chemistry)의 에너지&환경 과학(Energy Environ. Sci.,)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단기적인 열 노출이 자가 방전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단기적인 열에 리튬이온 배터리가 노출됐을 때 실온에서 자가 방전 속도를 가속시키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차(EV)나 재생 가능 전기 생산을 위한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주요 전력 옵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전자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최적화됐지만 대규모 응용 분야에서 적용 중인 배터리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저장 특성을 요구하는 것 외에 더 가혹한 작동 환경에서도 지속돼야 한다. 대규모로 운영되는 환경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는 배터리가 오랫동안 실온보다 낮거나(겨울) 높은(여름) 온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배터리는 전기차가 외부에 주차된 경우와 같이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특정 충전 상태(SOC)에서 오랫동안 휴식 상태에 있을 때도 있다. 이러한 조건은 대부분 실온에서 지속해서 작동하는 스마트폰 같은 제품과 일반적인 사용이 다르다.
배터리가 충전된 상태로 장기간 보관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배터리의 자가 방전이다. 이는 개방 회로 조건에서 충전 용량의 손실을 의미한다. 휴식 기간 원치 않는 용량 손실은 배터리 자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차 후 전기차를 구동할 때 사용하는 응용 프로그램에도 중요하다.
자가 방전의 주요 원인은 일반적으로 활물질과 전해액 사이의 부반응에 의해 활물질의 분해를 유발하고 전이 금속 용해와 구조의 상변화를 포함한다.
그러나 자가 방전 메커니즘과 속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그런데도 리튬이온 배터리는 충전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배터리 중 가장 낮은 자가 방전율(1개월 저장 시 저장 용량의 5% 이하)을 나타내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 응용을 위해 새로운 환경에 배터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이때 배터리의 낮은 자가 방전율이 비교적 가혹한 조건에 노출되면 지속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조건은 외부에 설치된 배터리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극한 온도(0℃ 이하 또는 60℃ 이상의 조건)가 리튬이온 배터리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작동이나 휴식 조건에서 리튬이온 배터리의 자가 방전 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가 방전율에 영향을 주는 열 노출
이 논문에서는 전극과 전해액을 일반적인 리튬 코발트 산화물(LiCoO2) 양극과 1M 육불화인산리튬(LiPF6), EC와 DMC(1:1 부피 비율) 전해액의 조합으로 선택했다. 전기화학적 특성은 실온에서의 특성과 60℃에서 저장한 후의 반쪽 전지(Half Cell)를 통해 특성을 비교했다([그림 1] (a) 참고).
실온에서 7번의 사이클 평가 후 완전히 방전된 전지를 60℃에서 저장했다. [그림 1] (a)는 두 전지의 이후 충전과 방전 프로파일을 보여준다. 60℃ 저장에도 거의 같았으며 용량은 5mAhg-1 감소에 불과했다.
고온 저장 후 용량 감소가 크지 않았지만 Li 등 연구자들이 55℃에서 100일 동안 저장한 후 흑연과 코발트 산화물(LixCoO2) 전지의 방전 용량이 감소한 걸 관찰한 결과와 일치한다. 이 연구에서는 용량 감소가 전해액과의 부반응을 통해 양극 표면에 저항성 LiF가 형성된 것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두 셀을 SOC 20(~0.1Li)까지 충전하고 25℃에서 개방 회로 전압(OCV)을 모니터링하는 추가 실험을 수행했다. [그림 1] (b)는 2주 이상의 측정 기간 셀의 전압 변화를 보여준다.
Pristine cell의 개방 회로 전압(OCV)은 20일 이상 3.9V(Li/Li+ 대비)의 일정한 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빨간 사각형으로 표시). 그러나 60℃에서 밤새 가열된 셀(‘60℃ heated cell’로 그래프에 표시)은 10일 후 점진적인 전압 감소를 나타냈고 14일 후 급격한 전압 강하를 경험했다.
이는 [그림 1] (a)에서 관찰된 유사한 전기화학적 성능에도 초기 셀과 대조적이다. 60°C로 가열된 셀은 며칠 후 전압이 3.6V(Li/Li+ 대비) 이하로 더 떨어졌다.
80℃와 같은 더 높은 온도에서 저장된 셀(‘80℃ heated cell’로 그래프에 표시)을 사용해 같은 실험을 수행했을 때 전압이 더 빠르게 감소하는 게 관찰됐다.
또 7번의 사이클 평가를 수행한 셀에서 추출한 양극에 대해 유사한 실험을 수행했다. 이 전극을 60℃의 전해질에 저장한 후 전압 감소 속도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반쪽 셀을 재조립했다(‘60℃heated electrode’로 그래프에 표시).
특히 ‘60℃로 가열된 셀’에서 관찰된 것과 같은 현상이 ‘60℃로 가열된 전극’에서도 관찰돼 열에 노출된 양극에서 주로 셀의 전압 감소가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이 현상이 LiCoO2에만 국한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60℃에서의 짧은 열 노출 후 리튬인산철(LiFePO4)과 같은 다른 상용 양극재에서도 유사한 전압 감소 속도 가속을 보여준다.
이 같은 전압 감소가 자가 방전에서 비롯된 건지, 다른 부반응에서 비롯된 건지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그림 1] (b)에서 전압 감소를 경험한 셀들을 Li/Li+ 대비 약 3.3V에 도달한 후 다시 충전했다.
이 셀들은 Pristine 셀과 동일한 전기화학 프로파일에 따라 충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로써 전압 감소가 자가 방전에 따른 것임이 확인됐다. 또 자가 방전 이후 Li0.9CoO2 전극을 분해해 XRD 분석을 수행한 결과를 [그림 1] (C)에 나타냈다.
전압 감소 이전 SOC 20에서 전극의 XRD 패턴은 이중의 상 존재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탈리튬화 된 LixCoO2 구조와 일치한다. 그러나 전압 감소 후 패턴에 큰 변화가 생겨 기준 LiCoO2와 같은 위치에 단일 특성 (003) 피크만 나타났다([그림 1] (C) 참조).
이 결과는 LiCoO2 형성을 나타낸다. Li0.9CoO2(SOC 20)에서 LiCoO2(SOC 0)로의 회복은 리튬이 LixCoO2 벌크에 재삽입되는 자가 방전을 명확히 확인시켜 준다. 이런 종류의 열 이력에 의한 자가 방전이 SOC 20뿐 아니라 SOC 60, 90과 같은 다양한 다른 SOC에서도 발생한다고 한다.
이 발견들은 배터리가 충전 상태에 있을 때 자가 방전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SOC가 높은 상태에서 약간 더 빠른 자가 방전 속도를 유발하는 걸 발견했다. 이는 LiCoO2 셀의 산화 조건이 더 커져 부반응이 생성되는 원인으로 해석된다.
셀의 자가 방전 재현성 검증을 위해 유사한 조건에서 여러 셀을 검사하고 얻은 통계를 [그림 1] (d)에 제시했다. 이 그림에서 SOC 20 초기에 있던 셀이 자가 방전 상태(SOC 0)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일)이 열 이력의 함수로 나타나 있다.
60℃ 평균 자가 방전 시간은 13.8 ± 5.8일이었고 80℃ 경우는 10.1 ± 6.5일로 더 높은 온도에서 열 노출에 강한 의존성과 LixCoO2 전극의 자가 방전에 대한 재현성을 보여준다.
또 추가 실험을 통해 셀 유형과 관계없이 열 노출에 따라 자가 방전의 가속화가 공통적인 현상임이 확인된다.
가장 낮은 자가 방전율
리튬이온 배터리는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 중에서 자기 방전이 가장 낮은 시스템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열 노출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가속화된 자가 방전을 겪을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
짧은 기간 동안 60℃ 또는 80℃에 노출되더라도 실온에서의 리튬이온 전지 운전은 자가 방전 측면에서 영향을 받는다. 즉, 반대로 이야기하면 실온에서 특별한 문제 없이 보관 중인 리튬이온 배터리에서는 자가 방전이 미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충전 상태로 보관 중인 배터리의 전압은 유지되고 그 에너지는 남아 있어 다양한 요인에 의해 열폭주를 촉발한다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배터리 중 자가 방전율이 가장 낮아서 언제든 열폭주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수수께끼 같은 화재 현장에서 과학적인 근거로 활용해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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