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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새해 벽두부터 소방관 세 명 목숨 앗아간 평택 공사장 화재
평택 물류창고 화재 현장서 이형석ㆍ박수동ㆍ조우찬 소방관 순직
경기도청장(葬)으로 영결식 엄수… 문 대통령 참석해 유가족 위로
세 소방관 1계급 특진ㆍ옥조근정훈장 추서,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잇따르는 소방관 순직에 소방노조, 현장 지휘체계 개선 등 촉구
박준호 기자   |   2022.02.21 [10:00]

 

‘희망찬 새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2022년이 시작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소방관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월 5일 오후 11시 46분께 경기 평택시 청북읍에 있는 팸스물류센터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고 7분 만에 현장으로 출동한 소방은 당시 건물에서 작업하던 공사 관계자 5명 전원이 대피한 사실을 확인했다.

 

화염이 거세지자 14분 후인 다음날 오전 0시께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밤새 화재를 진압했다. 소방은 불이 잦아들자 오전 6시 32분께 초진을 선언하고 7시 10분 대응단계를 해제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인명검색을 위해 경기 송탄소방서 구조 3팀 5명이 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다 갑자기 불이 번져 이들에게 긴급탈출 지시가 내려졌다. 소방은 공사장 내부에 설치된 보온재와 우레탄폼 등으로 불이 확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전 9시 15분께 건물 2층에 소방관들이 고립된 사실을 확인한 소방은 9시 21분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동료 소방관 구출팀(RIT, Rapid Intervention Team) 진입을 명령했다.

 

13분 뒤인 9시 34분께 2명은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나머지 3명은 연락이 끊겼다. 결국 소방은 현장에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고 이형석, 조우찬 소방관을 오후 12시 24분께, 고 박수동 소방관을 48분에 수습했다. 불은 화재 발생 19시간 33분 만인 1월 6일 오후 7시 19분께 완전히 꺼졌다.

 

냉동창고용으로 건립 예정이던 팸스물류센터는 스프링클러와 자동화재탐지설비, 옥내소화전 등의 설치 대상이지만 준공을 앞두고 있어 정상 작동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은 화재 당시 건물 1층에서 바닥 타설과 미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관계자 증언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팸스물류센터는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19만9762㎡ 규모로 오는 2월 20일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공정률은 약 80% 진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뜨겁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로운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이번 사고로 순직한 고 이형석ㆍ박수동ㆍ조우찬 소방관의 합동 영결식이 1월 8일 평택시 이충체육센터에서 거행됐다.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영결식엔 유가족과 장의위원장인 오병권 경기도지사 권한대행, 국회의원, 시ㆍ도의원, 이흥교 소방청장, 동료 소방관 등 3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희생을 추모하며 영면을 기원했다.

 

특히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예고 없이 영결식장을 방문했다. 소방관이 순직했단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다 순직하신 세 분의 소식에 가슴이 멘다”며 조의를 표했던 문 대통령은 가장 마지막 순서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문 대통령은 세 소방관의 영정 사진을 차례로 한참 동안 바라보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어 유가족과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영결식 도중에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오병권 권한대행은 ‘고 이형석 소방경ㆍ박수동 소방장ㆍ조우찬 소방교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합니다’라는 제목의 영결사에서 “새해 초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에 잠긴 유가족분들, 동료를 잃은 아픔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소방 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그동안 안전관리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또다시 소방관의 희생이 발생해 마음이 무너지고 도정 책임자로서 비통하고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세 분의 헌신과 희생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바치며 고인의 빈자리를 대신 채울 순 없겠지만 유가족 여러분께서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실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의 문 앞에서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리는 도민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란다”고 울먹였다.

 


오 권한대행은 재발 방지 대책 강구를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도 비쳤다. 그는 “오늘 세 분의 영정 앞에서 소방관들의 건강과 안전, 자부심과 긍지를 더욱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약속드린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여러분이 더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고인들을 추모하는 조사는 같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채준영 소방교가 대표로 낭독했다. 채 소방교는 “지난 밤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이 매캐한 연기 속으로 갔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이렇게 갑자기 떠나 버린 그들의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너무나 큰 숙제에 마음이 답답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아버지였고, 애인이었던 믿음직한 우리의 영웅 이형석, 박수동, 조우찬 이 세 분의 이름을 우리 마음속에 고이 간직할 시간이 왔다”며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뜨겁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로운 세상에서 편히 쉬길 기원한다”고 했다.

 

조사 낭독 후에는 헌화와 분향이 진행됐다. 각 대원의 유가족이 차례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유가족이 끝내 오열하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퍼졌다. 동료 소방관들도 숨죽이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이후 동료 대원들이 고인을 운구하며 장지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를 지켰다.

 

 

따뜻한 리더쉽 고 이형석 소방경

베스트 송탄소방인 고 박수동 소방장

열정 넘치는 새내기 고 조우찬 소방교

세 소방관은 모두 경기 송탄소방서 소속으로 구조 3팀에서 함께 근무했다. 고 이형석 소방경은 팀장으로 박수동 소방장과 조우찬 소방교를 이끌었다.

 

고 이형석 소방경은 1971년생으로 1994년 소방에 임용, 성남소방서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오산소방서와 화성소방서를 거쳐 2019년 8월부터 송탄소방서 119구조대에서 근무했다. 약 27년간 각종 화재진압 현장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한 이 소방경은 지난 2001년과 2007년, 2015년 세 차례나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아흔의 노모를 모실 만큼 효자였던 이 소방경은 직장 내에서 직원들의 화합을 주도하고 매사 솔선수범해 후배들에게 항상 모범이 되는 팀장으로 평가받았다.

 

1990년생인 고 박수동 소방장은 지난 2016년 2월 소방에 입직했다. 신장ㆍ고덕119안전센터를 거쳐 2020년 7월부터 119구조대에서 근무했다. 평소 밝은 성격으로 직원들과 잘 어울렸고 책임감이 강해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동료들은 전한다. 지난해 베스트 송탄소방인으로 선정돼 송탄소방서장 표창을 받은 그는 곧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996년 출생한 고 조우찬 소방교는 첫 근무지가 송탄소방서 119구조대였다. 육군 특전사에서 4년간 복역한 후 지난해 5월 소방관이 됐다. 약 7개월간 재직하며 각종 재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헌신했다. 조 소방교는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밝은 성격과 강한 정신으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넘치는 열정으로 칭찬이 자자한 새내기 소방관이었다.

 

소방노조 “계속되는 소방관 순직사고… 대책 마련하라”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순직하는 사고가 잇따르자 소방노조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한 노조는 소방청 앞에서 소방청장 등을 파면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소방을사랑하는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박일권, 이하 소사공노)은 1월 7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반복되는 무리한 진압 명령으로 동료를 잃었다”며 “소방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지휘부는 쿠팡 화재 이후 재발 방지에 노력하겠다면서 위기를 모면해 왔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주장은 하지 말고 무리한 화재진압을 인정해야 한다”며 “지휘관 역량 강화를 위한 강도 높은 교육을 현장 지휘관 임용 전 필수적으로 이수토록 하고 화재진압 매뉴얼을 현장 상황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본부장 박해근, 이하 전공노 소방노조)는 1월 10일 소방청에서 평택 냉동창고 순직 관련 추모제ㆍ집회를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공노 소방본부는 “화재 잔불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구조대상자가 없는 현장에 구조대를 무리하게 투입한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관이 빚은 대참사”라며 “책임자의 현장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소방 조직은 현장 경험보단 계급에 의한 지휘가 이뤄지고 있다”며 “현장 경험이 없는 지휘는 계급장만 번지르르해 정작 중요한 알맹이가 없어 항상 위험이 따를 뿐이다. 현장 지휘관은 불구경 온 사람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소방청의 대처방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전공노 소방노조는 “최소 20년 이상 현장 경험이 있는 책임자를 배치하고 현장 지휘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 소방관의 고귀한 목숨이 화마 앞에 쓰러져 가는 순직행렬을 멈출 수 없다”고 꼬집었다.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1월 1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효자동 주변 도로에 소방관 250여 명이 손팻말을 들고 모이기도 했다. 

 

 

공노총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소방청지부(위원장 정은애, 이하 공노총 소방노조)는 이날 대정부 규탄대회를 열고 평택 냉동창고 화재와 관련해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2021년 7월 소방노조가 조직된 이후 청와대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은애 위원장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벌써 소방관 5명이 화재진압 중 순직했다”며 “희생이 계속되는 이유는 정부와 소방당국이 현장의 상황과 괴리되고 책임 회피를 위해 면피성 정책만을 내놓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택 순직사고 진상조사는 소방관의 희생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만큼 노조가 참여하는 진상조사를 통해 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수 부산본부 사무처장은 결의문을 통해 “국민 안전은 소방관의 피와 목숨을 대가로 지켜졌다”며 “이런 상황에도 소방관은 현장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에서 각종 갑질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버텨 왔음에도 소방관에게 돌아오는 건 무한 반복되는 동료의 죽음과 점점 더 재난극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가는 현실을 무기력하게 목도하는 게 고작”이라며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소방관에게 그에 합당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노총 소방노조는 정책요구서를 통해 ▲소방행정과 현장 대원 분리 채용 ▲국가 소방조직에 부합한 완전한 국가 소방조직 마련 ▲소방관 연금 혜택 불평등 해소 ▲소방관 공상추정법 제정 ▲특정직 공무원 별도 보수체계 마련 ▲교대근무체계 개선 등을 요구했다.

 

공노총 소방노조는 집회 시작에 앞서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이같은 내용이 담긴 정책요구서와 서한문을 전달했다. 1시간가량 이어진 집회는 효자치안센터에서 정부서울청사까지 행진하는 걸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국노총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이하 공무원연맹)은 애도문을 내고 순직 소방관들의 명복을 빌었다.

 

공무원연맹은 “또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 발생했다”며 “세 소방관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자긍심으로 위험한 현장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다가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비극이 아직 생생함에도 또다시 소방관들의 희생을 부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며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됐으나 소방관의 처우는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공상추정제도 도입 근거를 마련하는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공무원연맹은 순직ㆍ공상자에 대한 예우 강화와 위험직무 순직 보상금 상향 등 소방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순직한 소방관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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