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행정의 원칙상 소방은 법과 떨어질 수 없어요. 소방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법률 전문가가 필요하고 그 수요는 점차 증가 추세죠.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소방 관련 법을 연구할 생각입니다. 소방관이자 변호사로서 법적 역량을 키워 조직에 더 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지난 7월부터 서울소방재난본부 119광역수사대장으로 활동 중인 성민곤 소방경. 그는 2014년 제20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입문한 후 10년간 화재진압과 화재조사, 사법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왔다. 그런 그에겐 변호사 자격이라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지금까지 변호사로 근무하다가 특별채용 등을 통해 소방관이 된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소방관으로 활동하면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성 대장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한 선배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 소방에서도 특화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개발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계속 귓가에 맴돌더라고요. 소방 입문 전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터라 법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민 끝에 법으로 특화된 소방관이 되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와 로스쿨 수업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밤에는 업무를 수행하고 낮에는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면서 강의를 수강해야 했기 때문이다. 왕복 거리 약 190㎞,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통학시간과 쉬는 시간에 새우잠을 자는 건 일상이었다. 낮 근무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빠지거나 휴가를 냈다. 당시 그가 근무하던 곳은 전국에서 출동이 많은 곳 중 하나인 영동119안전센터였다.
“성적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는데 다니다 보니 30명 중 11등이 됐어요.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은데 육체적으로 매우 지치더라고요.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김에 꼭 변호사가 되고 싶었죠”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성민곤 대장. 변호사란 자격증이 생겼을 뿐인데 조직에서 그의 위상은 달라졌다.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TF, 서울소방미래비전 전략 수립 TF의 일원으로 활동할 기회가 생겼다. 소송 등 법적 자문을 묻는 동료도 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복도 내 물건 적치 문제로 담당자와 민원인 간 실랑이가 벌어진 현장에 출동했어요. 소방 관련 법 적용은 애매한 상황이었죠. 민원인에게 민법 부분을 안내해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소유자가 수십 명인 건물에서 소방 관련법 위반 사항을 확인한 동료들에겐 민법 지식과 판례 등을 통해 도움을 주기도 했죠. 로스쿨을 가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입니다”
그가 몸담은 서울소방 119광역수사대(이하 광수대)는 2018년 출범했다. 소방활동 방해 현장에 즉시 출동해 피해를 본 소방관을 보호하고 피의자를 수사한다. 소방차 관련 교통사고 시에는 관련 소방관을 법적으로 조력하고 소방활동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등 다양한 업무도 수행한다. 다른 시도와 달리 24시간 운영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간 갈고닦은 지식을 총동원해 광수대장의 역할에 충실하던 어느 날. 한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사고로 두 다리가 모두 골절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로 한복판에 차량이 서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 서 있던 차량 뒤에는 일렬로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술에 취해 자고 있던 정차한 차량 차주. 구급대원은 해당 차량 앞에 주차한 후 서둘러 운전자를 깨웠다.
그 순간 깜짝 놀란 운전자가 벌떡 일어나면서 가속 페달을 밟았고 그 앞에 있던 구급대원이 해당 차량과 구급차 사이에 끼면서 크게 다쳤다. 사고를 낸 운전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미 다리를 다쳐 입원 치료 중이라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변호사 선임부터 모든 법적 대응을 조직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당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었거든요. 크게 다친 그 대원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듯 그가 광수대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부터 지금까지 현장 대원들을 도와 좋은 결과를 끌어낸 사건은 20여 건에 달한다.
“소방관을 대변해 법적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체계가 더 촘촘히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시도에서 직원 보호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피해를 본 소방관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까지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민곤 대장은 소방관이자 ‘소방 전문 변호사’를 꿈꾼다. 이를 위해 소방 분야에 대한 법적 지식은 물론 엔지니어 영역의 전문지식까지 두루 섭렵하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현재는 현장 활동과 관련된 소방 관련 법에 집중하고 향후 ‘소방의 화재조사에 관한 법률’도 연구하려고 해요. 화재조사의 경우 법적 지식뿐 아니라 엔지니어 지식까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거든요. 기계와 전기, 화학 분야 전문지식이 필요한 이유죠.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소방 전문 변호사’란 제 목표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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