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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엉터리 소방 자체점검 만연한 숙박시설 점검 따라가 보니…
들어갈 수조차 없는 객실들… “점검 가능한 객실 어딘가요?”
객실 속 잠자는 엉터리 소방시설들, 현실 모르는 제도가 문제
전문가들 “객실 점검 가능한 현실적인 제도개선 대책 마련해야”
최영 기자   |   2024.10.10 [12:26]

▲ 숙박시설 자체점검 현장에 동행하기 위해 찾은 경기도 모 모텔 밀집 지역  © 최영 기자


[FPN 최영 기자] = 지난 8월 22일 부천의 한 호텔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화재가 시작된 층의 다른 호실에 있던 투숙객 두 명은 소방이 전개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지만 안타깝게도 숨을 거뒀다. 각 객실에는 화재 시 동아줄 역할을 하는 ‘간이완강기’가 있었지만 사용조차 못 했다.

 

화재 이후 <FPN/소방방재신문>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윤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서울구로을)이 확인한 사고 호텔의 간이완강기들은 로프 길이가 층수와 맞지 않거나 ‘김치통’에 보관돼 있는 등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과 2023년 경기소방이 두 차례 진행한 화재안전컨설팅 그리고 올해 2월 16일 실시한 화재안전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는 걸러지지 않았다.

 

법적 의무사항으로 이뤄지는 민간의 소방시설 자체점검도 부실하긴 마찬가지였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민간 업체가 실시한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아홉 번에 달했지만 이 모든 점검에서 간이완강기 문제는 적발되지 않았다. 날림점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 보도 이후 민간 소방시설 점검업에 종사하는 업계 관계자들은 <FPN/소방방재신문>에 고충을 호소했다. 숙박시설 점검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게 요지였다. 이들은 왜 그렇게 숙박시설 점검이 어렵다고 말하는 걸까. <FPN/소방방재신문>은 실제 숙박시설 소방시설 점검에 동행해보기로 하고 지난달 30일 현장을 찾았다.

 

 “소방시설 점검을 하려고 하는데요. 들어갈 수 있는 객실이 있나요?”

 

 A 소방시설점검업체 직원들이 모텔에 들어서며 프런트를 지키는 관계자에게 물었다. 

 

 “X07호 말고 다른 곳도 다 해야 하는 건가요?”

 

 객실 점검에 앞서 고장 난 소방시설을 수리했던 터라 객실 점검을 또 해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오늘은 객실 전체를 점검하는 날입니다” 

 

점검업체 관계자가 답했다. 민간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건물 규모에 따라 최소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종합점검, 작동점검) 의무적으로 진행된다. 이 모텔은 규모가 작아 한해 한 번만 받는다. 민간 전문업체가 실시하는 자체점검에는 법 규정에 따라 최소 3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된다.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을 갖춘 주인력 한 명과 점검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보조인력 두 명이 한 조를 이룬다.

 

점검이 시작되고 점검업체 관계자 중 한 명은 화재 수신기, 다른 인력들은 객실로 향했다. 모텔 관계자는 메모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이들에게 건넸다.

 

“점검 가능한 객실입니다” 

 

▲ 숙박시설 관계자들은 소방시설의 점검이 가능한 객실의 호수들을 작은 종이에 적어줬다.  © 최영 기자


이 종이에는 들어가도 되는 객실의 숫자들이 나열돼 있었다. 점검을 진행한 모텔은 한 층에 최대 11개 객실이 있는 4층짜리 건물이다. 대부분의 숙박시설은 숫자 ‘4’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위층은 500호대로 표기돼 있었다. 2층부터 점검을 시작했다. 점검자들은 객실에 들어가기 전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 누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인기척이 없자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 점검을 위해 객실에 들어가기 전 초인종을 누르는 점검자  © 최영 기자

 

“예전에 점검해도 되는 방이라고 해서 문을 열었다가 사람이 있어 곤란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실제 들어갈 수 있는 2층 객실은 8개였다. 나머지 3곳은 출입 자체가 불가했다. 투숙객이 있어서다.

 

객실에 들어가 화재 감지기에 시험기를 대고 작동을 시키니 1층 화재 수신기 앞에 대기하던 동료 점검자가 작동 신호가 들어왔다는 무전을 보낸다. 

 

▲ 소방시설 점검업체 관계자가 숙박시설 객실에 설치된 화재 감지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 최영 기자

 

이내 숙박업소에 있어야 할 휴대용 비상조명등을 떼어내 점등 상태를 확인하고 출입구에 붙은 피난로 안내판도 살핀다. 

 

▲ 휴대용 비상조명등을 점검하고 있는 점검자  © 최영 기자

 

 “이상 무” 

 

다른 방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점검이 이어진다. 위층인 3층도 3개 실은 출입이 불가했다. 5층의 경우 점검을 할 수 있는 곳은 단 6개뿐. 나머지 5곳은 점검하지 못했다. 3층부턴 간이완강기의 앙카 고정력도 점검했다. 그러곤 케이스에 담긴 완강기를 꺼내 외관을 살핀 뒤 로프가 층수 높이와 맞는지를 체크한다. 옥상 출입문과 비상계단의 상태도 확인했다.

 

▲ 숙박시설 객실에 설치된 완강기를 점검하는 소방시설 점검업체 관계자  © 최영 기자


숙박업소 업주 입장에선 이런 점검인력들은 그저 불청객이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길 원하는 투숙객들 사이로 소방점검을 한답시고 돌아다니니 반가울 리 없다. 꽤 오랜 시간 점검했지만 모든 객실을 살펴보진 못했다.

 

결과적으로 41개 객실 중 점검을 한 곳은 27곳. 65.8% 비율이다. 나머지 35%는 점검하지 못했다. 만약 이런 객실에 설치된 소방시설이 고장 났거나 이상이 있다면 화재 시 제구실을 못 할 위험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가 드러난다면 고스란히 부실 점검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는 건 정해진 수순.

 

모텔 한 곳의 점검이 끝나고 두 번째 숙박시설로 이동했다. 상황은 같았다. 모텔 측은 점검 가능 객실을 작은 종이에 적어줬다. 한 층에 7개 객실, 5층 규모인 이 숙박시설 역시 4층이 없다. 6층에 점검이 가능하다고 적힌 객실은 5개. 2곳은 투숙객이 아직 퇴실하지 않은 듯했다.

 

이곳에서도 점검자들은 조심히 벨을 누른 뒤 객실로 들어섰다. 건물 규모가 작아 스프링클러 설비는 없었지만 화재 감지기와 완강기, 휴대용 비상조명등, 방염처리 상태 등을 꼼꼼히 살폈다.

 

▲ 점검을 위해 객실에 들어가기 전 노크하는 점검자  © 최영 기자


점검은 전체 층을 대상으로 이어졌다. 5층은 1, 3층은 3, 2층은 3개 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총 28개의 객실 중 8개를 점검하지 못했다. 28.5%는 미점검 객실로 분류해야만 했다. 세 번째로 점검한 모텔은 장사가 잘 안됐는지 1개의 객실을 제외하곤 모두 볼 수 있게 해줬다. 점검자들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이 날 점검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숙박시설 세 곳은 모두 도보로 1분 거리에 있어 이동을 위한 시간이 길게 소요되진 않았다. 하지만 보편적인 투수객의 퇴실 시간인 11시 이후에도 모든 방을 둘러볼 순 없었다.

 

 “여긴 경기도 중에서도 외곽 도심으로 분류되는 지역이라 이 정도예요. 사실 수도권이나 번화가로 가면 점검 가능 객실이 거의 없을 정도죠. 대낮이나 저녁에 점검한다 해도 객실은 숙박에, 대실에...”

 

현행 소방관련법에 따라 이뤄지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대상물의 규모에 따라 점검 가능 면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시행된다. 이렇다 보니 호텔이나 모텔 같은 숙박시설 등에 대한 별도의 점검 방법이나 규정이 없다. 모든 객실을 점검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24시간 운영되는 숙박시설을 점검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 소방시설점검업체 관계자들이 숙박시설 소방시설 점검 을위해 이동하고 있다.  © 최영 기자


전문가들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숙박시설 같은 대상물에는 현실을 고려한 점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숙박업소 객실은 사실상 365일 24시간 영업 중이기 때문에 점검일에 모든 객실을 전수 점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일 점검 한도를 규정하는 현행 점검 제도 내에서 적극적인 점검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점검일에 예약이나 영업을 하지 않도록 하는 ‘점검휴무제’ 도입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점검휴무제 도입이 어렵다면 분기나 연 단위로 객실이 비어있을 때마다 점검을 실시하는 ‘상시기간점검제’ 등 실효성 있는 점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2년 전 아파트 세대 내 점검을 위해 마련한 제도처럼 숙박시설 점검 체계를 보완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소방청은 아파트의 경우 2년 전(2022년 12월) 2년 이내 모든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을 시행하도록 법규를 손질했다. 이 과정에선 소방시설관리업체 점검 시 모든 세대를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소유자나 점유자, 관리자 등 아파트 관계인이 점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관계인이 확인할 수 있는 별도 점검표(소방시설법 시행규칙 별지 제36호서식)를 관련 법에 신설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 아파트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을 위해 관련 법에서 제시한 점검표   © FPN


숙박시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도 점검일에 객실을 모두 점검하지 못했다면 업주 등 대상물 관계인이 확인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김성한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부회장은 “건축주나 시설물 관계인으로부터 의뢰받아 진행되는 소방시설의 자체점검 특성상 숙박시설의 영업을 방해하면서까지 모든 객실을 점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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