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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성능 알 수 없는 리튬 배터리 소화기들, 문제는?
배터리 강국 달리는 대한민국 “배터리 소화기 표준 없어”
사양도, 능력도 천차만별 소화기 “믿을 수 있나” 의문 투성
인터넷 널린 자칭 리튬 배터리 소화기들… 위법성 논란도
소화기만으로 전기차 화재 잡겠다니… “터무니없는 발상”
네덜란드는 3년 전 관련 표준 정립 “국내 실험과 차이 커”
뒤늦게 대책 내놓은 소방청 “리튬, D급 기준 도입하겠다”
최영, 최누리 기자   |   2024.07.02 [23:17]

▲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발생 당시 리튬 배터리(일차전지)에서 불이 나자 직원들이 일반 분말 소화기를 이용해 진압을 시도했지만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   ©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실


[FPN 최영, 최누리 기자] =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리튬 배터리의 위험성과 대비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배터리 화재에 대비 가능한 소화기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리튬 기술이 적용된 전력 저장장치는 일상생활의 필수가 됐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무선 기기, 전기자전거 등 리튬 배터리는 다양하게 사용된다.

 

다른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기 때문에 더 높은 용량에 크기는 작으면서도 가벼운 에너지 저장장치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최근에는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면서 다른 무거운 배터리에 비해 그 사용량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문제는 리튬 기술의 안전성은 높아졌지만 화재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특히 리튬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은 한번 붙으면 진압 자체가 어렵다. 보장된 선택지로 모두 불타도록 두거나 수조에 담가 열폭주라는 화학적 작용을 멈추는 방법 등이 제시된다.

 

몇 년 전부터 리튬 배터리 화재를 끄기 위한 소화기는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성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배터리 강국으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이 그동안 표준화된 소화기의 성능조차 정립하지 못한 배경은 뭘까. 그리고 시중에 유통되는 소화기들의 현실은 어떨까. 그럼 대책은 없는 걸까. 

 

<FPN/소방방재신문>이 리튬 배터리 화재안전을 위한 소화기의 현 실태와 문제들을 긴급진단했다.

 

“리튬 화재 적응성 있다”는 기업들… 믿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수년 전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소화기’라는 명칭의 제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화기들의 성능을 보장할 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를 보장하는 건 소화기를 제조하는 업체 자신들뿐이다. 관련 업체들 모두 자체적인 소화시험만을 거쳐 성능을 내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리튬 관련 소화기를 볼 수 있다. 소화기의 크기와 소화약제의 용량, 방사 거리, 작동온도 등 모든 게 천차만별이다. 가격은 최소 10만원 선부터 대용량 제품의 경우 12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 간단한 인터넷 검색 만으로도 시중에 유통되는 다양한 리튬 배터리 전용 화재 소화기라는 제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 FPN


수요자 입장에선 혼란스럽기만 하다. 사용하거나 취급하는 배터리의 용량 또는 크기 등에 따라 적합한 소화기의 능력 단위를 선택해야 하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최소한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 직후 즉각적인 소화가 이뤄질 때 완벽하게 소화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제품이 태반이다.

 

특히 몇몇 기업은 배터리 화재의 적응성을 증명한다며 소화실험 영상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실험인지 세세한 내용을 확인하긴 어렵다. 배터리를 얼마나 충전한 상태에서 실험한 건지, 폐배터리인지, 새 배터리인지, 끌 수 있는 배터리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가늠하기 힘들다. 주관적 시험을 거쳐 이 결과를 마치 적응성이 완벽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방출되고 화재가 더욱 격렬하게 타오른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들에서 배터리의 충전율이 얼마인지를 알리는 기업은 극히 소수다. 게다가 공인된 실험도 아니기에 무턱대고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지자체나 관련 기관, 대기업조차 시중에 공급되는 자칭 리튬 배터리 소화기를 검증 없이 비치하고 있다. 위험하다고 하니 일단 구비하는 등 뭐라도 해보자는 식이다. 

 

심지어 소방관서들조차 갈피를 못 잡는다. 지역 전기차 충전기에 D급 소화기를 공급했다고 홍보하거나 소화 성능을 알 수 없는 소화기를 보급하는 데 앞장서는 소방서들도 있다.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공공 예산조차 성능 검증 없는 소화기 구입에 투입되고 있는 셈이다.

 

▲ 인터넷 곳곳에서는 리튬 배터리 전용 소화기를 전기차 충전소에 배치했다는 게시물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소방서도 성능 검증이 안 된 소화기를 구매해 보급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 FPN


시중에 팔리는 소화기 들여다봤더니…

국내에서 리튬 화재를 겨냥해 판매에 나선 소화기 대부분은 수계(액체)성 약제를 사용한다. 하나같이 리튬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화재 시 열을 내려 열폭주를 막는다는 홍보 문구를 내걸고 있다. 일부 업체는 D급 소화기 능력 검증을 강조하며 리튬 배터리 화재 적응성을 홍보한다. 엎친 데 더해 외국 제품들까지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대표적인 제품들을 찾아 사양을 살펴봤다. 성능을 신뢰하기에는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어떤 기업은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소방법까지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소방용품 검인증 기관인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의 인증품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A 사 제품은 소화기에 4ℓ의 소화약제가 담겨 있다. 방사 시간은 35초다. 

 

특히 이 기업 홍보 자료에는 A급과 C급 화재 시험을 통과한 제품이라며 소방청의 질의 답변서를 첨부해놨다. 여기엔 ‘전기차 화재는 일반화재(A급 화재)와 전기화재(C급 화재)가 혼재된 경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자신들의 소화기는 A, C급 테스트를 거친 제품이라 전기차 화재에 적합하다는 논리다. 다른 소화기들은 KFI 형식승인을 받지 않아 불법이라는 글귀도 적어놨다.

 

▲ 인터넷에 전기차 화재전용 소화기라며 홍보하는 A 사의 제품 문구다. KFI 형식승인 사실을 알리면서 검증되지 않은 리튬 배터리 화재를 확실하게 진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A, C급 화재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운 홍보글을 담고 있다.  © FPN


우리나라에서 C급 화재에 대한 개념은 전기전도성을 말한다. 일정 전압을 가한 상태(이격 거리 50㎝인 경우 AC(35±3.5) kV, 이격 거리 90㎝인 경우 AC(100±10) kV)에서 소화약제를 방사할 경우 통전전류가 0.5㎃ 이하라면 C급을 인정받을 수 있다. 

 

소화약제를 방사했을 때 통전 여부를 보는 게 주안점이라는 얘기다. 전기화재를 끌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다. 사용 시 감전되지 않는다는 거지, 전기장치 등에서 발생한 화재 소화 성능 효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 실제 소화기의 형식승인 과정에서 C급 화재 적응성을 판단하는 건 전기전도성에 대한 부분으로 리튬 배터리와는 연관성이 없다.   © FPN


더욱이 이 소화기가 KFI 형식승인 과정에서 성능을 검증받은 건 A급 일반화재 1단위 능력과 C급, 즉 통전 여부만이다. 그렇지만 리튬 배터리 화재를 확실하게 진압 가능하다는 식의 내용과 형식승인품이라는 말을 섞어놔 마치 리튬 소화 성능까지 국가가 승인해준 것처럼 꾸며놨다. 

 

▲ 우리나라 법규에서 말하는 C급 화재는 전기차 또는 리튬 배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단지 전류의 흐름이 있는 화재라는 부분에 대해서만 정의를 내리고 있다.  © FPN


D급 소화기라고 홍보하는 B 사 제품은 외국의 인증서를 내걸고 홍보 중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와 가연성 금속 화재의 진압성능을 검증받았다고 강조한다. 2.7㎏의 소화약제가 들어간 이 소화기의 약제 방사 시간은 16초 남짓.

 

홍보자료에는 질식과 냉각 효과가 우수해 리튬이온 화재에 적응성이 있고 약제가 녹아 피막을 형성하기 때문에 폭발과 재발화를 막는다고 나와 있다. 리튬이온 화재뿐 아니라 금속화재에도 복합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 이 소화기에는 리튬 배터리와 전기차 화재, 금속 화재 등 모든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독일의 인증기관으로부터 성능인증을 받았다는 문구도 표기돼 있다.  © FPN


해당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고 밝힌 곳은 독일의 MPA DRESDEN이라는 공인 기관이다. B 사는 2014년 이곳에서 해당 소화기에 대한 D급 화재시험을 거쳤다고 설명한다. EN 3-7이라는 유럽 표준 실험 기준에 맞춰 테스트했다는 내용이다. 인증서 갑지에는 시험 과정에선 마그네슘과 나트륨에 대한 소화시험을 완료했다고 나와 있다.

 

함께 제시된 리튬 배터리 화재 시험의 경우 표준규격이 없는 시험계획으로 진행됐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업체가 홍보하는 한 장짜리 문서 외에도 테스트 보고서는 5쪽 부록을 포함해 총 10쪽 분량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공개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업체는 독일 화재시험 인증기관으로부터 리튬 배터리와 가연성 금속(D급 화재) 화재진압 ‘성능인증’을 모두 받았다는 식으로 표기해 놨다. 이 기업이 홍보하는 실험 영상에선 배터리 용량과 실험 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C 사 제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터리 화재 전용 소화기의 재난안전인증을 획득한 제품이라는 걸 강점으로 내세운다. 행정안전부가 내주는 이 인증은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제품의 신뢰성을 보증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소화기는 2.5ℓ 용량으로 침윤제 약제를 사용하며 방사시간은 72초다. 4ℓ 용량 제품은 67초의 방사시간을 갖는다. 

 

▲ 이 기업은 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인증 획득 사실을 홍보하며 적응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나마 구체적인 시험 결과도 제시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마냥 신뢰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 FPN


이 기업은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는 다양한 화재 시험 영상도 제시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시험들 역시 기업이 제시하는 방식의 테스트를 거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D 사가 공급하는 소화기는 액화 팽창질석을 소화약제로 활용해 개발된 외국산 제품이다. 외국 공인 시험기관들의 테스트 결과물도 함께 홍보하고 있다. 약제 용량은 545g, 2.2kg, 6.6kg, 9.9㎏ 등이 있고 방사시간은 90초에서 최대 180초까지 가능하다.

 

▲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이 소화기는 해외의 인증서와 시험성적서를 내세워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적응성을 홍보하고 있다.  © FPN


그러나 해당 소화기가 해외에서 진행된 테스트와 동일한 형태로 제작돼 국내에 보급된 건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이처럼 시중에 유통되는 리튬 소화기는 기업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규격과 특징을 가졌다. 명확한 성능을 무작정 신뢰하기에도 한계가 따른다. 

 

더욱 큰 문제는 해당 업체들 모두 전기차 화재를 소화할 수 있다는 식의 과장된 홍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차량 하부나 상부(버스) 등 내부에 안착돼 케이스까지 씌워진 리튬 배터리 화재를 소화기로 끄겠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고작 10여 초에서 길게는 1분, 최대 3분 정도 소화약제를 방사해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끈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사용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금속과 리튬 배터리, 전기차 화재는 구분돼야 하고 진압방법도 달라야 한다”면서 “각각의 화재에 적응성 있는 소화약제와 소화방식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능이 확인되지 않은 일명 리튬 배터리 소화기 등 불확실한 방법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고 판단해 초기진화를 시도하다간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화재를 제어하거나 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아닌 이상 신속히 대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불법 경계 놓인 리튬 소화기들… 손 놓은 소방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자칭 리튬 배터리 소화기들을 두고 위법성 논란도 제기된다. 소방관련법상 모호한 불법의 경계에 놓여 있어서다. 

 

현행법에 따라 소화기를 제조하거나 수입하려면 소방청의 형식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면 소화기라는 명칭을 쓸 경우 모두 불법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런 법규를 아는 소방 관련 기업들은 소화장치나 발포기 등 소화기가 아닌 다른 용어를 쓰는 방식으로 위법 가능성을 피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소방청이 이를 단속하거나 제재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관련법에서 화재 종류조차 구분하지 못한 현실에서 급격하게 수요가 느는 특수 소화기의 생산을 무작정 막거나 제약하다간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소방관련법에서 규정하는 국내 소화기 종류들과는 엄연히 달라 법규를 세밀하게 따져볼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관련 기준조차 없는 종류의 소화기구를 단순히 불법으로 단정하기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리튬 배터리 소화기 제조사들이 제각각 내세우는 성능을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화재 위험성이 대두된 리튬 배터리와 금속화재 등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소방청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소화기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방용품은 유사시 확실한 성능이 보장돼야 하는 제품이기에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한다 해도 제도적 뒷받침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안전을 확보할 수도, 산업 활성화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죽하면 수많은 업체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면서까지 자체 실험을 진행하겠나”고 반문하기도 했다.

  

리튬 배터리 소화기 기준 정립한 '네덜란드'… “벤치마킹해야”

리튬 배터리 소화기의 성능 검증을 위한 국가 차원의 표준은 전 세계적으로도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네덜란드의 KIWA라는 기관이 관련 표준을 3년 전 정립한 것으로 확인된다. KIWA는 1949년 설립된 네덜란드 공인 연구기관으로 유럽 연합의 CE 마크 인증기관이기도 하다. 1만2천명 이상이 근무하는 이 곳은 세계 35개국 이상 국가에 사무소를 운영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기관에선 2021년 11월 리튬 배터리 화재실험 방법을 정립했다. 유럽 소화기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가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위험과 소화제 필요성을 인식해 KIWA와 네덜란드 왕립표준화연구소(Royal Netherlands Standardization Institute)에 관련 기술 지침 개발을 요청하면서 NTA 8133(Nederlandse Technische Afspraak)이 만들어졌다.

 

▲ 네덜란드 KIWA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리튬 배터리 화재 시험 NTA-8133 코드 안내 페이지  © FPN


이 기준은 일정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소화시험에 관한 코드다. 최대 600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대한 소화 성능을 검증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전동공구, 가정용 장비, 휴대용 의료장비, 장난감, 무선 조종 물체, 드론, 전기자전거 등 전자 제품에 쓰이는 충전식 배터리의 소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 기준은 국내 기업들이 자체 진행하는 시험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100Wh 크기의 완충된 리튬 파우치 셀로 이뤄진 팩 6개를 묶어 실험을 진행한다. 이 중 3번째 셀에서 과충전에 따른 열폭주를 일으킨 뒤 7~9분 사이 화재가 시작되면 그 즉시 소화기를 방사한다.

 

화재는 3분 이내야 꺼져야 하며 진압 이후 20분 동안 재점화가 없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테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분 이후 남아 있는 파우치 셀 중 1개 이상에서 충전과 작동 기능이 유지돼야 하는 조건이 또 있다. 총 3번의 실험이 진행되고 이 중 2번을 성공해야만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네덜란드가 2021년 11월 정립한 리튬 배터리 소화기 테스트 기준에 따른 실제 소화시험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행하는 실험과는 상당한 수준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이 기준은 배터리 화재 시 열폭주가 다른 배터리로 이어지는 것을 완벽히 방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화재 발생 즉시 소화를 시작하는 건 불이 붙은 뒤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 소모와 함께 화재 강도가 점점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소화기의 진압 능력을 600Wh라는 배터리 용량으로 한정한다는 점이다. 자체 실험만을 거친 국내 기업들이 진압 가능 배터리 용량의 제한 없이 무분별하게 홍보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KIWA에 따르면 현재 이 기준에 따라 성능 검증을 마친 소화기는 7월 1일 기준으로 모두 21개에 달한다. 테스트를 통과한 기업은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그리스, 스웨덴, 프랑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소방전문 기업들로 확인된다.

 

이처럼 유럽 내에서는 이 기준이 리튬 배터리 화재 소화기의 성능을 확인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소화 능력의 신뢰성을 인정받는다는 게 현지 업계의 설명이다. 주목해야할 건 이 가혹한 시험을 거친 제품들조차 전기차 화재에 대한 적응성은 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리튬 배터리 소화기에 관한 기준을 정립하더라도 전기차 화재만큼은 분명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소방청 “리튬 배터리 기준 도입하겠다” 대책 마련키로

소방용품의 인증과 공인은 단순한 명예의 표시가 아니다. 이는 제품을 찾는 국민에게 확신을 제공하고 기업으로선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높이는 필수 도구로 활용된다. 하지만 소방분야에서 공적으로 제품을 평가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소방 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표준 설정 등의 과제는 소방청이나 KFI, 국립소방연구원 등 관련 기관의 의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변화보단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게 현실이다. 성능 검증 없이 난립하는 리튬 배터리 소화기 문제 역시 환경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소방행정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공장 화재로 리튬 배터리와 D급 소화기 기준 부재에 대한 이슈가 이어지자 소방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화성 공장 현안 보고에 참석한 허석곤 소방청장. 이날 허 청장은 리튬이온 배터리, D급 소화기 기준 부재 문제를 제기하는 여야 의원들 질문에 T/F를 구성하는 등 신속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김태윤 기자


지난 1일 소방청은 화성 공장 화재와 관련해 소화기 인증기준 개정과 제도개선을 위한 ‘소화기 등 인증기준 개선 실무 T/F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리튬 배터리 화재 대응과 금속화재 소화기 기준 도입을 위해 윤상기 소방청 장비기술국장을 단장으로 소방청과 국립소방연구원, KFI 등 산ㆍ학ㆍ연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T/F를 운영해 가칭 소규모 리튬 배터리 소화기기의 인증기준을 도입하고 금속화재 소화기(D급)의 형식승인 기준을 조기에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리튬 배터리 소화기기는 전기자전거 등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소화성능과 시험방법 등을 포함한 KFI인증 기준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금속화재 소화기 기준은 7, 8월께 개정을 완료하고 나트륨과 칼륨 등에 대한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두 개의 기준을 도입하기 위해 소화 효과성 실증 실험 등 기술 연구를 병행할 예정이다”며 “리튬전지와 금속화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변화하는 재난환경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최영, 최누리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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