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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삶, C와 F 사이의 D
서울 성북소방서 박지수   |   2024.07.01 [09:00]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우리 인생을 직업에 맞춰 좀 더 세분화해 본다면 소방관의 삶은 C(Courage)와 F(Fear) 사이의 D(Death)가 아닐까 생각한다. 

 

C와 F 사이에는 D, E가 있지만 그중에 D를 선택한 이유는 D(Death)와 E(Eternity, 영원성)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인 동시에 생물학적으로 영원성보다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가까워지는 존재기 때문이다.

 

이제 C와 F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용기와 두려움, 두 극단적인 감정 사이에서 직업적으로 매번 용기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 소방관이 많은 수를 차지할 것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에 영원성과 불멸성이라는 개념을 수용했는지 모르겠다. 죽음, 노화는 생물학적인 세포로 구성된 인간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방관은 이 자연스러운 현상과 직업적으로 좀 더 자주 마주할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용기와 두려움 사이에는 항상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삶이 놓여있고 누군가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독일 출신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영원성과 불멸성은 종교의 형태로 발현됐다”고 밝혔다. 영원성의 이미지는 초월적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⅓이 신자인 기독교 사상의 하나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불멸성의 이미지는 그리스 로마 시대 올림포스의 신들을 떠올리면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용기와 두려움 이야기에서 영원성과 불멸성을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인류가 가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태도가 영원성의 시대와 불멸성의 시대에서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가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죽음을 초월하려고 했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서양 철학자들은 불멸성의 시대를 살면서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글과 노동으로 남긴 결과물에 불멸성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영원성과 불멸성의 대립은 유효하다. 영원성(죽음에 대한 초월)과 불멸성(죽음에 대한 인정)은 각자 삶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나는 용기와 두려움 둘 중에 용기로 향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를 희열을 느낀다. 출동 벨이 울리고 지령을 듣는 순간부터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용기와 두려움의 순간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한다. 

 

‘검은 구름’, ‘동보’, ‘코드 제로’ 등 몇 개의 단어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고 0.1초가 채 안 되는 찰나에 상황이 인식된다.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상황실에서 보내는 신고내용을 동료들과 나누는 순간, 두려웠던 감정이 용기로 바뀌었다가 다시 몇몇 개인적인 기억들로 이내 용기에 가득 찬 나에서 두려움에 둘러싸인 나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하면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용기를 낸다.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된다. 자연스럽게 팀이 된다. 동료들과 사인, 무전을 주고받으며 한 번 더 일찍 발자국을 내딛고자 했던 마음을 거둔 후 상황이 종료되면 조금이나마 인명과 재산피해를 줄였다는 생각에 안도감과 뿌듯함이 밀려온다.

 

올해 2월 말까지 지휘차 보조석에 타고 현장 출동을 나가다가 연수휴직을 하고 3월부터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 갑자기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 

 

사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인생에서 결혼 다음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린 순간이 아닌가 싶다. 

 

통번역대학원 진학 타임라인이 <119플러스>에 글을 쓴 시기와 많이 겹친다. 통번역대학원을 처음부터 생각한 건 아니지만 영어와 번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건 2019년 하반기다. 

 

처음으로 영문 ‘CMC 로프구조매뉴얼’을 우리말로 번역해 SNS에서 동료들과 공유했을 때다. 저작권 문제 등으로 CMC 본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좀 있었지만 하나의 완결된 번역본으로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피드백을 받는 경험은 상당히 소중했다. 

 

소방서에서 교육자료로 사용해도 되겠냐는 메일부터 번역자료가 도움 됐다는 감사 인사까지…. 내가 번역한 글로 동료들과 소통하며 언어를 통해 무언가를 나누는 것의 힘을 느꼈고 서로 다른 문화, 지식을 연결해 주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번역에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번역과 영어에 관한 관심이 점점 커졌다. <119플러스>에서 화재 분야 집필위원 제안을 주신 것도 이때쯤이다. 2019년 12월께 제안을 받았고 당시 구급 운전 업무를 하고 있던 터라 ‘내가 글을 써도 괜찮을까?’ 하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좀 더 공부해보고 발전하는 기회로 삼아보자’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봐도 과거의 내가 조금은 무모하게 느껴진다.

 

그런 후 2020년 1월 코로나가 찾아왔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엔데믹 선언까지 3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지 짐작조차 못 했다. 코로나 초창기 1년을 보내고 2019년부터 2년간 일했던 구급대 생활을 마친 후 2021년부터 2023년 중반까지 용산소방서 소방용수 담당과 서울소방학교 행정업무를 거쳤다. 

 

출동에서 벗어나 있는 동안 해외 화재진압전술 자료 등을 번역하며 언젠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119플러스>에 연재한 아이디어의 많은 부분을 얻었다. 

 

번역은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 홍콩 등 해외자료들을 처음 접했을 땐 생경함과 동경 사이의 어떤 지점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임용 전 소방학교 교육 때 습득한 이론과 실습 이외 실제 화재 현장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해외자료들부터 접한 게 아이러니로 느껴지기도 한다. 

 

‘실물화재훈련과 재현: 효과적인 훈련에서 충실한 재현의 역할’이라는 해외자료 번역자료를 실었을 땐 실제 경험이 부족한 것을 메우려고 그만큼 많은 리서치를 진행했다.

 

이 글을 <119플러스>에 싣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신규임용예정자 대상 실화재 교육에 참여해 볼 기회가 생겨 실제 불의 열과 연기의 역치를 몸소 느껴볼 수 있었다. 이는 화재 현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운이 좋게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한 탓에 해외자료를 번역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최대한 나름의 시나리오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임용 전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상업 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사에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말이다. 실제 경험과 리서치 간의 간극을 메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틈틈이 리서치와 번역작업을 했다. 해외 화재진압과 한국 화재진압을 작게나마 매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여행지에서 돌아온 여행객의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가 여행을 떠났을 때 맞이하는 생경함과 동경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현실을 직시하는 나침반이 되는 것처럼 해외자료들은 나에게 현실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돼줬다.

 

이러한 현실 직시의 나침반을 마음에 안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번에는 성북소방서에서 지휘차 조수석에 타고 안전담당 업무를 맡았다.

 

출근하면 화재 현장과 마주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주택, 도로, 현장을 구성하는 것을 직접 보고 선배들에게 배워 나갔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갖고 있던 지식과 실제 눈 앞에 펼쳐진 현장을 비교해가며 둘 사이의 차이를 줄여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통번역대학원 도서관 책상이다. 이렇게 용기를 내고 연수휴직을 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용기와 두려움 사이에서 매번 용기를 선택하는 소방관 DNA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어라는 언어, 그중에서 통번역을 선택한 이유는 언어에 관한 관심이다.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준다는 데에 매력을 느꼈다.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재직기간이지만 삶과 죽음을 밀도 있게 경험하며 쌓아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언어에 대한 예민한 날을 세우고 공부에 매진해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소방공무원으로서 현장경험과 영어 통번역 이야기를 엮어 독자분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서울 성북소방서_ 박지수 : pjs8891@seoul.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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