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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소방학문의 현주소와 미래] 제16대 한국화재소방학회 정기신 부회장

소방은 현장 중심 응용학문… 학계와 기술계 활발한 논의 필요
규정 벗어나 성능 중심으로 나아가야… 화재안전기준센터 기대
민간 부문 자체정화시스템 필요… 화재소방학회부터 앞장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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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기자
기사입력 2017-11-10

▲ 제16대 한국화재소방학회 정기신 부회장    


[FPN 이재홍 기자] = 소방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학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소방을 하나의 학문 분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였으며 2000년대 초반에서야 비로소 여러 대학에서 소방 관련 학과들이 신설됐다.

 

한국화재소방학회는 소방이 학문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당시부터 30년간 명실상부한 화재소방 분야 최고의 학회 위치를 굳혀왔다. 약 70여 개 대학에서 소방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교수진들부터 산업계 현장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문가가 화재소방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방방재신문/FPN>은 소방학계를 대표하는 한국화재소방학회의 제16대 임원들로부터 소방 분야 발전을 위한 토대인 소방학문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기획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정기신 부회장이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세명대학교 소방방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 부회장은 교수 임용 전 20년간 소방시설설계와 공사, 감리 등 실무에 종사해왔으며 소방기술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실력파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런 풍부한 실무 경험과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 서울소방본부 성능위주설계 심사단장, 소방청 중앙소방기술심의위원, 중앙소방특별조사위원, 국토교통부 중앙건축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는 정기신 부회장, 30년 가까이 소방인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며 소방 분야가 흔들림 없이 발전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우리나라 소방학문과 기술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나.


소방은 건축과 전기, 기계, 화공, 법 등 다양한 분야가 모여 이루고 있는 응용학문이다. 이러한 응용학문은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해석해내는 것이 주된 방법이며 따라서 소방은 현장이 이론보다 선행하는 현장 중심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불이나 화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학자마다 수십 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화학식으로 화염의 구현과정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장 중심 학문의 이론화, 체계화가 잘 돼가지 못하는 데는 기술 분야의 엔지니어들과 이론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모여 활발한 논의를 할 장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가가 법규에 의해 소방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무엇을 적용하고 무엇을 실시할 것인가를 민간이 아니라 관에서 결정한다. 관은 국민의 부담, 기술적인 완결성 등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실시할 적절한 시점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 소방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국가들도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듯, 개발된 최신 기술들은 바로 세계 각국으로 전파된다. 소방의 기술들도 같다. 이를 국가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실시할 것인지의 문제는 국가의 경제적, 기술적, 환경적 여건 등을 고려해 판단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스프링클러의 설계에 있어 선진국에서는 수리계산이 주종이지만 우리는 성능위주설계를 제외하면 수리계산에 의한 설계를 하는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소방 환경은 수리계산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선진국과 동일하게 6층 이상의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설비를 적용했듯, 이제는 선진적인 기술들을 전면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신기술이나 새로운 연구성과 등을 적용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규정 중심인 우리의 소방체계에서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적용을 위해 신속하게 신기술들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채택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건축, 전기, 가스 등 다른 분야들도 선진국들과 같이 변화하는 기술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제도들을 갖추고 이를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방분야에서도 신기술이나 신경향 등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제도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 세계적인 제도 변화의 흐름에 따라 규정 중심의 소방을 성능 중심으로 바꿔가야 한다. 기술이나 환경이 바뀌어도 반드시 유지될 필요가 있는 규정과 바뀔 수 있는 것을 구별해 바뀌어가는 것들을 신속히 제도권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규정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 소방 발전에 있어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보나.


앞에서 언급했듯, 소방은 현장 중심의 학문이므로 현장의 기술자들과 이론을 체계화하는 학자들이 모여 지속적으로 논의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없어 소방의 학문적 체계와 현장의 기술적인 체계와의 협조와 정착이 늦어지고 있다.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미국 NFPA의 ‘Technical Committee’ 제도다. 설비 분과별로 주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오래된 기술을 폐기하는 등 기준을 변경하고 필요한 실험들을 거쳐 지속해서 발전된 기술을 축적해 나가는 제도로서, 소방학문의 정착과 기술 발전을 위해 가장 신속하게 도입돼야 할 제도다.

 

최근 소방청에서도 ‘국가화재안전기준센터’를 새롭게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미 건축, 전기, 가스 등 다른 분야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며 이제라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

 

타 분야에서 신속한 기술개정제도를 도입한 이후의 보고서를 보면 건축의 경우 평균 6년가량 걸리던 기준 개정이 코드별로 상시 개정되고 있다고 한다. 가스의 경우 역시 개정 기간을 1/8로 단축하는 등 연간 5,931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른 분야들은 좋은 시스템을 적용해 신속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소방 분야만 움츠리고 있을 수는 없다.
 
국가화재안전기준센터 기능에 필요한 사항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설비별 기술위원회(Technical Committee) 설치를 들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신경향, 신기술들을 신속히 적용하고 낙후된 기술과 규정들을 폐지하는 데 있어 전문성 있는 모든 기관과 사람들이 모여 협의와 합의에 의한 민주적인 토론 과정을 통해 의견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센터 안에 실험실을 둬 검증이 필요한 모든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뢰성 있는 실험값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실험이 필요한 예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배관부속류의 등가길이값은 과거 미국 공조냉동학회의 핸드북에서 제시했던 것과 현재 NFPA13에서 제시한 것, 그리고 일본 소방청에서 고시로 발표한 것 중 설계자가 어느 것을 사용하든지 아무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부속류의 등가길이가 2.4배까지 차이를 보여 어느 등가길이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서는 제조사에서 배관부속류를 제조할 때 유속별 마찰손실을 제공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규정이 없어 설계자들이 어떠한 마찰손실을 사용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배관부속류의 등가길이 문제도 화재안전기준센터에서 다양한 배관부속류들을 측정해 발표하고 이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외에도 가스설비 배관을 50m 높이까지 설치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피스톤 플로우를 제외한 가스설비의 배관체적비가 100%를 초과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소규모 공간 천장에 에어로졸소화기를 설치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가스설비의 개구부 보충량이 표면화재 제곱미터당 5kg, 심부화재 10kg을 추가 설치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등에 대한 실험을 실시해 현재 문제가 되는 것들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 또한 국가화재안전기준센터의 역할이 돼야 할 것이다.

 

■ 실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산업체의 과도한 주장에 허가 또는 승인기관이 끌려가는 경우와 허가 또는 승인기관의 독자적인 생각으로 산업체가 자기주장을 펴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모두 관과 산업체, 기술자, 학자들 간의 대화와 소통 즉, 협의의 부재로 발생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공식적인 압력 단위는 ㎏f/㎠에서 약 10배가 큰 MPa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가표준기본법 시행령 별표3의 국제 단위계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유도 단위에 bar 단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MPa 대신 bar 단위를 사용하면 ㎏f/㎠와는 2%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기존에 사용하던 스프링클러 헤드의 K값인 80, 160 등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옥내소화전의 방출압력으로 예전에 사용하던 수치인 1.7~7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좀 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과 협의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이렇게 아쉬움이 남는 사항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협의를 통해 규정들이 결정돼야 할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계속 언급했던 국가화재안전기준센터의 설립과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고 본다.

 

■ 화재소방학회 부회장으로서 앞으로의 구상이 궁금하다.

 

제16대 학회를 시작하면서 정영진 회장과 협의해 소모적이고 과열되기 쉬운 기존 선거제도를 바꾸고자 했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지원을 호소하던 전근대적 선거제도를 빠른 시일 내에 변화시키도록 하겠다.

 

다음으로 학회가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자 한다. 행사나 일이 있을 때마다 기업에 손을 벌리는 행태는 학회의 자주성을 해치는 요소다. 학회에서 과제 등을 수행하고 관리비(overhead)를 받는 것이 수입원의 하나지만 연속성이 부족해 장기간 수입이 없을 때가 많다.

 

2개월마다 발간되는 학회논문지에 별쇄본으로 광고지를 첨부해 수입을 올릴 방법이나 신생산업체의 생산성 체계화를 위한 기술지원을 하거나 제도권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행정지원을 하는 방법 등을 통해 학회의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으려 노력하겠다.

 

세계 경제 성장이 한계 상황에 도달한 시대가 됐다. 각 국가는 발전이 제한되는 시대에 자국의 이익이 우선되도록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국가주도형의 관리체계를 가져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관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산업이 고도화된 사회에서 관의 본질적인 역할은 민간의 발전을 관리해 주는 것이다. 선진화되지 않은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산업을 관이 주도해 발전시켜 나가지만 선진화된 산업사회에서는 관이 성장을 주도하면 자칫 왜곡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발전의 한계를 맞이한 세계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선, 후진국에 관계없이 관의 관여가 점점 커지리라 전망된다.
 
이러한 관 주도형의 시대에서 경직성을 피하려면 민간의 전문가들이 제도적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우리의 소방은 발전을 계속하고 있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없다. 단지 자기 단체의 이익을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민간 부문이 비 민간 부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민간 부문의 자체정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직 내 모든 기구를 점검하고 불합리하게 진행되는 문제점들을 파악해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체정화시스템을 작동시킨다면 조직은 건전하게 발전해나갈 것이다.

 

소방에 많은 단체가 있지만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까지는 문제가 발생하면 관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것들이 바뀔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모든 소방 단체가 자체적으로 정화기구를 만들고 문제점을 발췌, 해결하는 노력을 하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이는 관에서도 권장해야 할 사항이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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