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심정지 환자를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출동은 매번 신속했고 응급처치는 쉼 없이 이어졌지만 병원에 도착하면 의사의 입에서는 늘 같은 말이 나왔다.
“사망입니다”
현장에서의 수많은 CPR, 무의식적으로 반복한 훈련과 이미지 트레이닝, 장비 조작 연습까지도… 모두가 허망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출동은 빠르게 이뤄졌다. 신고자의 말에 따르면 환자가 막 쓰러졌다고 했다. 현장은 센터에서 가까웠고 도로도 막히지 않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했고 누구보다 절실하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환자의 가슴은 미세하게나마 따뜻했다. 이번엔, 정말 이번엔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움텄다.
병원으로 가는 길. 현장에서부터 이어진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며 마음은 내내 조마조마했다.
“이번엔… 제발”
하지만 심장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의료진에게 인계한 후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록 병원 도착 전까지 소생시키지 못했지만 의료진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간절함을 안고 복도 한편에서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결국 들려온 말.
“사망 판정입니다”
참담했다. 마치 폐허 위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나서려던 그때 응급실 문 옆 벤치에 앉아 있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낮았지만 깊고 오랜 슬픔의 그림자 같았다.
원래 같았으면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더 슬픔을 건드릴까 두려워서. 그런데 그날만큼은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꺼냈다.
“좀 전에 환자분 이송했던 구급대원입니다… 죄송합니다. 살려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숨고 싶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살릴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건 오만이었고 건방이었다.
센터로 복귀하는 길.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동료는 아무 말 없이 배려해줬다. 고마웠다. 도착 후 구급차 내부를 정리하는 데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용했던 장비들, 흩어진 응급처치 가방, 좀 전까지 환자에게 부착됐던 장비의 기계음… 그 안엔 조금 전까지의 사투와 패배, 죄책감과 슬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장비를 닦으며 죄책감이 지워지길 바랐고 소모품을 다시 채우며 마음도 다시 채워지길 바랐다. 산소통을 교체하며 건방짐은 내려놓고 침착함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텼다.
퇴근 후 술에 기대는 날이 많아졌고 한동안은 꿈에서도 그 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연습했고 또 연습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살려내지 못한 그 많은 환자. 그들 앞에서 한없이 초라했던 나. 하지만 그 실패들은 결국 내가 타인의 슬픔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슬픔을 지킨다는 건 말을 아끼는 일이었고,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일이었다. 살리지 못한 자리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애써 외면하지 않고, 그 슬픔을 ‘제대로’ 마주 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러다 다시금 슬픔을 마주하는 순간이 올 때면 그 말 한마디가 그날의 전부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지금도 나를 소방관으로 서 있게 한다.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도록.
인천 계양소방서_ 김동석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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