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단독-집중취재] 한국전력 왕십리변전소 화재, 엉터리 소방시설이 ‘火’ 키웠다!

왕십리 무인변전소 화재 당시 소화설비 정상작동 안해

가 -가 +

최영 기자
기사입력 2013-12-09

- 가스소화설비 15병 중 10병만 방출 확인 “정상량 2/3 수준”
- 한국전력 “소화설비 정상 작동했다” 주장은 사실 은폐 ‘사기극’
- 소방시설, 설계ㆍ검수 체제 문제인가? 유지관리 문제인가?
- 화재발생 장소, 화재감지기 설치 상태도 ‘엉망’ 총체적 부실
- 엉터리 소방시설이 애꿎은 소방인력과 국민 혈세 낭비 불러
- 도넘은 부실 소방시설, 철저한 실태조사와 대책 뒤따라야
 

▲ 화재 직후 소화설비 약제저장실의 모습.  원내는 5병의 소화약제가 방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소화가스 용기의 압력 게이지. ⓒ 최영 기자
본지 취재결과 지난달 30일 발생한 왕십리변전소 화재 당시 소방시설로 설치된 가스계소화설비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고 사고 직후 “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됐다”고 밝혔던 한국전력은 이 사실을 끝까지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한국전력 성동전력소 왕십리 무인변전소 변압기에서 불이 나 일대 3만 7천 가구와 상업시설 등에 30분간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마장동과 금호동, 도선동 등 일대 거리와 상가, 주택 등이 모두 암흑천지로 변해버렸고 갑작스런 블랙아웃으로 인한 보상받을 길 없는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남겼다. 인근에서는 정전으로 사람들이 승강기에 갇히는 등 평소 보다 10배에 이르는 20건의 승강기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변전소에는 소방관련법과 한국전력 자체 규정에 따라 화재 발생 상황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자동소화설비가 설치된다. 화재가 발생된 이 무인변전소 역시 이러한 자동소화설비 중 하나인 가스계소화설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던 곳이다.

사고 직후 한국전력 측은 방송 등 다수 언론에 “소화설비가 제대로 작동은 했는데 발화 에너지가 세기 때문에 이를 초과해서 작동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한전 측의 주장은 “화재시 초기 소화를 위해 법에 맞게 설치한 소화설비가 정상 작동했음에도 왜 불을 끄지 못하고 전소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했다.

4일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국전력 성동전력소 관계자도 “소방시설은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면서 “소방서에서 시설에 대해 조사했고 우리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한국전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곧 또다른 변전소에서 유사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현재 설치된 법적 소화설비는 ‘무용지물’이라는 결론이 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변전시설 소화설비의 적정성 문제와 관련 법규정을 뜯어 고쳐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본지 취재결과 화재 당시 왕십리변전소의 소화설비는 애초부터 정상 작동되지 않았고 한국전력 측의 ‘정상 작동’ 입장 표명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발생한 왕십리변전소 

▲ 지난달 30일 화재가 발생한 성동전력소 왕십리 무인변전소 MTR(변압기)실의 모습. 이번 화재로 MTR1실 전체가 전소됐다. ⓒ 최영 기자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왕십리변전소는 연면적 15.858.1제곱미터 규모 중 연면적 2,901제곱미터,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154KV 전기공급설비(무인변전소)가 들어서 있다.

1층에는 MTR(변압기)1, 2, 3, 4실과 배전반실, 소화설비실 등이 있고 지하에는 케이블처리실과 풍도실 등이 들어서 있으며 3층에는 통신실이 위치해 있는 구조다.

최초 화재가 발생된 장소는 1층(지하1~3층이 모두 합쳐진 구조)에 위치한 MTR(변압기)1실로 이곳의 소방시설로는 가스소화설비 작동시 소화약제가 방출되는 하향식 헤드 15개와 6개의 광전식 연기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지난 2006년 4월 28일 건축물사용승인을 받았으며 올해 3월에는 민간 전문업체로부터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도 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화재 당시 정상 작동 안한 ‘가스소화설비’

가스계소화설비는 스프링클러처럼 물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나 할로겐화합물, 청정소화약제 등 가스를 사용해 질식이나 냉각, 연쇄반응억제 등의 소화원리로 구획된 공간 내의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자동소화시스템이다.

사고 이후 현장을 확인한 결과 왕십리변전소의 가스소화설비는 현행법상 청정소화약제로 분류되는 HCFC-Blend A 소화약제 50kg짜리 용기가 총 15개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가스소화설비는 동일 건축물 내에 2개소 이상 방호구역이 있을 경우 소화약제 저장용기를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화재 발생 장소는 이 중 가장 큰 공간이어서 설치된 모든 소화약제를 방출시켜야만 소화가 가능한 구조다.

때문에 화재를 정상적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소화설비 저장실에 구비된 50kg 소화약제 용기 15병 모두가 방출됐어야 했지만 취재결과 사고 당시에는 2/3 수준인 단 10병만 방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 2일 화재 시 일부만 방출된 10병의 가스소화약제 용기가 교체를 위해 설비에서 분리되어 소화약제 저장실 앞에 놓여 있다. 원내는 가스가 모두 방출된 상태의 소화약제 용기 압력게이지. ⓒ 최영 기자
가스소화설비는 해당 공간에 적합하게 설계된 소화약제 전량을 조기에 방출하지 않을 경우 화재 진압이 절대 불가능하다. 즉 왕십리변전소의 부실 소화설비가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할 소방서인 광진소방서에 제출된 준공 당시 소방시설 허가동의 자료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해당 시설은 MTR(변압기)실로 불리우는 공간으로 층 높이는 16.1미터에 면적이 119제곱미터로 총 체적은 1915.9입방미터에 이른다.
적정 설계치라면 이 곳에서 발생된 화재를 정상적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696.3kg(1평방미터 당 소화약제 필요량: 약 0.363kg)의 소화약제가 필요하다. 왕십리변전소는 여기에 소화약제 방출시 세어나갈 수 있는 틈새(개구부) 등을 고려해 준공 당시 21.2kg의 소화약제량을 더해 총 717.5kg의 약제가 방출되도록 설계해 인허가를 받았다.

따라서 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총 750kg(50kg 용기 15병)이 모두 방출됐어야 하지만 이번 화재는 무려 250kg(5병)이나 방출되지 않았던 것으로 이 상황이라면 당연히 소화설비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 당시 화재가 발생된 MTR(변압기)1실에 설치돼 있는 가스소화설비의 분사 헤드의 모습     ⓒ최영 기자
취재가 계속되자 지난 5일 한국전력 성동전력처의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기에는 소화약제가 방출이 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된 줄로만 알았다”며 뒤늦게 말을 바꿨다.

설사 이 말이 사실일지라도 변전시설의 책임 당사자인 한국전력이 소방시설의 특성조차 모르는 '소방시설 관리 능력 부족'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더욱이 화재 직후 전체 변전소의 운용을 정지하고 2일부터 들어간 관계기관 합동 화재조사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소화약제를 부랴부랴 교체한 것은 은폐 의도가 없었다면 불필요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당초 한국전력에서 밝혔던 “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는 말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던 것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다.
 
이처럼 원자력 시설의 사고 은폐 사건과 유사한 파행이 한국전력을 통해 재현되면서 소방시설을 부실하게 관리한 것도 모자라 진실까지 왜곡했다는 국민적 비난을 피하긴 어렵게 됐다.
 
화재감지기 설치 상태도 ‘엉망’

왕십리변전소는 소화설비 뿐 아니라 화재감지기도 화재를 조기에 정상적으로 감지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설치 상태가 엉망이었다.

MTR(변압기)실의 경우 총 6개의 연기감지기(광전식 스포트형)가 설치돼 있고 복수의 감지기가 화재를 감지할 경우 소화약제를 방출하는 구조다. 하지만 감지기의 설치 상태는 소방분야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15미터가 넘는 높은 천장에 설치된 감지기는 타공을 한 듯한 구멍 속에 숨겨 놓은 것처럼 ‘쏘옥’ 들어가 있고 이것도 모자라 방충망처럼 생긴 망으로 덮어 씌어 놓기까지 했다.

▲ 화재사고가 발생한 MTR1실과 동일한 구조의 MTR3실 광전식 연기감지기의 설치 상태. 천장 6곳에 매립하다시피 설치된 감지기에 망사로 보이는 덮개까지 씌어져 있다. ⓒ 최영 기자
화재감지기 전문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매립 및 망사 덮개) 설치할 경우 당연히 화재 감지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무지해도 이렇게는 설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도 “연기감지기는 연기가 아무리 많아도 기류가 형성되어 옆으로 이동해 감지기 안으로 들어가야만 정상 동작을 하게 된다”며 “이렇게 매립이 되어 있으면 화재시 기류가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 없어 작동 자체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 MTR(변압기)3실에 실제 설치되어 있는 화재감지기의 모습 ⓒ 최영 기자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설치된 화재감지기는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으로 준공된 지 8년 동안 이 같은 설치 상태를 유지해 온 한국전력의 부실한 소방시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스소화설비 적상작동 했다면…?

▲  화재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MTR(변압기)실의 방화셔터 @최영 기자   ⓒ최영 기자
변전소 내 MTR(변압기)실은 세 개 벽면이 콘크리트 구조이지만 한 면의 경우 전체가 방화셔터로 구획된다.
 
화재 발생 동시에 폭발이 일어나 방화셔터가 붕괴됐다면 구획자체가 깨져 외부 공기가 유입되고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서는 가스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방출됐다 하더라도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화재가 어떤 전기적 요인으로 인해 서서히 확산됐다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화재 초기에 발생되는 연기를 연기감지기가 즉시 감지하고 동시에 가스소화설비가 정상 작동했다면 폭발 이전에 충분히 초기 소화가 가능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화점이 300도씨가 넘는 절연유에 불길이 옮겨 붙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화재로 인한 연기가 분명히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별개로 보더라도 ‘한국전력’이라는 주요 기관에서 관리하는 변전소의 소화설비 자체가 정상 작동조차 안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가의 중추적 기능 중 하나인 전력을 담당하는 '한국전력'이라는 핵심 기관의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소화설비의 정상 작동으로 화재를 자체 진압했다면 사고 당시 동원된 99명의 소방인력과 10명의 경찰, 그리고 소방펌프차와 물탱크차 등 29대에 이르는 대규모 소방장비의 소모적인 출동도 없었을 일이다. 즉 변전소의 소방설비 부실이 가뜩이나 부족한 소방인력 낭비와 국가 예산의 경제적 손실까지 불러온 꼴이다.
 
변전소는 이번 사고로 나타난 정전 피해와 같이 특정 지역의 전력을 조달하는 국가기간시설로 이러한 무인변전소는 전국에 640여 곳에 이른다. 이는 전체 변전소 중 80%를 넘어서는 수치다.

아직까지 화재 당시 소화설비가 정상 작동되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초 설계 또는 시공 과정에서 결함이 시작됐거나 준공 이후 소방시설을 부실하게 관리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한국전력의 화재안전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전력 수요가 아닌 변전소 화재로 인한 블랙아웃이 또언제 발생될지 모른다는 국민적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소화설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정도로 부실한 한국전력의 화재안전시설 문제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관계기관의 철저한 실태조사와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 지난 2일부터는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등 관계기관의 합동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 최영 기자

<저작권자 ⓒ 소방방재신문 (http://www.fpn119.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소방방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