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2일. 대지진으로 섬나라인 아이티가 초토화됐다. 사상자는 25만 명에 달하고 10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도 현장으로 향했다. 당시 민항기를 타고 이틀이 넘게 걸려서야 겨우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버렸고 구조장비도 열악했지만 구조 활동만큼은 세계 그 어느 구조대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았다. UN 사령관의 가족이 숙소 지하 휘트니스장에 고립된 상황에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에 구조를 요청할 정도였다. 그 현장엔 이용진 서울119특수구조단 뚝섬구조대 지대장이 있었다.
“한국 구조대원들의 열정과 구조능력에 반하는 출동 과정, 현장운영 절차 등이 아쉬웠습니다. 귀국 후 많은 고민을 했고 좀 더 심도 있는 이론과 실전, 경험이 집약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도시탐색구조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1999년 서울소방에 구조 특채로 임용된 이용진 지대장은 서울소방학교 전임교수팀 부교수와 중앙119구조대 긴급기동팀, 강남소방서 119구조대장 등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구조대원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처음부터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현장을 대했던 건 아니다. 그러다 2006년 서울소방학교에서 진행한 ‘미국소방관 기본과정’을 수료한 시점이 그의 소방관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국내엔 화재능력평가 같은 개념이 없었어요. 그러다 미국소방관 기본과정과 이듬해 전문과정까지 수료하면서 소방관으로서 현장에서 더 많은 구조대상자를 구하고 싶다는 욕심과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죠”
이후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찐’ 소방관이 되고자 했다. 화재진화사와 인명구조사, 구조다이버, 국제로프 등 지금까지 취득한 전문자격만 해도 16종에 달한다. 심지어 열쇠관리사 자격까지 취득한 이용진 지대장.
“구조출동 건 중 시건 개방할 일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때마다 무조건 시건 장치를 부수는 게 좀 답답하고 안타까웠어요. 호기심도 생겼던 것 같고요. 시건 장치의 구조만 알더라도 파손 없이 개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방법을 알고 싶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까지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어요”
이용진 지대장이 강남소방서 119구조대장이던 2019년. 유난히도 더웠던 7월 4일 오후 2시 23분께 신사역 인근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의 가림막과 철골조 일부가 무너지면서 30t에 달하는 잔해물이 도로를 덮쳤다.
이 사고로 철거 현장 옆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신호 대기하던 차량 4대 중 1대의 조수석에 탄 여성이 숨지고 운전석에 탄 남성은 오른쪽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결혼 예물을 찾으러 가던 길이었다.
현장으로 향한 이용진 대장은 재빨리 구조에 나섰다. 도착한 지 20여분 만에 구조대상자를 구해냈지만 안타깝게도 숨을 거둔 상태였다.
“현장에서 시도하려는 구조방식을 반대하는 대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설득했죠. ‘구조대원이라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게 평소 신조거든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해보지 않고 ‘절대 안 될 거야’라고 속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이용진 지대장은 구조ㆍ구급대원에게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겨지는 ‘KBS119상’의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우면산 산사태 구조활동 등 국내 재난 현장은 물론 인도네시아 대지진 등 해외 재난 현장에 파견돼 1400여 명의 생명을 구조한 공로 등을 인정받았다.
너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와서일까? 그는 수상 직후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뭘 해도 즐겁지 않았고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3년 정도 방황한 그는 ‘이대론 안 되겠다. 삶의 활력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전자상가를 찾아 조그마한 카메라를 샀다.
카메라 렌즈에 담기는 세상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번날이면 창경궁을 찾아 사진 촬영을 했다. 그렇게 그는 휴식을 통해 다시금 열정적인 삶에 불씨를 지폈다. 요즘엔 글씨를 쓰는 데도 취미가 생겼다.
“좋은 글귀를 쓰다 보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정신집중에도 좋고요.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현장에서 처참한 장면을 많이 보게 되는데 자기도 모르게 쌓여 결국 PTSD 같은 결과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틈틈이 환기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어요”
25년에 가까운 세월을 소방관으로 살아온 그는 국내와 해외 현장에서 익혀온 경험치들을 후배 소방관에게 나눌 준비에 한창이다. 지금까지도 교관 활동 등을 하며 다양한 현장 구조기술을 공유했지만 이번엔 더 많은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서울소방학교에 처음 개설된 ‘도시탐색구조교육’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CHANGE에서 ‘G’에 붙은 자그마한 ‘T’는 ‘TREAT’, 즉 두려움을 뜻한다고 해요. 다시 말해 ‘T’를 빼면 ‘CHANCE’, 기회가 생깁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 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배로 남고 싶습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소방방재신문 (http://www.fpn119.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ot!119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