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소방공무원 대상 자살 예방 강사를 취득하고 몇 년간 자살 예방 교육한 나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죽음만이 지금 이 고통의 끈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중 일부는 사실 “살려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담센터에서 동료상담을 하며 자살위험에 놓인 여러 직원을 만났다. 그들이 죽고 싶은 이유는 정말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설마 그런 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는 수만 가지고 생각만큼 그렇게 크고 심각한 게 아닐 때가 더 많다. 너무 힘든 상황과 마주했을 때 피하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고 해결방안도 보이지 않으면 모든 걸 놓아버리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론 그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너무나 평범한 직원이 있었다. 소방관이니 경제적으로나 고용적으로 안정됐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딱히 눈에 보이는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항상 죽고 싶었어요. 전 늘 죽고 싶어요”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과연 그 내면에 깔린 죽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인생이 즐겁지 않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큰 이벤트나 고생스러움은 없지만 이렇다 할 목표가 없는 상황이었다.
깊이 들어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펼쳐보면 분명 해결점이 보일 테지만 너무 사적인 영역까지 파고들면 조직상담으로 푸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자살위험이 크고 장기간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외부 전문기관으로 연계하는 게 현명하다.
승진에 여러 번 누락된 데다가 가정에서도 삐걱대고 허리 수술 이후 공상처리가 안 돼 골치 아픈 상황에 민원까지 들어온 직원을 만났다. 누가 봐도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이 주변에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승진도 물먹었는데 이혼하게 생겼고
몸까지 아픈데 직장에선 민원으로 괴롭다.
정말 죽고만 싶다. 답이 없는 것 같다”
무슨 말이 과연 도움이 될까 싶은 사면초가 같은 상황이었다.
“그 순간을 잘 버텨내고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간다.
지금의 이 고민이 별거 아닌 일로 여겨지는 순간도 온다”
이런 희망적인 얘기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과연 이런 말이 그에게 정말 희망이었을까, 고문이었을까. 어느 하나라도 튼튼한 자원이 있다면 버티는 데 도움이 될 순 있다. 그러나 자살로 이어지는 사람 대다수는 주변 자원이 모두 무너진 상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승진도 하고 직장을 옮겨 잘 지내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면서 ‘그 순간만 잘 이겨내면 다시 희망을 볼 수 있는 시기도 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힘든 사람들에게 “이겨내”라는 말보다 “잘 버텨내”라고 말한다. 상담사이기 때문에 드러내고 이해 못 하겠다고 말하진 않지만 나도 사람이고 모든 걸 경험해보진 않았기에 이해가 어려운 상황들도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상담사이기 전에 소방관이라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훨씬 수월했던 것 같다.
동료상담을 오면서 ‘내가 한 말이 소문나면 어쩌지? 비밀보장이 될까?’ 하는 노파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담윤리에 내담자의 비밀보장 의무가 있다.
업무에서 취득한 정보는 업무에만 국한하고 사적으로 공유하지 말아야 하는 걸 분명히 지키는 게 상담사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윤리다. 다시 말해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가 가장 안전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불안해할 수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소방동료상담사들은 이 기본적인 부분을 놓치는 일이 없다. 7년이란 시간 동료들을 만나고 고민을 공유하면서 함께 걱정해 주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이 기본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살이라는 특정 사례는 비밀보장에서 제외된다. 적극적인 구호 조치, 가족과의 정보공유가 원칙이다. 그런데도 자살위험에 있던 직원들을 직장이나 가족에게 알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죽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던 직원을 두고 ‘아침에 그 직원 부고를 듣게 되는 건 아닐까? 마지막 통화 상대가 나이면 어쩌지?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아 구하지 못한 거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운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직장으로 복귀했고 이후 직장 안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단 한 번도 그 일에 관해 묻거나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상담사라면 내담자의 구호 조치를 위해 비밀보장원칙을 깨는 게 맞다. 하지만 조직상담사라면 실제 구호 조치에 적극적인 게 그 직원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 직원이 울며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휴대전화기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전화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순간에 기댈 수 있도록 기다려준 역할을 소담센터에서 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나도 소방관으로서 힘들었던 순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듯이 조용히 그들의 동반자가 돼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상처도 받고 속도 상했지만 여전히 소방관 사정은 소방관이 가장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비밀보장이 되겠어?’라고 의심하는 일부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해야 하는 그 절박한 상황에
그래도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동료상담사가 있었다는 건 참 감사할 일입니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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