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상황일지 _
사망자 4명 수습 ①
사망자 2명 수습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영하의 추위와 싸우며 새우잠을 자고 나니 온몸이 불편했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기계에 그리스가 없어 뻑뻑하게 작동되는 느낌이랄까.
대원들의 표정에도 피곤함이 가득했다. 어제는 자지도, 먹지도 않고 생존자 구조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피곤함을 몰랐지만 잠을 자고 나면 그 피곤함이 배로 돌아온다.
그래도 웃으면서 아침 인사를 나눴다. 작은 생수병 하나를 들고 건물 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하루종일 흙먼지 속에서 고생하고 야간에는 추워서 세수도 못한 상태로 잔 인원이 많았다).
간이 화장실을 설치해야 했는데 숙영지를 함께 사용하는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사람들이 학교 1층 화장실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화장실은 말 그대로 똥 천지였다. 그날 물류반에서는 그곳을 호텔 화장실로 만든 기적을 보여줬다.
즉석 식량에 물을 부으면서 어제의 고생에 대해 서로를 격려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지진의 참혹한 현장으로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출동해야 했다. 출동 전 구조대장의 안전교육이 시작됐다.
현장 지휘소에서 오늘 수색지역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토의가 진행됐다. 현재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에서 구조요청이 없는 상황이라 자체 지역을 선정해 생존자를 수색하기로 했다. 우선 어제 수색을 종료한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안전교육을 마치고 구조반별로 배차된 차량에 탑승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숙영지 앞 도로에서 지역 주민 간 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조금 뒤 경찰이 민간인 세 명을 데리고 숙영지로 들어와 정문을 폐쇄했다.
그러자 화난 지역 주민들이 정문을 흔들고 강제로 숙영지에 진입하려고 했다. 대원이 모두 나가고 없는 상황이라 긴장됐지만 특전사 대원이 일부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사태가 진정되자 상황을 파악했다. 알아보니 이재민 주택을 약탈하다 검거된 시리아 난민 3명에 대한 튀르키예 피해 주민들의 집단행동이었다.
힘든 상황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얼마나 화가 날까. 우리는 앞으로 이런 소요 사태가 있을 것을 대비해 ‘위험 상황 발생 시 대피 절차’ 계획을 수립하고 전 대원 대상 교육을 준비했다.
또 숙영지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외교부에서는 튀르키예 정부에 경비 인력 증원을 요청했다(다음날 치안사령부 소속 무장 군인 4, 경찰 5명이 증원됐다). 숙영지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마무리할 때 즈음 구조반은 현장에서 옆으로 무너진 건물을 수색하고 있었다. 다급하게 현지 주민이 다가왔다.
“지인이 4층에 고립돼 있다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우린 신고자 뒤를 따라 신속하게 이동했다. 큰 건물을 돌아 뒤로 가니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크고 작은 건물이 말 그대로 폭삭 무너져 있었다. 포탄에 맞아도 건물의 형태는 알아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은 그보다 더 심했다.
지진이 강타한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피해는 더 심각했다. 굴착기 등 많은 중장비와 구조 인력이 분주하게 구조 활동을 하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실종된 가족들을 찾기 위해 무너진 건물마다 모여 있었다.
지진 발생 이틀 뒤 튀르키예 정부는 안타키아에서 생존한 모든 시민에게 안전한 지역으로의 이동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떠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무너진 집 안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갇혀있거나 실종된 상태라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가족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버려두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떠날 수 있는 게 가족의 마음일 것이다. 야간이 되면 무너진 건물 앞으로 삼삼오오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는 생기가 없었다. 이제 슬퍼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은 기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저기 내 딸이 묻혀 있어요. 제발 꺼내주세요”라며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골든타임이 지난 시점에서 이런 요청을 모두 들어줄 순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해야 하는데 구조견의 생체 반응이 없는 곳을 수색하는 건 무의미했다.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우리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대원들의 마음도 무거웠다.
‘신고가 들어온 곳에 가서 생존자가 없으면
다시 와서 따님을 찾아볼게요’
마음속 약속을 남기고 신고자의 뒤를 따라 계속 이동했다.
신고자를 따라 도착한 현장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건물이었던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건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마치 콘크리트 잔해를 쌓아 놓은 산더미 같았다. 신고자는 여기저기 튀어나온 철근을 잡고 콘크리트 산더미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우리도 뒤따라 올랐다.
건물의 바닥인지, 천장인지 알 수 없는 콘크리트판 아래 생존자가 있다는 신고자의 손짓에 의아했다. 그래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니 우린 수색 절차에 따라 수색을 시작했다. 생존자를 발견하면 좋겠지만 이 부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그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수색 중 붕괴된 콘크리트 보에 머리가 짓눌린 부부를 발견했다. 다른 곳처럼 지층과 1층 정도만 무너졌다면 생존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이곳처럼 건물 전체가 다 무너진 곳에서 생존할 확률은 낮았다.
내부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부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한쪽으로 쏠려 미끄러졌고 내력벽 보가 덮치면서 깔린 듯했다. 한날한시에 참변을 당해 함께 사망한 부부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을 뒤로하고 발견한 사망자를 최대한 수습하기로 했다. 5층 바닥 콘크리트가 무너지면서 4층 실내에 있는 가구와 구조물에 걸려 사이사이 공간이 생겼다. 그 사이 공간에 구조대원들은 쪼그려 앉아 구조작업을 펼쳤다.
공간이 너무 좁아 진입 통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5층 콘크리트 바닥은 추가로 더 무너져 내릴 것 같진 않았다. 사망자를 짓누른 콘크리트 보를 깨서 시신을 수습하기로 했다.
휴대용 발전기를 이용해 착암기와 해머 드릴을 작동했다. 좁은 공간에서 쪼그려 앉은 자세로 무거운 장비를 운용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국제구조대원이 되기 위해 받아야 하는 필수 교육이 도시탐색 교육(도탐교육)이다. 처음 교육을 받을 때 ‘인간이 이런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단단한 콘크리트를 깰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게 소방관 DNA를 가진 국제구조대원이다. 정형화된 훈련장이 아닌 지진 피해 현장에서 착암기 등 무거운 파괴 장비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건 구조대원들의 악과 깡, 심지어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가능하다.
착암기 날이 상하 운동을 하며 콘크리트와 부딪치는 충격파를 온전히 구조대원의 어깨와 허리 등 온몸으로 받아야 한다. 좁은 공간, 쪼그려 앉은 자세 무엇하나 구조대원에게 유리한 게 없다. 대원들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호소했다.
좁은 공간에서 착암기에 힘을 실으려면 온몸으로 눌러야 했다.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콘크리트를 부수면서 발생하는 분진(먼지)을 마시며 작업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방진 마스크와 보호 안경이 지급되지만 현장에서 격렬하게 작업하다 보면 숨이 차서 마스크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 파괴 작업 시 눈 보호를 위해 보호 안경을 써야 하는 데 마스크를 쓰면 보호 안경에 습기가 차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작업하는 중에 마스크를 온전히 쓰고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방진 마스크와 보호 안경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원들은 먼지 마시는 것을 감수하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사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냄새였다. 사람은 사망한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외부 환경에 따라 부패 속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사망자는 부패한다. 부패는 신체 내부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에 시체의 몸 안에서 가스가 배출된다.
사망한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 냄새를 참으면서 구조작업을 한다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구조대원이라면 대부분 이런 냄새에 조금은 익숙해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원들은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오는 냄새에 대한 트라우마도 PTSD1)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한 대원은 식사 때마다 과거 사망사고 현장에서 맡았던 시체 부패 냄새가 코로 느껴져 2개월간 헛구역질을 했다고 한다.
약 2시간의 콘크리트 파괴 작업을 통해 사망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최초 확인된 머리를 누른 콘크리트만 조심스럽게 깨면 사망자들을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장을 지켜보던 안전담당자가 구조작업을 중지시켰다. 그 부분을 파괴하면 5층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내려앉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망자를 짓누른 콘크리트 보가 5층 콘크리트 바닥을 지탱하고 있었다. 지탱하는 힘을 해제하면 바로 붕괴된다. 그럼 구조대원들의 안전도 보장이 안 된다.
우린 자체 토의 끝에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에 크레인을 요청해 상부 콘크리트를 잡고 작업을 계속하자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크레인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잠깐 쉬고 있는데 현지 주민이 찾아왔다. 통역사가 현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생존자가 있다고 하는데요.
정황도 어느 정도 명확하다네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함께 작업한 현지 구조 인력에게 상판이 무너지지 않도록 크레인으로 잡고 콘크리트 보를 해체하면 사망자를 수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새로운 신고자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사망한 부부를 구조하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생존자가 있다는 신고를 외면할 순 없었다. 두 번째 신고자를 따라간 곳을 수색했지만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숙영지로 돌아오는 길에 최초 현장을 가보니 사망한 부부는 수습된 상황이었다. 끝까지 구조해 주지 못한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
1)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튀르키예 지진 7.8
<119플러스>를 통해 연재되는 ‘튀르키예 지진 7.8’이 동명의 에세이로 출간됐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생존자 구조에 대한 열정으로 튀르키예 국민을 감동시킨 한편의 드라마를 책으로 만나보세요.
가격 26,000원 페이지 259page 사이즈 153×225㎜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소방방재신문 (http://www.fpn119.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튀르키예 지진 7.8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