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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일 년 살기- Ⅳ
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2024.07.01 [09:00]

이탈리아 기지와의 교류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주변에 두 개의 다른 나라 기지가 있다. 가장 가까운 기지는 2㎞ 정도 떨어진 독일 ‘곤도와나’기지다. 독일기지는 격년으로 하계 시즌에만 운영되는데 특별한 교류 없이 남극에서 철수하기 직전 연구지에서 잠깐 만난 게 전부였다.

 

설 연휴 기간 이탈리아 기지 물류 이동 업무 중 약속된 저녁 만찬이 성사됐다. 먼저 우리 기지에 이탈리아 ‘마리오주켈리’기지 대원들이 방문하기로 했다. 보통은 1주일에 1회 대청소를 하지만 이날은 특별히 추가로 대청소를 했다. 

 

코로나19 이후로 기지 간 교류가 중단됐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첫 번째 행사라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많이 썼다.

 

환갑을 바라보는 선임 중장비 대원이 먼지 쌓인 손님용 슬리퍼를 모두 꺼내고 빨아서 건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 평소와 달리 즐겁게 청소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조리 대원은 여러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파일럿을 포함한 이탈리아 기지 대원 12명이 헬기를 타고 도착했다. 헬기 착륙과 초기안내를 맡은 내가 그들을 처음 맞이했다. 미리 ‘환영한다’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를 알아 놨다.

 

“Benvenuto!”

 

도착한 이탈리아 대원들은 대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기지를 둘러봤다.

 

▲ 기지 견학

 

여러 시설을 돌아보던 그들은 특히 우리 장보고 과학기지의 자랑인 온실을 보고 감탄했다.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보급이 끊기는 겨울을 대비해 채소를 키우는 온실을 운영한다. 이탈리아 기지는 하계 시즌에만 운영하다 보니 온실을 마주한 적이 없었을 거다.

 

▲ 장보고 기지 온실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이탈리아 대원들

 

우린 자연스럽게 만찬을 시작했다. 만찬은 조리 대원이 준비한 한국식 양념갈비를 비롯, 구이용 고기가 메인이었다. 소주를 비롯한 주류도 준비했다. 

 

이탈리아 대원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소주와 김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양념갈비도 신기해하는 듯했다. 또 소주와 맥주를 섞는 한국의 소맥과 소주에 레몬즙을 타서 마시는 등 색다른 경험을 즐겼다. 

 

▲ 만찬을 즐기는 이탈리아 대원

 

이때 의료대원이 과식한 대원들을 위해 식당에 준비해 놓은 소화제(까스활명수)까지 섞어 마시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말 맛있네요!”

“하하, 그건 소화제예요. 우리도 그렇게 마시진 않아요”

 

그런데도 이탈리아 대원들은 즐거워하며 몇 잔을 더 마신 후에야 소주에 소화제를 타서 마시는 걸 그만뒀다.

 

“이탈리아 기지에는 젊은 여자 연구원이 많은데 

우리 기지에 올 때는 젊은 대원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네요”

 

우리 기지에는 남자 대원들만 체류하는 걸 확인한 이탈리아 여성 대원이 농담을 건넸다. 그간 장보고 과학기지에 남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두 달 만에 여성이라는 존재를 처음 마주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보고 과학기지에서의 만찬은 마무리됐다. 아쉬움을 가득 남긴 이탈리아 대원들은 헬기를 타고 그들의 기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이탈리아 기지에서 하계 시즌 철수 전 우리 기지 대원들을 초대했다.

 

▲ 이탈리아 기지 전경

 

우린 김치와 소주를 챙겼다. 답례선물로는 조리 대원이 이탈리아 빵과 겨뤄보겠다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빵을 준비해 갔다.

 

▲ 이탈리아 기지에 선물로 줄소주를 든 중장비 대원

 

이탈리아 기지는 뭐라고 딱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그냥 ‘이탈리아’ 스러웠다. 우리 역시 기지 내 여러 시설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은 후 만찬에 참석했다.

 

▲ 이탈리아 기지 견학

 

▲ 이탈리아 연구시설 견학

 

웰컴 드링크로 준비된 이름 모를 칵테일부터 이탈리아 쉐프가 준비한 여러 종류의 수제 피자, 그리고 와인까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디저트로 나온 에소프레소와 젤라토도 완벽했다.

 

▲ 이탈리아 기지 웰컴 칵테일

 

▲ 이탈리아 기지 쉐프

 

▲ 이탈리아 기지 저녁 만찬

 

▲ 이탈리아 에소프레소

 

이탈리아 기지 대원들과 남극 생활의 에피소드 등을 공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부 젊은 대원은 이탈리아 기지 여성연구원과 이메일을 교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극을 떠난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건 또 다른 비밀이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기지로 복귀하려는 찰나 한 이탈리아 대원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이탈리아 기지 댄스파티가 있는 날이에요. 

곧 시작되니 함께 즐기고 자정쯤 돌아가는 게 어때요?”

 

젊은 대원들은 좋은 기회라며 기뻐했다.

 

“전 헬기를 타고 복귀할 테니 

댄스파티에 참석하고 싶은 대원은 남아서 즐기고 

나중에 기지까지 걸어오세요”

 

인솔자인 대장님의 한 마디에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장보고 과학기지와 이탈리아 기지는 바다를 가로질러 직선거리 8㎞나 떨어져 있어 걸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복귀하는 길에 이탈리아 대원들은 여러 기념품과 저녁 식사 때 먹었던 피자, 와인을 선물했다. 기지 복귀 후 함께 가지 못했던 다른 대원들과 선물 받은 피자를 나눠 먹으며 이탈리아 기지에서의 일화를 전했다.

 

가장 큰 화젯거리는 중장비 대원이 이탈리아 기지에서 엄청난 친화력으로 주변을 사로잡고 사진 수십 장을 남겼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남극 생활의 또 다른 진기한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게 됐다.

 

▲ 이탈리아 기념 사진

 

남극의 여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100일 남짓한 남극의 여름은 모두가 바쁘다. 연구원들은 나름대로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바쁘고 시설유지 대원들은 추운 겨울에 할 수 없는 야외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해야 하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가끔은 기지에서 각 분야 연구지로의 유일한 이동수단이 헬기라 서로 먼저 이용하려다 보니 일정 조율 과정에서 연구팀별로 마찰이 생길 정도다. 

 

이쯤에서 안전 대원으로 근무한 필자가 가장 할 일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보면 안전 대원에게 가장 바쁜 시기는 하계 시즌이다. 

 

연구대원들은 연구를 위해 여러 연구지에 물품을 옮겨야 해서 헬기를 자주 이용한다. 그때마다 헬기 이착륙 유도를 위해 헬기장으로 이동한 후 주변 안전을 확보하고 헬기의 이착륙을 돕는 업무를 해야 한다. 

 

▲ 헬기 이착륙 유도

 

중장비가 움직일 때도 안전사고의 위험이 존재하기에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단순히 안전 확보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중장비 대원의 보조수 역할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예를 들어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옮길 땐 크레인의 아웃트리거 설치에 필요한 침목을 옮겨준다. 또 컨테이너에 크레인 연결 시 컨테이너에 직접 올라 크레인 로프 외관 안전검사와 함께 로프를 연결하는 작업 역시 안전 대원 몫이다.

 

기계설비 대원, 발전 대원 등이 무겁거나 위험한 기계를 다룰 때도 안전 대원이 보조자 역할을 하게 된다.

 

▲ 유류탱크 이송작업 지원

 

▲ 컨테이너 이동작업 지원

 

이런저런 연구 활동과 작업을 함께하다 보면 여러 분야에 대해 조금씩 경험할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너무 무분별하게 있다 보니 가끔은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 대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일들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생물연구 지원

 

▲ 야외 연구활동 지원

 

▲ 해외연구팀 출남극 지원

 

하역작업이나 위험한 실험 전에는 안전교육과 위험성 평가를 해야 했다. 평가 후에는 내용을 공유하고 안전조치까지가 안전 대원의 업무였다. 모두 처음 접하는 업무라 조금 부담됐던 게 사실이지만 어찌 보면 안전 대원 본연의 업무를 하는 것 같아 더 열심히 해냈던 것 같다.

 

▲ 헬기 안전교육

 

▲ 안전교육

 

▲ 위험성 평가

 

▲ 위험성 평가 안전조치

 

안전 대원의 기본 업무는 기지 내 소방시설, 구조구급장비를 수시로 점검하는 일과 소방훈련이다. 보통 소방훈련은 두 차례 이론 교육과 한 차례 실습 후 화재 상황을 가상으로 연출해 진행했다.

 

이때 실제로 기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 구조대상자를 구조하는 활동과 응급처치, 소화기와 소화전으로 직접 화재를 진압해보는 훈련을 시행했다.

 

▲ 소방훈련 이론교육

 

▲ 소방훈련 실습

 

한 번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만 최초 남극기지를 세운 대만대학교 학생이 직접 옥내소화전을 이용해 화재를 진압해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헬기팀 팀원부터 다른 외국연구원 모두 훈련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여줬다. 그렇게 기지체류자 전원이 협조해 준 덕에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 가상 화재 소방훈련

 

이날 처음으로 남극에 가져간 소방기동복을 입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화물을 보낼 때 부피를 줄이기 위해 소방 방한복은 챙기지 않았던 터라 기동복만 입고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대한민국 소방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훈련 중에는 집중하느라 못 느꼈던 추위가 마치고 강평하는 시간이 되자 엄습해왔다. 대장님과 함께 강평하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추위로 온몸이 떨렸다. 그런데도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태연하게 훈련을 마쳤다. 

 

“춥지 않아요?”

“아유, 이 정도는 참을 만해요” 허풍을 떨었다. 

 

▲ 소방훈련 기념사진

 

본연의 업무뿐 아니라 각 분야의 업무를 돕다 보니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강타하고 바다가 닫히는 시기에 도래했다. 바다가 열렸던 짧은 기간 많은 일을 한 조디악 보트를 보관동에 입고시키며 하계 시즌을 마감했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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