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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6.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2024.01.04 [12:30]

2023년 여름 <119플러스> 매거진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아무렇게나 써 놓은 글들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너무 날 것이라 그리고 비판적이라 세상에 내놓기 창피하단 생각이 들면서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둥글려 잘 순화하면서도 진솔함이 담긴 글을 쓰고 싶은데 마음을 담아 제대로 잘 전달할 만큼의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글 쓰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자만이 보였고 멘탈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자존감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담(소방관 동료상담사)으로 근무한 시간 동안 소중한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첫째였고 세상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동료들이 이 글을 보며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또는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하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길 바랐다.

 

글만 봐도 저자의 성격이 보이고 진솔한지, 가식으로 포장됐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글은 항상 담백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상담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자니 상담사 윤리 부분에 어긋나고 안전하게 내가 경험한 사례로만 풀어내자니 너무 적나라해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과연 앞으로 근무를 무난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되면서도 표현이 격해졌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으로 가식 없이 허구가 아닌 실제 우리 소방 안에서 일어나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게 설령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고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되더라도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란 판단이 들어 다시금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번 호에서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한 고민이 정리될 수 있는 계기가 된 드라마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바로 2023년 11월 넷플릭스에서 방영을 시작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다.

 

총 12편의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매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작가일까? 작가가 사전 자료조사를 너무 열심히 한 결과일까? 누가 내가 한 말을 듣고 쓴 걸까? 어쩜 저렇게 직관적으로 잘 묘사했지?’ 하며 감탄했다. 

 

또 주인공인 정다은 간호사가 본인 담당 환자의 자살을 통해 겪는 감정의 변화 등은 내가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경험한 두려움, 우울, 그리고 다양한 감정의 변화와 똑같았다. 

 

정다은 간호사는 약삭빠르고 민첩한 간호사가 아니다. 착하고 감성이 풍부해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성의를 다하는 사람 냄새 나는 간호사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착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래서 조금은 답답한 모습이다. 

 

내과 병동에서 많은 환자를 빠르게 케어해야 하는 일에는 조금 서툴러 정신의학과 병동으로 순환 보직됐다. 그 일로 조금은 위축되고 주눅도 들어있다.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은 환자들에게도 마음을 다해 대하고 환자와 진심으로 서로 인간적인 마음을 주고받는다. 

 

조금 더 마음이 쓰인 환자가 퇴원하던 날 정다은 간호사는 본인의 전화번호를 주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고 저러면 안 될 텐데…’ 공과 사의 경계가 없는 간호사에게 감정 이입돼 안타까웠다.

 

죽기 전 그 환자는 망상에 시달리다 정다은 간호사에게 전화한다. 

 

“간호사님, 지금 시간 되시면 저랑 차 한잔하실래요?”

 

그러나 정다은 간호사는 별다른 죽음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상황들에 밀려 전화를 그냥 끊는다. 그 후 환자의 사망 소식(추락사한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보는 사람들도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므로 꼭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을 듣고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와 같이 지내던 정다은 간호사.

 

사실 그녀의 행동은 그 환자가 사망한 사실조차 스스로 지워버린 이상 반응(회피 반응)이었다. 결국 ‘정말 괜찮지 않다’고 깨달은 후 그녀만의 마음의 방에 갇히게 된다. 

 

이 부분에서 자살위험이 있는 직원에게 언제든 연락하라 하고 늦은 밤 자살 상황 직전이던 직원의 전화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경험이 떠올랐다.

 

‘만약 실제로 자살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전화 한 사람이 

나라면, 근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내게 도움의 손길을 보낸 사람을 잡아주지 못했다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너무나 무서운 밤을 보낸 후 소담에 근무하는 동안 이런 일이 또 다시 발생하진 않을까 가장 두려웠었다. 다행히도 그분은 여전히 잘 살아내고 있으니 내 이야기는 극 안에서처럼 비극은 아니다. 

 

본인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스스로 파놓은 굴로 들어가 버린 정다은 간호사. 가장 친한 친구가 찾아와 강제로 방 밖으로 꺼내 “힘내! 다시 밖으로 나가자” 고 다그친다.

 

그 방법이 최선인 줄 알았던 그 친구는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다은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라며 현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무조건 다그치고 세상으로 끌어내는 일이 사실은 도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너무나 정확한 묘사였다. 

 

우린 누군가 힘들어할 때 

 

“괜찮아.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아져. 

언제까지 그러려고 그래”

 

라는 말들로 세상에 다시 끌어내어 놓는다. 진짜 힘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힘내”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우리 다은이는 괜찮아요. 자꾸 왜 아프다고 그래. 왜 병원 가라고 해”라며 사실을 부정하던 정다은 간호사 엄마처럼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할 때 내 가족도 내게 그렇게 말했다.

 

“니가 무슨 우울증이야? 아니야.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방바닥 아래로 자꾸만 빠져들고, 천근만근 몸이 무겁고, 잠만 자고 싶은 무기력한 상황인데 아무도 그런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직장에서도 ‘적당히 쉬었으면 이제 출근하지. 아직도 그래?’라는 분위기였다. 

 

결국 정다은 간호사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찻길로 뛰어든다.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죽음의 문턱에서 정다은 간호사를 정신의학과 병동에 입원시킨다. 

 

정다은 간호사는 입원초기 

 

‘내가 정신과 간호사인데 왜 나를 환자 취급하지?’ 

 

라며 본인의 현재 상황과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본인이 환자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생각해 내며 ‘나도 그들과 같다’는 걸 인정한 후 치료를 받고 퇴원한다. 

 

여기에서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대사가 나온다. 소담을 하면서 “소방관은 소방관이 가장 잘 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고 몇 년간 외쳤는데 누가 내 말을 들은 건가 싶을 정도로 꼭 내가 이야기하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정다은 간호사는 본인이 아프고 난 후 비로소 환자들의 말과 행동을 오롯이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소방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낙인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소방관들도 ‘나는 아프다. 괜찮지 않다’는 걸 드러내기 두려워해 숨기기 바쁘다. 직장으로 돌아왔을 때 받게 될 불이익과 이미지 때문이다. 

 

나 또한 소담을 시작하며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걸 밝히는 게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누가 누굴 상담해. 본인이나 치료받으라고 해’라고 하지 않을까. 스스로 위축되고 고민됐다.

 

정다은 간호사도 퇴원 후 병원으로 복귀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다. 복직 전날 동료들이 본인을 비난하는 꿈을 꾼 후 결국 출근을 포기한다. 그러나 동생이 조현병을 앓는 수간호사의 공감과 격려로 병원에 복귀한다. 

 

겨우 용기 내 병원으로 출근했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우연히 만난 환자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이력이 폭로된다.

 

그로 인해 병동 입원환자 보호자들로부터 모진 말과 상처를 받게 되지만 수간호사의 도움으로 상황을 모면하게 된다. 극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 들여주지 않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정다은 간호사를 대변해 울먹이며 수간호사는 

 

“지금 여러분이 정다은 간호사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우리 환자와 가족들이 사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똑같이 받게 될 대우입니다”

 

이 발언으로 정다은 간호사의 업무 복귀를 반대하며 시위하던 환자 가족들이 본인들의 상황을 돌아보며 시위를 멈춘다. 한 동료는 병원장을 찾아가 정다은 간호사를 변호했고 간호사로서 업무를 계속하게 된다. 

 

드라마 자문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지훈 교수는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 그리고 “결국 치료는 사람이 합니다.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같이 있어 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섣부른 조언보다 그들 마음에 공감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우린 모두 병에 걸릴 수 있다. 신체적인 감염병일 수도, 마음의 병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완치되거나 치료를 받으면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쟤 정신병 있대. 싸이코래”

 

라는 낙인을 찍어 직장 내 부적응자로 소외시키지 말고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아플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보듬어 함께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마지막 회에서 정다은 간호사가 한 말이다.

 

소방관이란 직업 특성상 일반인이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외상 후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다. 개인의 트라우마나 생활습관, 성격 등으로 인해 유독 외상 후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는 특수한 정신질환과는 차이가 있다. 얼마든지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는 질병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할 수 있다. 

 

‘정다은 간호사도 간호사 업무를 하다가 경험하게 된

마음의 질병인데 왜 손가락질받고 비난받아야 할까?

공상처리 해주고 자체병원에서 적극 치료해 줘야 하지 않나?’

 

최근 우리 소방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조직 내에서 자체적으로 치유해 주고자 방법을 찾고 노력하고 있으니 언제라도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인들이기 때문에….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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