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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보려면 보고, 말려면 마라?” 응시자들 원성 사는 화재대응능력 1급 평가제
절차도, 장소도… 행정 편의적 시험방식 두고 “개선 시급하다”
“필기ㆍ실기 동시 접수 후 일정 변경도 못하는 건 이해불가”
“엔데믹 선언 후에도 중앙소방학교만 고집, 일선은 병든다”
문제 인지한 소방청… “TF 구성해 개선방안 찾아 나가겠다”
유은영 기자   |   2023.12.01 [14:30]


#1 

응시 신청 날 아무리 바빴어도 손이 빨랐어야 했나. 응시 전산 접수 선착순. 필기 합불 여부도 모른 채 실기 선접수. 접수 늦었으니 랜덤으로 날짜 지정하고 와서 보려면 보고 말려면 말라. 그간 숱하게 국가시험에 응시했지만 필기 때 실기 날짜까지 접수하고 변경도 안 되는 건 처음이다. 

 

#2

시험 응시를 위해 선착순으로 접수하는 건 당연하다. 백번 양보해서 필기와 실기를 동시에 접수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필기시험에 떨어진 응시자가 선택한 실기시험 날이 비었을 텐데도 필기시험 합격자가 날짜를 다시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3

소방 조직에 들어와서 그간 많은 시험을 봤지만 지금와 생각해 보면 득 본 게 없는 것 같다. 소방기사나 소방시설관리사, 소방기술사 공부 같은 다른 자격을 준비하지 않은 게 후회될 지경이다. 이제는 소방 내에서 자격 취득을 독려할 이유도, 추천할 마음도 없다.

 

#4

행정이란 게 담당자가 자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인지, 그 행정절차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원을 위함인지 그 본질이 흐려진 게 허다하다. 민원인을 위한 행정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 연도별 화재대응능력 평가 1급 취득 현황(출처 소방청)

최근 소방조직 내에서 운영되는 화재대응능력 1급 평가시험을 두고 일선 소방관들이 내뱉는 말이다. 시험 응시자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자격시험이 행정 편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소방조직 내 화재진압대원들 사이에서 화재대응능력 평가 1급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자격으로 꼽힌다. 시험의 난도가 높다 보니 2020년 23, 2021년 55, 2022년 89명 등 최근 3년간 167명밖에 합격하지 못했다.

 

도대체 많은 화재진압대원이 취득하려고 하는 자격시험에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 <FPN/119플러스>가 화재대응능력 평가는 어떤 자격이고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화재진화사로 시작된 12년 역사, 화재대응능력 평가제

‘화재대응능력 평가제’는 대한민국 소방관이 응시하는 자격증으로 소방청이 운영하는 국가자격이다. 화재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복합건축물의 위험이 커지는 등 급변하는 재난 환경에서 효율적인 화재 대응 능력을 갖춘 현장에 강한 소방관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1년 ‘화재진화사’란 이름으로 처음 도입된 자격인증제도는 지휘관의 지휘역량 강화와 진압대원의 전술능력 향상을 위해 2014년부터 ‘화재대응능력 평가제’로 명칭을 바꿨다.

 

화재진압과 구조대상자 구조, 장비 사용, 다수 팀원 간 전술 등 소방관이 갖춰야 할 업무역량을 인정하는 평가다. 1급과 2급으로 구분된다. 

 

1급 시험은 중앙소방학교, 2급은 중앙ㆍ서울ㆍ부산ㆍ인천ㆍ광주ㆍ경기ㆍ강원ㆍ충청ㆍ경북소방학교와 경남ㆍ제주소방교육대 등 11개 평가기관이 주관한다.

 

2급 필기시험은 소방공무원으로서 1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응시가 가능하다. 70점 이상을 득하면 실기시험을 치를 수 있다.

 

1급 필기는 화재진화사 2급 또는 화재대응능력 2급을 취득하고 발급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사람으로서 화재진화사 1급 또는 3주(105시간) 이상의 화재대응능력 향상 1급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가 응시할 수 있다.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 득해야 한다. 

 

2급은 평가종목별 60점 이상, 1급은 평가종목별 70점 이상 얻은 사람을 합격자로 한다. 단 실기평가 종목 중 ‘화재대응능력 1급 수행 역량평가’를 합격해야만 다음 평가에 응시가 가능하다. 1, 2급 모두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2년 안에 실기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올해 합격률 37%에 불과한 1급 화재대응능력 평가제

1급 화재대응능력 평가제는 올해 265명이 응시했다. 이 중 98명만이 합격하는 등 합격률은 37%에 그쳤다.

 

2023 화재대응능력 1급 평가시험은 9월 1일부터 6일까지 인터넷 ‘119고시’ 사이트를 통해 필기와 실기시험을 동시 접수했다.

 

▲ 소방청 119고시 사이트

 

필기시험은 9월 23일 중앙소방학교와 제주소방교육대 등 두 곳에서 치러졌고 실기시험은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중앙소방학교에서만 진행됐다.

 

원서접수 시 실기시험 희망일까지 선택해야 했고 실기시험일을 선택하지 못한 미배정자는 중앙소방학교가 날짜를 임의로 배정했다. 이렇게 선택된 날짜는 한 번 확정되면 변경이 불가했다.

 

필기시험의 경우 화재대응능력 1급 교범과 문제은행 내에서 객관식 4지 1선택형 50문항으로 출제됐다.

 

실기시험은 ▲화재대응능력 1급 수행역량 평가 ▲저층건물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 ▲고층건물 화재진압 및 연결송수관 점령 ▲지하층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 ▲전기자동차 화재진압 ▲유해화학물질 사고대응 ▲위험물(유류) 화재진압 등 전문화재 진압기술 관련 7종목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뿔난 1급 응시자들…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화재대응능력 평가 1급 시험을 치른 일선 소방관들은 시험의 시행 방식을 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불합리한 행정 때문에 당초 취지인 ‘현장에 강한 소방관’ 만들기가 아닌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퇴색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A 소방관은 시험 접수일인 9월 1일 오전 11시 컴퓨터 앞에 앉아 119고시 사이트에 접속했다. 접수가 시작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이미 실기시험 희망일 접수가 마감된 상황이었다. 허탈했다. 당연한 거였는데도 접수시간에 업무를 지시한 선배가 원망스러워질 것 같았다. 결국 원하는 날짜를 고르지 못하고 사이트를 닫아야 했다.

 

응시자들은 원서접수일에 필기시험에 합격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실기시험일까지 정해서 접수해야만 했다. 실기시험 기간은 주말을 제외하면 열흘인데 지정한 날 개인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재난 상황이 벌어지거나 비상 근무가 걸린다 해도 변경할 수 없는 셈이다.

 

A 소방관은 “결국 랜덤으로 날짜가 지정됐다”며 “접수한 사람들은 우선권을 가져가되 필기 불합격자나 응시 안 할 사람들 빼고 다시 한번 선착순 접수하는 방식이라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원하는 혹은 가능한 날이 아닌데 임의 배정해 놓고 사정이 있다 해도 날짜 변경이 안 되는 건 일선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며 “현장 대원들은 갑자기 비상이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제 출동하고, 언제 동원될지 가늠이 안 되는데 그걸 제일 잘 아는 소방청에서 날짜 변경이 절대 불가하다고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B 소방관은 실기시험일 오전 3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치러야 하는 중앙소방학교가 있는 공주로 가려면 최소 세 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진압헬멧과 방화복, 방화두건, 진압장갑, 공기호흡기 등 챙겨야 할 개인장비가 산더미였다. 혹시 몰라 공기호흡기 용기도 6개나 챙겼다. 서둘러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 창문을 활짝 열고 음악도 빵빵하게 틀었다. 벌써 이렇게 피곤한데 과연 도착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실기시험에선 체력이 중요한데 컨디션 난조로 불합격하진 않을까.

 

1급 실기시험은 충청북도 공주에 위치한 중앙소방학교 단 한 곳에서 진행된다. 그나마 가까운 지역에 사는 소방관들은 상황이 좀 낫겠지만 먼 지역에 거주하는 소방관들은 새벽부터 어쩔 수 없이 강행군을 해야만 한다. 

 

B 소방관은 “새벽부터 공주로 이동하는 건 사고 위험뿐 아니라 쉴 시간도 보장이 안 된다”며 “전날 출발한다 해도 숙박비가 들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2019년에는 각 시도 소방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코로나19 이후부턴 중앙소방학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면서 “엔데믹이 지났는데도 아직 한 곳에서만 치러지는 시험 탓에 어려움이 많다. 인명구조사 1급의 경우 곧 각 시도에서 응시하도록 바뀐다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방관이 된 이후 줄곧 화재진압 분야에 매진해 온 C 소방관은 “여러 번 시험에 대한 문제점을 소방청에 전달했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숱하게 개선을 요구했는데 바뀌지 않는 건 수많은 직원을 무시하는 처사 아니겠냐”고 쓴소리를 냈다.

 

이어 “개인인증제도라 개인의 영광을 위해 딴다고 할 수도 있지만 화재대응능력은 자신의 역량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더 체계적인 현장 활동을 위해 운영되는 전문 직무 자격제도라고 생각한다”며 “나아가 많은 조직구성원이 자기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로 인식하려면 불합리한 절차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문제 인식한 소방청… “TF팀 구성해 개선방안 찾겠다”

일선의 불만을 인지한 소방청은 화재대응능력 평가제 관련 TF팀을 꾸려 현상을 면밀히 검토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FPN/119플러스>에 밝혔다.

 

응시생들의 불만 사항 중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동시에 접수하는 문제에 대해 소방청 교육훈련담당관실 관계자는 “필기는 우리 소관이 맞는데 실기를 시행하는 건 중앙소방학교다. 필기 합격자들이 실기시험을 별도로 접수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희망일을 같이 받은 것”이라며 “중앙소방학교와 협의해 필기와 실기를 따로 접수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응시생들의 편의를 위해 필기시험을 온라인화하는 방안까지 구상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소방청은 중앙소방학교로 한정된 1급 시험장소 문제에 대해서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화재대응능력 평가제의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는 소방청 화재대응조사과 관계자는 “조만간 화재대응능력 TF팀을 운영하려고 한다”며 “지방소방학교도 1ㆍ2급의 장비기준 등을 충족하고 있어 그쪽에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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