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소방학교 서형민 소방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하루가 119종합상황실(이하 상황실)에서는 특별한 하루가 되곤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냉탕과 온탕을 아니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오가는 숨 막히는 하루로 기억된다.
“네, 119입니다”
“아저씨! 친구가 다쳤어요. 빨리 와주세요”
상황실 근무가 4년이 넘어가는 베테랑 상황 요원인 서형민 소방관은 헤드셋 너머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위치가 어디예요?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래요?”
“무슨 아파트인지 모르겠어요. 빨리 와주세요”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던 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빨리 와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서형민 소방관의 마음은 다급해져만 갔다. 하지만 함께 흥분할 순 없는 노릇. 침착하게 통화를 이어 나간다.
“위치를 모르면 구급대원 아저씨들이 다친 친구를
찾기 힘들어요. 주변에 어른들 있으면 바꿔줄래요?”
“여기 놀이터라… 어른들은 없어요”
상황실에서는 휴대전화가 발신된 기지국 위치를 기반으로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지역에 따라 범위가 넓어 정확한 위치가 아니면 출동에 혼란을 빚는다. 이 때문에 상황실에선 무엇보다 정확한 위치 파악이 중요하다. 서형민 소방관은 놀란 아이를 달래주는 한편, 다시 한번 정확한 지점 파악에 나선다.
“그러면, 주변 아파트에 큰 글씨로 이름이 쓰여 있을 거야.
소방관 아저씨한테 말해줄래?”
“음… ‘내’라고 쓰여 있어요”
“뭐라고? 내? 네? 라고 쓰여 있다고?”
서형민 소방관은 아파트 벽면에 붙어 있던 브랜드명을 불러 달라는 이야기였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내’였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통화를 이어 나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다른 글씨는 없니?
음… 다시 한번 주변 아파트 이름 한번 찾아봐 줄래?”
“잘 모르겠어요”
서형민 소방관은 상황실 컴퓨터 화면 위로 신고자 위치 주변을 살피던 중 ‘LH 휴먼시아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등허리가 뜨거워졌다. 뭔가를 깨달은 서형민 소방관은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위치가 아파트 벽면에 ‘내’라고 적혀있구나.
한글로 ‘내’라고 쓰여있지?
“네, 맞아요. 빨리 와주세요”
“알겠어! 지금 구급차가 그쪽으로 가고 있어.
구급차 보이면 손 흔들고 환자 있는 곳으로 안내해줘”
앳된 목소리를 가진 신고자(유치원 or 초등학생 추정)가 아파트 벽면에 그려진 ‘LH’ 로고를 영어 ‘엘에이치’라고 읽지 않고 한글 ‘내’라고 읽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결과는? 물론 성공이다. 덕분에 구급차는 정확한 지점으로 출동했고 아이도 응급처치와 함께 병원으로 무사히 이송됐다.
어쩌면 소방관에게는 화재진압과 전술 외에 탐정 같은 추리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광주소방학교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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