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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2.
소방관을 현장 속으로 다시금 뛰어들게 하는 힘, ‘기적의 순간’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2023.09.20 [10:00]

내 소방관의 삶은 늘 고난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쉽게 무언가를 공짜로 얻은 적이 없다. 버둥거리고 노력해도 그 공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늘 온 힘을 다했지만 결과가 항상 긍정은 아니었다. 사실 소방관이 되려고 응급구조학과를 간 건 아니다. 하지만 소방관이 되고 난 후엔 구급대원으로서 잘하고 싶었고, 응급처치 분야에서만큼은 베테랑이 되고 싶었고, 노력한 만큼 인정도 받고 싶었다.

 

그렇게 나름 애쓰며 10년이란 시간을 달렸다. 달리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 걸까?

내가 달리는 길 끝은 어디쯤일까?’ 

 

언젠가부터 목적의식 없이 그냥 달리고 있는 스스로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보인 게 아니라 더는 달리기 싫어졌다. 

소방관으로 계속 살아가는 게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됐다. 더 이상의 희망과 목표가 없었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퇴사를 고심했다.

 

일하면서 항상 행복하고 늘 보람될 순 없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존재 의미는 분명해진다.

 

그러던 중 최악이던 내 인생에 우연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 일은 내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그렇게 나는 다시 소방관으로의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13년 차 소방관이던 2015년 3월 31일. 그날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3월의 마지막 날 내게 기적을 보여준 아이를 만났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런 기적은 또다시 경험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던 중 마침 관할 구급차가 없어 30분 거리까지 지원 출동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구급 출동, 구급 출동.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함”

 

출동 지령이 내려왔다. 

 

‘북변동에서 운양신도시까지 가려면 도로가 막혀서

아무리 신속하게 이동해도 20분은 족히 걸릴 텐데 정말 큰 일이다’

 

함께 출동하는 동료와 응급처치 계획을 공유했다. 

 

“영아 심정지인가 봅니다.

제세동기랑 기도유지 장비를 챙겨가야 하는데

영아용 제세동기 패치가 없으니 성인용 패치를 준비하고

우선 영아 BVM을 준비해야겠어요”

 

출동하는 동안 줄곧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착하면 어떤 순서로 응급처치를 해야 할까?

의료지도를 받아야 할까? 병원 이송은 어디로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았다.

 

아파트 1층에서 벨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내내 응급처치 순서가 정리되지 않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영유아 심정지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은 흔한 상황이 아니다. 

 

현관문 벨을 누르자 기다리던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뛰어나왔다. 아이는 이미 온몸으로 청색증이 오고 호흡이 전혀 없었다. 얼굴은 새파랬고 혀는 반쯤 입 밖으로 돌출돼 움직이지 않는 작은 인형 같았다.

 

순간 ‘심폐소생술이 최우선이다’는 생각으로 아이 가슴을 열고 흉골 가운데를 두 손가락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함께 간 직원에게 호흡 유지를 위해 BVM으로 호흡 보조를 부탁하고 구급차 들것 위에서 영아 심폐소생술을 지속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흉부 압박 횟수만 세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했다.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영아이기 때문에 더 간절했다.

 

‘제발! 제발!’ 

 

구급차 내에서도 심폐소생술을 지속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아이 얼굴색이 순식간에 돌아오며 두세 번 우유를 토해내더니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인형 같기만 하던 아이 얼굴이 움직이고 피부색이 돌아오면서 울어대자 ‘살았구나’하는 안도감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보니 신기하게도 보라색이던 얼굴이 핑크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 엄마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서로 자세하게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분명 둘 다 기적을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다.

 

응급구조사가 된 이후 쭉 나는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다’고 생각했지만 그간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가슴 벅찬 흥분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늘 꿈꿔온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 내는 기적적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엄마, 아이 살았어요. 품에 안아주세요”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줬다.

 

응급실에 미리 연락을 해뒀기에 도착한 병원응급실 앞에는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를 만난 당직 의사는 활력 징후만 평가한 뒤 “심장이 돌아왔으니 아이가 다니던 3차 병원으로 바로 이송하라”고 권유했다. 3차 병원에 연락하고 아이 상태를 감시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3차 병원응급실 이송을 마쳤다.

 

사실 현장 도착부터 병원 이송까지 어떤 정신으로 움직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뭐에 홀린 듯 흉부 압박을 하고, 호흡을 유지하고, 응급처치를 했던 것 같다. 머릿속으로 순서를 정해 프로토콜대로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았나 싶다.

 

영아 심폐소생술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사례다. 영아들은 심정지가 오는 일이 드문 데다가 영아 심폐소생술은 긴급한 응급 술기다. 

 

병원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영아 심폐소생술은 소아과 전문의가 직접 했다. 의사들은 의사가 아닌 의료인에게 영아 심폐소생술을 맡기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대학에서 배운 이론과 애니로 실습해 본 게 전부였다. 그런 내가 분유를 먹다 기도가 막혀 심정지가 온 90일 된 영아를 약물도, 제세동도 아닌 맨손 심폐소생술로 소생한 사실 자체가 너무 경이로운 일이다.

 

물론 이전에 성인 소생은 몇 차례 경험했고 수많은 응급처치 교육에서 소생사례 영상도 봤다. 하지만 병원 전 단계에서 맨손으로 흉부 압박을 하고 호흡 보조만으로 온전히 소생하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이런 순간들을 위해 공부하고

구급대원으로 여기 있는 거구나’

 

소방관으로 절벽 끝에 서서 더는 갈 곳이 없다 포기하고 있던 순간에 내게 내려온 한 줄기 빛 같았다.

 

영아 소생이 내겐 내 가족을 살린 것보다 내 평생을 통틀어 응급구조사로서, 구급대원으로서 너무나 보람되고 감사한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의 심장이 다시 뛴 그 순간이 내가 소방관이 된 걸 처음으로 후회하지 않은 순간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소방관을 그만두고 싶던 그때 ‘내가 누군가에겐 생명의 은인이 되고 그날 그 아이와 가족에겐 내가 정말 필요한 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은 나를 다시금 소방관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 2018년 겨울, 소방관이 된 시윤이

이후 아이 부모님이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홈페이지에 감사의 글을 올려주시고 방송에도 출연해주셨다. 최근 9살이 된 아이가 너무나 건강하고도 평범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매년 3월 말이 되면 아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아이 가족에겐 내가 생명의 은인이겠지만 사실 죽을 만큼 힘들고 바닥이던 나를 붙잡아 지금까지 소방관으로 살아올 수 있게 해준 기적이 그 아이란 걸 꼭 후에라도 말해 주고 싶다.

 

‘감사합니다.

제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해주시고

기적을 경험하게 해주셔서요’

 

소방관은 이런 기적의 순간과 보람 있는 순간들의 기억으로 또다시 현장 속으로 제일 먼저 뛰어들 수 있는 게 아닐까.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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