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오후, 119구조대 사무실에 출동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고등학교에 흑염소가 출몰했다는 신고입니다. 염소가 송아지만 하다고 하는데… 참고로 큰 뿔이 달렸다고 합니다. 현장 확인 바람!”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염소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송아지만 하다는 거야? 염소야! 기다려라~ 내가 한 손으로 잡아줄테니깐…”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광주 북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 흑염소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황준호 소방관은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야! 저거 진짜 흑염소 맞아? 송아지보다 더 큰 거 같은데… 뿔은 뭐가 이렇게 큰 거야? 자칫 잘못했다간 뿔에 찔리겠어! 다들 퇴로 확보하고 포획해 보자!”
“팀장님, 일단 학생들이 없는 장소로 염소를 몰아서 포획하시죠.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면 염소가 흥분해서 더 위험할 수 있겠어요”
출동한 소방관들은 염소가 흥분하지 않도록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학교 외곽의 구석진 곳으로 몰아 넣었다.
“자, 지금이야, 침착하게 로프로 ‘올무’를 만들어서 목에 감기게 해야 하는데… 알지? 정확하게 던지는 게 생명이야! 박성호 소방관 자신 있지?”
현장 도착 때부터 로프로 올무를 만든 뒤 카우보이처럼 계속 돌리며 타이밍을 보던 박 소방관이 염소를 향해 로프를 던졌지만 연달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으아악~~~~ 염소가 돌진한다! 다들 피해! 어서!”
구석에 몰린 염소가 흥분한 나머지 소방관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대피하던 그 순간! 단 한 사람은 대피하지 않고 염소와 정면 승부를 택했다. 그 사람은 바로!
‘황준호 소방관’
“야 준호야! 뭐해? 황준호! 어서 피해! 피하라고~”
“팀장님! 걱정 마세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얏~”
만류할 틈도 없던 그 짧은 순간! 달려오는 염소를 향해 황준호 소방관의 왼손은 염소 앞다리 사이에 오른손은 염소의 목을 잡아 한 바퀴 돌려버렸다. 그리고 황 소방관은 머리로 염소의 뒷목을 눌러 염소가 뿔로도 공격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뭐야! 이게 뭔 일이야? 준호야! 너 지금 레슬링 한 거야? 와~”
“팀장님, 흑흑~ 일단 이… 이 염소부터 묶어 버리시죠? 흑흑~”
“그래, 자! 팀원들! 로프 가져와서 어서 다리부터 묶자! 서둘러!”
염소를 고정시킬 때까지 황준호 소방관은 염소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준호야! 고생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본 게 인간과 동물의 레슬링 한판 승부 같더라”
“팀장님! 제가 한때 레슬링 선수였잖습니까?”
당시 새내기 소방관이었던 황준호 소방관은 사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레슬링 선수였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소방관들은 “정말 박진감이 넘쳤다”, “자세를 낮추고 염소를 노려보던 황준호 소방관의 눈빛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모하리만큼 용감했던 황준호 소방관의 활약에 소방서에서는 유명세까지 탔다. “당시 무섭지 않았냐?”란 질문에 황 소방관은 “머리에선 피하라고 외쳤는데 몸이 반응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젊은 패기로 두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광주소방학교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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