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대전서 개소, 전국 최초 구급대원 대상 전문교육기관
구급지도관 자격증 갖춘 전문교관, 효율적인 현장 노하우 전수
시뮬레이션 교육장, 재현시설, 전문강의실 등 최첨단 시설 구비
출동부터 환자 이송까지… 병원 전 단계 원스톱 솔루션 집중 지도
훈련 장면 실시간 촬영 후 디브리핑… 교관과 함께 개선점 논의
대전시정 10대 뉴스서 3위, 올해 상반기 적극행정 우수사례 선정
고도화된 최적의 구급서비스 제공으로 시민 안전 일류도시 실현
임덕빈 센터장 “술기뿐 아니라 힐링도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 것”
교통사고나 추락 등으로 크게 다쳐 홀로 병원에 갈 수 없을 때 우린 119구급대원을 애타게 기다린다. 주변 사람이 급성심정지, 뇌졸중 등으로 쓰러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우릴 위기에서 구하는 존재가 바로 구급대원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3년(’19~’21년)간 전체 소방 출동 건수는 화재 11만5028, 구조 279만1126, 구급 884만5086건 등 총 1175만1240건이다. 이 중 구급 출동 건수는 전체의 75.2%에 달한다.
소방 전체 출동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급 출동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소방청은 매년 119 EMS(Emergency Medical Service) 컨퍼런스와 대한민국 119구급활동 경연대회, 구급품질 향상 워크숍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대전시는 지난 1월 28일 동구 가양동에 ‘구급교육센터’를 설치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정식 교육은 4월 14일부터 시작됐다. 모든 대전소방 구급대원(297명)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구급교육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구급대원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 교육한다는 데 있다. 구급팀 단위로 시행하는 훈련은 긴급출동과 현장 도착, 응급처치, 환자 이송까지 신개념 원스톱 솔루션 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실제 현장에 출동하는 구급팀이 구급교육센터에 도착함과 동시에 교육이 시작된다. 응급처치뿐 아니라 실제 상황처럼 병원 전 단계를 모두 평가한다. 기존의 단순ㆍ반복 교육에서 탈피해 문제해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구급대 팀 단위로 현장 출동부터 환자 이송까지 병원 전 단계를 전문교육하는 시설인 구급교육센터를 <119플러스>가 직접 찾았다.
가양119안전센터 건물, 최초 구급교육센터로 탈바꿈
대전소방은 2019년 구급대원의 술기 능력 향상을 위해 의료용 가상 시뮬레이터(마네킹) 3대를 구입했다. 그러나 구급대원을 교육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당시 본부 구급팀에 지원업무를 하던 임덕빈 구급교육센터장이 관할 소방서 회의실 등을 둘러봤지만 훈련하기엔 비좁았다.
마침 가양119안전센터가 대전동부소방서 신청사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임 센터장은 서둘러 센터 사용을 요청했지만 이미 대전시에 반납된 상태였다.
이렇게 물러설 순 없었다. 그는 대전시 행정부시장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공유재산심의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구급교육센터가 왜 필요한지에 관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임 센터장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구급대원의 지속적인 훈련과 교육이 필요한데 시설이 전무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모두 충격을 받으셨다”며 “심지어 왜 그런 교육기관이 아직도 없는지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건물을 구급교육센터로 활용할 계획 등이 담긴 기안서를 직접 작성해 대전시 관계자들을 찾아 설명했다”며 “다행히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만장일치로 대전소방이 다시 건물을 가져오면서 구급교육센터가 설립될 수 있었다”고 했다.
구급교육센터는 지난해 6월 10억5천만원의 예산을 투입, 약 4개월간 리모델링 사업을 마치고 올해 1월 28일 정식 개소했다. 현재 임덕빈 센터장을 비롯해 고택훈 부장과 구급지도관 자격을 갖춘 2명의 교관이 근무하고 있다.
지역 특성 고려해 재현시설 설계… ‘환자 소생 향상 기대’
생명 중심 구급 교육ㆍ훈련을 통한 전문성 강화로 구급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지어진 구급교육센터는 2026년까지 심정지 소생률 18%를 목표로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4대 중증환자 중심의 구급 교육 고도화를 실현해 응급환자 소생률을 높이고 시민 안전 일류도시 대전을 조성하겠단 야심 찬 포부가 있다.
건축면적 778.16㎡(약 235.8평), 지상 3층 규모인 구급교육센터엔 시뮬레이션 교육장 3, 재현시설 8, 전문강의실 1, 디브리핑룸 1개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시뮬레이션 교육장은 ▲중증외상 ▲소아ㆍ분만 ▲CPR 등으로 나뉜다. 각 교육장에 있는 시뮬레이터는 마네킹이지만 자동으로 눈을 깜빡이고 숨 쉬는 것처럼 흉부를 들썩였다. 기자가 직접 만져보니 손가락은 실제 뼈와 같이 딱딱했고 복부는 깊숙이 들어갔다. 최대한 사람처럼 구현한 걸 알 수 있었다.
중증외상 시뮬레이션 교육장에선 신체 절단이나 골절, 대량 출혈 등 중증외상 구현이 가능한 최첨단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4대 중증 응급처치를 집중 교육한다.
소아ㆍ분만 시뮬레이션 교육장에선 응급분만과 대량 출혈, 소아 천식 등에 대한 응급처치 방법, CPR 시뮬레이션 교육장에선 각종 부정맥에 의한 심정지 상황 연출 등이 가능한 시뮬레이터로 응급상황 시 대응법을 훈련한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2020년 12월 발표한 지역별 중증외상환자 발생원인 자료에 따르면 대전시의 교통사고로 인한 중증외상환자 발생률은 56.5%로 전국 평균인 50.3%보다 6.2% 높다. 추락사고도 29%로 전국 평균(26%)을 웃돌았다. 대전시는 이런 특성에 맞춰 시설을 설계했다. 교통사고와 추락사고 상황을 그대로 구현함으로써 중증외상 술기 능력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재현시설은 ▲교통사고 ▲공사(추락사고) ▲가정집 ▲카페(음식점 등) ▲운동시설 ▲목욕시설 ▲야외캠핑 ▲감염대응 등 8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교통사고 재현시설의 경우 구급대원들이 실제 현장처럼 느낄 수 있도록 자동차를 배치하고 도로를 촬영한 영상을 교육 중에 계속 재생한다. 가정집과 카페 재현시설에선 화상과 자상 등의 상황, 야외캠핑장은 일산화탄소 중독 등의 상황을 가정한 응급처치법을 훈련한다.
감염대응 재현시설에선 전국 최초로 코로나19 의심ㆍ확진 환자 심폐소생술을 교육한다. Level D 보호복을 착용한 후 비디오 후두경과 헤파필터를 사용해 기도관리를 하고 기계식 가슴압박장치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
구급교육센터 커리큘럼의 핵심 ‘디브리핑’
“지금 세 분이 들것을 들고 가시죠? 저희 구급대에 선착대와 후착대가 있잖아요. 선착대 3명이 들것을 들면서 현장에 가는 것과 일단 바로 뛰어가서 환자에게 BLS(Basic Life Support)를 시행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환자 소생에 효과적일까요?
”
디브리핑룸에 방금 교육을 마친 교관 한 명과 대전 유성소방서 소속 구급대원 세 명이 모였다. 디브리핑룸 내 대형 모니터엔 그들이 방금 진행한 교통사고 재현시설 훈련을 촬영한 영상이 나오고 있다.
“저 장면에서 우리는 선착대와 후착대의 소통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짐은 구급대원에게 환자 이송의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에요. 따라서 출동 중 선착대가 우린 이 장비를 가져갈 테니 후착대분들은 이런 짐을 가져오라고 서로 업무분담을 하면 환자도 빠르게 옮길 수 있고 짐 정리할 때에도 편하겠죠?”
구급교육센터 교관인 이기훈 주임(구급지도관)은 재생과 일시 정지 버튼을 번갈아 누르며 설명을 이어 간다.
“흉부 압박 교대는 2분마다 하는 게 좋아요. 90초부턴 힘이 빠져 압박이 제대로 안 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기계식 가슴압박장치는 환자 이송 중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좋습니다. 체력도 문제지만 구급차 안에선 정확한 자세가 나오기 힘들고 급정거나 급출발 시 구급대원과 환자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디브리핑은 구급교육센터 커리큘럼의 핵심이다. 교육생들의 훈련 모습이 시작과 동시에 녹화된다. 천장엔 마이크도 설치됐다. 팀원끼리 원활하게 소통하는지 평가하기 위함이다. 훈련이 끝나면 교육생들은 교관과 함께 영상을 보며 피드백을 받는다. 교관들은 응급처치 과정 중 잘된 부분은 칭찬하고 문제점은 토론하며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한서훈 구급대원은 “내가 시행한 응급처치를 내 눈으로 본 게 처음이다”며 “현장은 늘 정신이 없어 미흡한 부분이 가끔 생기는데 영상으로 되짚어 보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명확히 보여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분만 출동은 드물기 때문에 막상 닥치면 현장에서 당황할 수 있다”며 “이번 분만 시뮬레이터 교육에서 탯줄 위치 확인이나 아기를 안는 법 등을 배워 실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설립된 지 반년도 안 지나 성과 ‘톡톡’… 대전 넘어 전국으로
전국 최초 구급대원 교육기관인 구급교육센터는 대전시가 발표한 2021년 대전시정 10대 뉴스에서 3위를 차지했다. 10대 뉴스는 그해 대전시가 추진한 가장 인상 깊은 정책을 직접 시민이 투표하는 것으로 구급교육센터 설립은 총 429표(8.31%)를 얻었다. 구급교육에 대한 필요성에 많은 시민이 공감을 나타낸 결과라는 게 임 센터장 설명이다.
또 대전시 2022년 상반기 적극행정 우수사례에 선정됐고 현재 행정안전부 규제혁신ㆍ적극행정 우수사례 심사가 진행 중이다.
임 센터장은 “시민이 직접 뽑은 10대 뉴스에서 구급교육센터 설립이 3위를 했다는 건 시민도 안전의 중요성에 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이런 시민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고 했다.
구급교육센터는 소방 전체 구급교육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소방청은 구급교육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구급교육센터 개소 후 이곳을 직접 찾은 소방청 관계자는 “그동안 구급대원은 소방학교에서 술기 훈련을 받았다”며 “하지만 소방공무원 인력 충원에 따라 신임자 위주로 커리큘럼이 진행되면서 현직 구급대원의 교육기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급교육은 이론보단 실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구급교육센터에서 이 부분을 잘 고려한 게 느껴졌다”며 “구급교육센터가 필요성을 절감해 시도마다 구급교육센터를 설치하는 걸 계획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 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며 “현행법을 개정하고 올해 연구용역을 진행해 최대한 빨리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구급대원 트라우마 해소 등 힐링공간 역할도
구급교육센터는 교육ㆍ훈련뿐 아니라 구급대원 정신건강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장에서 참혹한 광경을 많이 목격하는 구급대원 직무 특성상 외상 후 스트레스(PTSD) 등을 겪는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임덕빈 센터장은 “구급대원은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많이 축적된 게 사실”이라며 “훈련 이상으로 중요한 게 구급대원의 트라우마를 해소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카페 재현시설은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운동시설 재현시설은 대원들이 근력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추후 심리상담사를 배치해 구급대원의 정신건강을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임 센터장은 “구급대원은 소방학교에서 개인 술기를 배우긴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같이 출동하는 팀이 호흡을 맞추는 훈련은 없었다”며 “구급교육센터에선 팀원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활동, 소통을 통해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지속적인 훈련은 구급대원의 구급품질을 향상하고 이는 대전시민 소생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시설이 단순히 교육받는 곳이 아닌 구급대원끼리 모여 같이 대화를 나누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안한 곳, 구급대원들의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구급교육센터가 궁금하다면? ‘FPN TV’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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