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6 - 그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가 -가 +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기사입력 2020-10-20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겠으나 남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가슴 먹먹한 건 없었다.

 

나 역시 불혹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이 오버랩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들도 한때는 우리처럼 꿈 많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 청년이었으리라.

 


 

“남편이 사망한 것 같아요. 눈은 뜨고 있는데…”

 

심정지가 추정된다는 상황실의 지령을 받고 현장으로 가던 중 주소를 살펴보니 자주 출동하던 곳이었다. 신고자는 캐나다 국적의 여성으로 남편의 보훈병원 이송을 위해 자주 신고를 하곤 했다. 환자인 남편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90대 남성으로 노환과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였다.

 

그러나 노쇠했음에도 분리형 들것을 세 칸이나 늘려야 할 정도로 키가 크셨고 얼굴 골격이나 다부진 체격을 보니 젊었을 땐 꽤 남자답고 멋있으셨을 것 같았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땐 구급대원이 부축하면 구급차에 직접 올라타기도 했었지만 출동이 거듭될수록 컨디션이 점점 나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사흘 전 출동 땐 말씀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눈만 겨우 뜨고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르신 어디가 불편하세요? 어지러우세요?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눈을 깜빡거려 보세요”

 

환자는 힘겨운 움직임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추셨지만 남은 기력을 모두 쏟아낸 듯 보였다. 나는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백발이 된 파란 눈의 아내는 보훈병원으로 이송하는 내내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다. 타인의 눈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기저귀까지 찬 산송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멋진 남편, 훌륭한 가장의 모습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이 이리 빨리 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흘 전에도 병원에 모셔다드렸는데…’

 

서둘러 구급차를 세워 집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환자는 숨을 거뒀고 눈을 뜬 채로 황망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남편분… 심장이 멈춘 상태입니다. 강직도 확인되고요. 소생술을 원하시나요?”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남편이 사망한 지 4~50분은 지났어요. 소생술은 원치 않습니다”

 

다시 한번 부인에게 유감의 뜻을 전하고 고인의 눈을 감겨드리면서 마지막 예를 표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인으로 살다 해방을 맞이하고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서른 즈음에 한국전쟁에 참전해 숱한 죽음과 고난을 겪은 우리들의 할아버지가 오늘 숨을 거두셨다.

 

그도 우리처럼 젊고 찬란했던 시기가 있었으리라. 그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소방방재신문 (http://www.fpn119.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소방방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