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남부와 중부지역을 오가며 쏟아진 ‘물폭탄’ 때문에 도심은 물론 산간과 농촌 등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물에 빠진 피서객을 구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소방관이 순직하는 등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소방은 대응에 집중했다. 특수대응단을 전진 배치하고 가용할 수 있는 소방력을 동원해 인명구조와 실종자 수색 등에 나섰다.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는 예찰 활동을 진행했고 폭우가 할퀸 지역을 복구하는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119플러스>가 폭우에 따른 피해 상황과 시ㆍ도 소방본부별 대응, 관련 사건 등을 짚어봤다.
기록적인 폭우로 38명 사망… 4명 실종
전국을 강타한 폭우로 관련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20일 오전 8시까지 사망 38, 부상 8, 실종 4명 으로 집계됐다.
이재민 수도 늘었다. 8월 1일부터 누적된 이재민은 14개 시ㆍ도 5251세대 9261명, 일시 대피자는 5212세대 1만766명이다.
하천 등이 범람해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은 곳도 많았다. 피해 시설은 4만5922건으로 공공시설이 1만8161, 사유시설의 경우 2만7761건으로 조사됐다.
사유시설 피해는 ▲주택 7752 ▲비닐하우스 1만6014 ▲축사ㆍ창고 등 3995건 등으로 집계됐다. 공공시설의 경우 ▲도로ㆍ교량 5800 ▲하천 2629 ▲저수지ㆍ배수로 2004 ▲산사태 2061건 등이었다.
전체 피해 시설 중 85.2%인 3만9133건이 응급복구됐다. 이날 기준 주요시설 응급복구 현황을 보면 도로 133건과 하천 6곳이 복구가 완료됐다. 철도 12개 노선 가운데 10개 노선도 복구됐다.
8월 8일 전북 장수군 번암면 교동리에선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돼 50대 부부가 숨졌다. 또 섬진강 제방이 터져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ㆍ곡성ㆍ광양, 경남 하동 등 섬진강 수계에 사는 주민들이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소방청은 8월 1일부터 16일까지 장비 1만543대와 인력 3만1명을 투입해 현장에서 2070명을 구조했다. 또 1만1413t을 급ㆍ배수했고 낙석 등 위험요인에 대해 6052건을 안전조치했다.
전국 강타한 폭우, 소방 대응은?
올여름이 던진 물폭탄에 소방은 직격탄을 맞았다. 동료 소방관의 순직, 실종도 모자라 대응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되고 있다.
연이은 폭우로 피해가 발생하자 소방은 선제 대응에 나섰다.
소방청(청장 정문호)은 8월 2일 오전 2시부터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을 가동했다. 인명구조와 실종자 수색을 위해 중앙과 전국 시ㆍ도 소방본부의 인력, 장비가 신속하게 지원될 수 있도록 소방력도 조정했다.
각 시ㆍ도 소방본부도 분주히 움직였다. 비상단계를 1단계에서 2단계 이상으로 높이고 인명피해 우려가 높은 지역에 특수대응단을 전진 배치했다. 또 신고 폭주를 대비해 상황실 접수대를 늘리고 가용할 수 있는 소방력을 동원해 인명구조와 수색 등 활동을 펼쳤다.
피서객 구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 김국환 소방장
올해 여름은 소방에 잔인한 기억을 남겼다. 물에 빠진 피서객을 구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소방관 1명이 순직했다.
7월 31일 오후 2시 49분께 전남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에서 피서객 A(31)씨가 물에 빠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순천소방서 산악119구조대는 이날 오후 3시 18분께 현장에 도착해 수색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계곡으로 들어간 고 김국환 소방장(29)이 A 씨를 구하다가 갑자기 큰 물살에 휩쓸리며 안전줄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소방은 특수구조대와 헬기 등을 투입하고 하류에서 의식을 잃은 김 소방장을 발견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급류 휩쓸려 실종된 소방관 18일 만에 숨진 채 발견
8월 2일 오전 7시 30분께 구조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이 도로 유실과 함께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도 발생했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서대마을 주택매몰 현장에 출동하던 중 충주소방서 소속 송성한 소방사(30)가 급류에 휩쓸렸다.
그는 도로 침수로 차량 진입이 어려워지자 상황 확인을 위해 차에서 내렸다. 이후 갑자기 도로가 무너지면서 변을 당한 거로 알려졌다.
8월 10일 오전 10시 10분께 충주시 산척면 하천 수해 복구 현장에서는 송 소방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우의 모자가 발견됐다. 이후 18일 동안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강배체험관 인근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이 지점은 실종된 장소에서 약 8.7㎞ 떨어진 곳이었다.
충북소방본부는 송 소방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소방교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기로 했다. 장례는 유족과 협의해 충청북도장(葬)으로 치를 예정이다. 그는 지난 2018년 11월 구급대원으로 임용돼 충주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해 왔다.
부산 지하차도 사고 부산소방 등 2곳 압수수색…
“소방관에 책임 전가 말라” 국민청원도
쏟아져 들어온 빗물로 3명이 숨진 부산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부산소방재난본부 등 관계기관이 경찰로 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소방관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아 달라”는 글이 국민청원에 올라 오는 등 반발이 이어졌다.
7월 23일 오후 10시 18분께 폭우로 부산 동구 초량동 초량 제1지하차도가 물에 잠겼다. 높이 3.5m 지하차도에 갑자기 2.5m가량 물이 들어차면서 차량 6대가 잠겼다.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들은 지하차도 안에서 6명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2명이 숨졌다.
다음날인 7월 24일 오전 3시께 지하차도 배수 작업 과정에서 침수된 차 안에 갇힌 50대 남성이 추가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8시께 부산에는 호우경보가 발령됐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지침과 달리 해당 지하차도에는 차량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거로 알려졌다. 또 지하차도 침수 직후 신고가 빗발치면서 약 40분 동안 신고 접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소방과 경찰의 초동 대처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부산소방은 신고 폭주로 오후 10시 18분 최초 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부산소방에 따르면 지하차도 참사 직후인 오후 9시 32분 44초, 오후 9시 36분 28초, 9시 36분 57초 등 119상황실에 시민 전화가 걸려왔지만 신고로 접수되지 않았다.
부산소방은 “오후 9시 30분부터 약 40분간 신고 폭주로 관련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며 “평소 22대로 운영하던 접수대를 67대로 늘렸지만 3115건의 신고가 들어왔고 이 가운데 1075건(34.5%)만 접수됐다. 평소 대비 신고가 55.7배 증가해 나머지 66.5%가 제때 접수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오후 9시 52분 33초에 소방으로 공조를 요청했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연결되지 않은 신고는 신고자가 전화기를 들고 있으면 ARS 대기 상태로 있다가 상황실 직원이 앞선 전화를 끊으면 연결되는 방식 때문인 거로 알려졌다.
부산소방은 접수 상황과 별개로 구조작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부산소방에 따르면 오후 9시 47분께 지하차도에서 부산도시철도 1호선 초량역 방면 약 30m 거리에 있는 초량119안전센터 소방관 3명이 근처 도로에서 폭우로 고립된 다른 차량 탑승자 2명을 구조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후 9시 57분부터 지하차도에서 침수차량 구조활동을 시도해 근처에 있던 다른 구조대원들과 함께 오후 10시 20분 1명을 구조했다.
오후 10시 13분 상황실에 관련 신고가 접수됐고 오후 10시 18분 43초에 중부소방서 구조대에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오후 10시 20분 21초 펌프차가 출동했다.
동부경찰서로부터 이 사건 일체를 넘겨받은 부산경찰청은 7월 30일 초기 대응 과정을 살피기 위해 부산소방 종합상황실과 중부소방서를 압수수색 했다.
경찰은 119 무전 녹음과 구조상황 보고서, 공동대응 접수 신고 내용 등을 확보한 거로 알려졌다. 신고 폭주로 사고 접수가 세 차례 이뤄지지 못했다는 부산소방 발표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부산소방 등이 압수수색을 받자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관의 누나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8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부산 침수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의 누나입니다’라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청원은 8월 20일 오전 10시 기준 2만5517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
청원인은 “그 위험한 현장에 헤엄쳐 들어간 동생이 요즘 이상할 만큼 말이 없던 이유를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며 “최근 그 사건과 관련한 기사들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압수수색과 조사로 동료 소방관들은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청원인은 “동생도 밤잠을 설치며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정말 수사를 받아야 할 곳이 소방이 맞는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6명을 구조한 소방관들이 과연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한번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주위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일은 하지 말아 달라”며 “어떤 어려움에도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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