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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인가? 전기적 요인인가? 부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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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기사입력 2020-04-20

화재 현장에 도착하면 최초목격자와 인터뷰를 한다. 어디서 불꽃이 최초로 보였는지, 연기는 어디서부터 보였는지, 검은색이었는지, 흰색이었는지… 일반인들과 같은 궁금증으로 화재조사관은 현장을 조사한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은 내용이라도 흘려듣지 않는다. 지나가는 말에도 증거나 화염의 방향성을 추론할 수 있는 진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공장 기숙사 화재

이번 호에 소개할 화재 사례는 겨울이 끝나갈 무렵 어느 공장 기숙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명피해 없이 진압됐다. 공장건물 내부에는 약 9㎡ 남짓 기숙사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기숙사 중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파가 가시지 않은 겨울이라 난방시설이 한창 가동 중이었고 전열 기구도 설치돼 있었다. 겨울철에는 난방시설이나 전열 기구를 소홀하게 관리해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물론 제조물 하자에 기인하거나 전기 공사 부실에서 오는 전선의 불균형 형태로 규명되기도 한다.

 

화재 현장 목격자는 외국인 노동자로 기숙사에서 취침 중 메케한 냄새가 나 밖으로 나와 보니 복도에 연기가 있었고 ③번 기숙사 방문을 열어보니 창문 아래 자그마한 불꽃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③번 방은 사용자가 없는 빈방이었다. 그는 곧 ④, ⑤번 방에서 취침 중이던 동료들을 깨워 밖으로 대피했다.

 

▲ [그림 1] 평면도


이 현장의 경우 ①번 방이나 ⑩번 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만약 ①번과 ⑩번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탈출로가 막혀 자칫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③번 방은 사용하지 않아 내부에 전열기구나 난방기구는 없었다. 방바닥에 난방 필름이 설치돼 있었으나 사용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목격자가 불꽃을 봤다고 진술한 부분과 벽면에 분열한 흔적이 관찰됐으나 직접 화염보다 간접 화염에 의해 형성된 ‘U’ 패턴처럼 보였다. 열 개 방 중 분열 흔적이 가장 심하게 잔류한 방은 ③번 방으로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과 일치했다.

 

▲ [사진 1] 화재장소


연소형태를 파악하라!

소방대 도착 시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내부를 구획한 샌드위치 패널은 모두 소락 내지는 붕괴한 형태로 잔류했다. 샌드위치 패널은 화재진압 측면에서도 진압 수가 샌드위치 패널에 부딪혀 반사돼 내부로 침습되지 않아 소화에 어려움이 있다.

 

화재 현장을 조사하는 화재조사관에게도 어려움은 그대로 다가온다.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현장을 발굴하면서 샌드위치 패널을 모두 제거하는 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재조사관은 원인 발굴을 위해 붕괴한 물건이나 구조물을 모두 제거하고 현장을 복원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복원해 가연물 적치 형태, 화염의 진행 방향, 공기 유입경로 등을 파악해야 한다. 또 화재진압 당시 연소 과정과 풍향을 살펴보고 기록해야 한다.

 

화재 현장은 기상예보 같지 않다. 화염에 의해 기류가 바뀌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화재 풍, 즉 빌딩풍이 발생하기 때문에 연소 과정에서 어느 방향으로 바람이 불고 어느 방향으로 화염이 진행하는지를 살펴 조사하면 발화지점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사진 2] 건물 외부


연소 방향과 잔류한 패턴을 비교하라!

소방대 최초 현장 도착 시 연소 상태와 진압 후 연소 패턴을 비교하며 조사하면 가장 좋다. [사진 2]는 건물 입구에서 촬영했다. 가장 많이 붕괴했고 변색한 부분을 봐도 가장 많은 수열을 받은 형태다. 가장 수열을 많이 받았다는 건 그만큼 가연물이 많았고 공기 유입도 원활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샌드위치 패널 건물의 경우 건물 일부가 붕괴하면 공기는 어느 쪽에서든 원활하게 유입된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현장을 조사해야 한다.

 

▲ [사진 3] 건물 내 기숙사

 

[사진 3]은 건물 내부이며 기숙사 10개가 있었던 곳이긴 하나 내부 구획이 모두 붕괴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어느 쪽이 출입구고 어느 부분이 복도이며 각 실은 어떻게 구획돼 있었는지… 참 난감하다. 화재 원인을 규명하려면 붕괴한 구조물을 제거해서 확인해야 하는데 이를 다 치우고 발굴하는 건 화재조사관의 몫이다.

 

이런 경우 건물 철거 작업 시 관계자가 입회해 같이 발굴할 때도 있다. 재건축을 위해 철거할 때는 기계장비를 동원해 건물을 제거하는데 그 시간에 맞춰 현장 발굴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때 발굴 없이 화재 원인을 논할 수 없다. 그냥 화재 원인을 추론한다면 공신력도 실추되고 화재조사관에 대한 신뢰성 또한 추락하고 만다.

 

이 화재 현장의 경우 목격자 진술과 일치하는 패턴이 관찰되고 붕괴한 구조물도 많지 않았다.

 

▲ [사진 4] 발화지점


목격자 진술과 현장을 비교하라!

목격자가 최초 불꽃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지점이다. 다른 부분과 비교해 탄화흔적이 심하게 관찰된다. 가연물이 얼마만큼 있었는지 어떤 구조인지 알 수 없다. 방 벽면과 ‘H’ 골조에 잔류한 흔적도 수열을 많이 받은 형태로 관찰된다.

 

목격자의 진술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진술과 일치하는 부분에서는 조사관도 따를 수밖에 없다. 더 논리정연하고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면 목격자의 진술을 뒤집을 수 있지만 목격자 진술과 화재조사관이 조사한 탄화형태가 일치한다면 발화지점일 가능성이 높다.

 

내부 사용자가 없었을 뿐 기숙사 동 10개 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축조돼 있었다. 전기시설은 실별로 연결돼 통전 되고 있었던 게 확인돼 분전반을 살폈다.

 

▲ [사진 5] 분전반

 

라인 차단기는 확인이 불가한 상태로 소훼 됐지만 그래도 메인 차단기는 있었고 레버(Lever)가 ‘ON’ 위치로 식별됐다. 이것은 통전을 의미한다. 

 

화재로 인해 2차 측 전선 피복이 손상되고 전선 합선이 없어도 염전류에 의해 차단기가 동작해 ‘OFF’ 상태나 ‘Trip’ 상태로 있는 게 통상적인데 이 사건 분전반 차단기는 ‘ON’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장을 발굴하며 소락상태를 확인하라!

사용자가 없어 전열기구나 난방기구가 없었다고 진술했음에도 현장을 살펴보니 전열 기구가 발굴됐다. 전원 코드도 연결된 상태로 잔류해 있었는데 전열 기구의 ON, OFF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경우 탄화잔류물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까지 발굴하면서 소락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어떤 물질이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소락 순서에 의해 화염 진행 방향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진 6] 히터 잔류물


[사진 6]에서처럼 히터 잔류물 중 가연물은 모두 소실되고 미연소 부분만 잔류해 있는 게 확인됐다. 또 주변으로 석고보드가 보였기 때문에 건 전열 기구가 있던 하단에서 발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하나 구조물을 제거하며 확인하니 바닥에 동박이 발굴되고 전선도 확인됐다.

 

물론 대부분의 화재 현장에서 용융점이 높은 구리가 발굴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 생활 전반에서 전기를 사용하고 있고 생활공간이라면 전선이 필수적으로 배선돼 있기 때문이다. 이 화재 현장에서도 전선과 난방에 사용했던 동박 필름과 연결한 전선이 확인됐다.

 

▲ [사진 7] 연결 전선


방바닥으로 연결된 전선 부분과 측면으로 연결된 전선이 확인됐다. 이것은 방바닥의 난방을 위해 동박 필름으로 연결된 전원선으로 추정된다. 

 

▲ [사진 8] 난방 필름(동박 필름)


집중 탄화지점 미연소물을 확인하라!

바닥 부분을 발굴하니 난방 필름인 동박 필름이 발굴되고 일부는 원형으로 유지돼 있었다. 주변 침대 스프링은 수열에 의해 인장력이 없이 납작해진 상태로 잔류해 있다.

 

침대 스프링도 화재 현장에서는 화염 전파 방향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제시해 준다. 즉 스프링 탄성을 잃은 지점과 탄성이 그대로 존재하는 구간으로 나눠 화염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다.

 

▲ [사진 9] 전선 특이점

 

동박 필름을 연결했던 전선에서 특이점이 관찰된다. 특이점이 관찰된 부분 주변으로 탄화 정도가 심하고 잔류한 재가 곱게 연소한 형태로 식별되는 건 장시간 연소했단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화지점으로 추정된 ③번 방이 사용자가 없어 비워놓은 상태였다면 전기 사용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화재조사관은 잔류한 증거를 발굴해 현장을 증거로써 논해야 한다.

 

사용자가 없어도 난방 필름에 전기가 통전 된 게 입증된다면 발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통전이 입증되지 않은 채 무작정 동박 필름 과열이라고 논할 수는 없다. 이런 경우 전선에 용융점이 있다면 미확인 단락으로 치부될 때도 있으나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크고 작은 화재 현장에서 화재조사관은 정확한 증거와 정황으로 논해야 하고 추측성 단어로 현장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발굴 시 나타난 현상과 관계자 진술을 비교하라!

전선의 특이점이 있는 지점에서 좌, 우, 상단으로 연소가 확대됐다면 벽면에 수열 패턴과 소염 구간이 형성돼 있을 것이다. 소염 구간을 확인하라.

 

▲ [사진 10] 소염 구간

 

불길이 닿고 안 닿고 한 부분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바닥과 인접한 부분에 불길이 닿지 않아 샌드위치 패널 네일이 원형으로 약한 수열에 노출한 듯 식별되고 직상부는 군청색으로 변색해 있으며 우측으로 적 산화 현상이 관찰된다. 이런 부분이 특정돼 잔류한다면 발화지점일 가능성이 크다.

 

목격자 진술과 화재조사관 조사내용, 객관적 패턴ㆍ증거 등이 일치한다면 발화지점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 [사진 11] 수열 흔적


③번 방 벽면에 잔류한 수열 패턴이다. 다른 방과 비교할 때 집중적으로 탄화한 흔적이 역력하고 변색 흔적도 장시간에 걸쳐 수열 받은 형태의 군청색으로 변색해 있다.

 

▲ [사진 12] 전선 특이점

 

전선에서 특이점이 관찰된다. 발굴 당시 방바닥에 있었고 전기적 흔적으로 관찰되는 부분이 발굴됐다. 발굴된 전선은 난방을 위해 바닥에 설치한 동박 필름으로 연결돼 있었다. 

 

목격자가 방에 있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밖으로 나와 보니 주방으로 사용하는 방향에서 연소하고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②번 방에서 취침 중이던 외국인 노동자의 진술은 메케한 냄새가 나서 확인하니 ③번 방 창문 아래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다고 했다. 그 부분 샌드위치 패널은 군청색으로 변색해 주변으로 연소 확대된 패턴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진술한 내용과 일치했다.

 

벽면 하단 샌드위치 패널에 나타난 분열 흔적으로 보면 ③번 방에서 발화돼 연소 확대한 것으로 추정되며 발화지점 직 상부에 창문이 있어 화재로 유리창이 파손되면서 공기 유입이 원활해져 급격하게 연소 확대된 화재로 추정된다.

 

▲ [사진 13] 발화지점


증거와 인과관계를 확인하라!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전선이 발굴되고 발굴된 전선에서 단락 흔적으로 식별되는 용융이 관찰되는 건 전기적 요인에 의한 발화로 판단했다. 전체적인 조사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외국인 노동자가 ②번 방에서 취침하다 메케한 냄새가 나서 방 밖으로 나와 확인하니 ③번 방에서 불꽃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③번 방은 비워진 방으로 사용자가 없었다고 하고 전기는 평면도 상 ①번 방부터 ⑩번 방까지 통전 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발화지점에서 자연적 요인이나 화학적 요인 등은 개연성이 적은 것으로 조사됐고 발화지점에 전기 히터 잔해물이 있었으나 발열되지 않는 상태로 식별됐다. 벽면에는 분열 흔적이 나타나 있었고 하단부에는 소염 구간이 일부 형성돼 있는 게 확인됐으며 소염 구간이 형성된 부분에 난방 필름이 연소한 잔류물이 있었다. 일부는 탄화 잔류해 있었다.

 

난방 필름에 전선이 연결돼 있고 그 전선은 소염 구간을 따라 배선돼 있었다. 분열 흔적이 관찰된 중심부 전선에서 단락으로 식별되는 용융 흔적이 발굴돼 전기는 통전 됐던 게 확인됐다. 주변에 난방 필름에 연결된 전선 단락 흔적 외 발열 물질이나 발화요인 등이 발굴되지 않는 점으로 미뤄볼 때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로 추정했다.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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