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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안전 불감증에서 오는 재난일까? 부주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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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기사입력 2020-04-01

부주의란 조심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된다. 불감증은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는 증세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를 두고 부주의인가, 불감증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평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재난은 우리에게서 한층 멀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습관, 게으름, 귀차니즘 등에서 오는 사고는 상당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간과하며, 누구나 무의식중 지나가는 일상 속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안전’. 안전은 기본적인 수칙을 스스로 지키고 상기할 때 비로소 행복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규명되는 화재 원인을 보면 절반 이상에서 부주의와의 개연성이 나타난다. 이번에 소개할 화재 조사 사례는 한 휴게 음식점에서의 사고다.

 

어느 날 일어난 휴게음식점 화재

어느 해 10월 하순께 지하 휴게음식점(다방)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다. 작은 부주의는 재난으로 다가왔다. 평소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멀티코드에서 불이 난 것이다. 멀티코드는 쉽게 구입하고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 있다는 건 그만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간편한 만큼 안전은 잊히기 마련이다. 

 

간단하게 설치하고 의도된 목적대로 사용한다는 생각만으로 안전은 우리도 모르게 묵인되는 경우가 많다.

 

▲ [그림 1] 평면도

 

불이 난 건물 내 휴게음식점의 구조를 살펴보면 테이블과 소파가 설치된 단순한 구조를 띤다([그림 1]참조). 그러나 소파는 가연물질이다. 화재 시 급격하게 연소하는 특성과 유독가스를 생성한다.

 

화재 발생 전 상황 파악

이날 화재는 오전 7시께 발생했고 휴게음식점은 영업 시작 전이었다. 전일은 오후 10시께 영업을 종료하고 퇴근했다는 관계인의 진술이 있었다. 모든 화재 현장이 그렇듯 화재조사관은 원인을 먼저 찾기보다 소거법에 따른 조사 방법을 택하게 된다. 증거를 수집하고 원인을 발굴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화재 원인을 찾겠다는 신념으로 현장을 살피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화재 현장에서 가장 불이 잘 붙고 잘 타는 원인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인위적으로 불을 놓는 방법이 가장 빠르게 불이 붙고 잘 탄다. 화재가 발생한 휴게음식점의 출입문은 전면과 비상구 모두 잠겨있었다.

 

그렇다면 지연점화의 개연성이 있는지, 화재로 인해 수익 발생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인위적인 점화 개연성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 현장은 화재로 인한 수익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연소 부분에 대한 손해만 발생했고 화재보험 가입은 다중이용시설이 가입하는 의무보험이 전부였다.

 

▲ [사진 1] 화재가 발생한 휴게음식점 출입구


내부패턴을 확인하라

내부로 진입하니 연소 흔적은 중앙에 일부, 출입구 우측 벽면 아래 일부가 관찰됐다. 전형적인 인위적 패턴이다. 화재조사관 교재나 시중에 판매되는 수험서에서 볼 수 있는 ‘독립된 발화 개소 2개소’였다. 이는 방화혐의점으로 충분했다.

 

인위적인 지연 착화인지, Drop-down인지, Fall-down인지 주변 구조물과 탄화 흔적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지하의 경우 열기와 열연기가 쉽게 배출되지 않아 형성되는 패턴도 고려해야 한다. 휴게음식점 내 마감재는 천장의 경우 2㎜ 베니어합판으로 마감돼 있었고 탄화된 부분은 주변 장식물이 Drop down 돼 발화된 화재로 판단할 수 있었다. Drop down fire를 확인하기 위해 분열 흔적을 찾아야 하고 분열된 흔적이 있는 중심부 발열 현상이나 출화된 흔적을 찾아야 했다.

 

▲ [사진 2] 내부

 

[사진 2]는 출입구 방향에서 안쪽 정면을 촬영한 것으로 전체적인 연소 형태를 보였다. 특정 지점이 많이 소훼되고 소실된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았고 연소 방향성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하층 화재 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연소 패턴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연료 지배형이든, 환기 지배형이든 화재 현장의 흔적은 찾아보면 달리 나타나는 지점이 있다. 물론 많이 타고 오래 탄 흔적이 반드시 발화부라 단정할 수 없지만 가연물의 양이 비슷하거나 동일할 땐 가장 소훼상태가 심한 지점이 발화부라 할 수 있다.

 

구획된 지하층의 화재는 그 특징이 훈소 화재처럼 잔류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환기 지배형 화재가 잦기 때문이다.

 

발화지점을 압축하라

▲ [사진 3] 주방 앞


[사진 3]의 우측은 주방이고 정면 냉장고에 잔류된 수열 흔적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된 패턴으로 관찰된다. 그런데 일부만 탄화된 형태고 전체적으로 소훼된 패턴은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단에서 하단으로 연소한 흔적처럼 식별되기도 했다.

 

▲ [사진 4] 주방

 

주방은 연소 흔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 있다. 주방 전면 하단에 ‘U’ 패턴이 잔류돼 있다는 것은 전면에 화염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 [사진 5] 분열 흔적


[사진 5]에서는 좌측과 우측에 각각 분열된 흔적이 식별된다. 직접 발화됐는지, 간접 발화됐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 [사진 6] 탄화 흔적 확인


탄화 흔적이 다른 부분에 비해 심하고 ‘V’ 패턴으로 식별되는 부분이 있어 확인해 보니 소파 하단의 목재가 원형으로 탄화되지 않은 채 잔류돼 있었다. 이를 볼 때 직접 화염의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됐다.

 

테이블 위 머그잔과 재떨이 등이 관찰되지만 출화한 흔적은 식별되지 않았다. 지하층으로 화재진압 시 주수한 진압수가 배출되지 않아 [사진 6]과 같이 물이 차 있었다. 바닥에 발화원이 존재한다면 원인 발굴은 녹록지가 않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시간적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주변의 저융점 가연물을 확인해 용융 형태나 변색 흔적을 우선 찾아 발화지점을 특정하기로 했다.

 

▲ [사진 7] 냉장고 수열 흔적


냉장고 수열 흔적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된 패턴을 보였다. 좌측 냉장고는 전체적으로 화염에 노출된 것으로 식별되며 좌측면 목재로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간이 칸막이가 있었지만 소훼 형태가 바닥부터 탄화된 형태로 관찰된다.

 

사물의 연소와 용융 형태를 확인하라

▲ [사진 8] 플라스틱 용융점


붉은색 플라스틱 구조물의 용융 방향은 화염에 노출된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화염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다. 즉 전면에 좌측에서 우측으로 화염이 진행된 패턴으로 식별됐다. 이럴 땐 주변 구조물을 하나하나 살피며 화염의 방향성을 찾아 분열된 흔적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 [사진 9] 수열 패턴 확인


정수기에 잔류된 수열 패턴에선 정수기 전면에서 후면으로 화염 패턴이 관찰되고 측면의 칸막이는 중간 부분이 전체적으로 소훼된 형태로 잔류돼 있었다.

 

▲ [사진 10] 칸막이 소훼 형태


잔류패턴과 사물의 탄화 정도를 확인하라

[사진 9]에서 보듯 정수기 측면에 목재 칸막이로 소훼된 방향과 정수기 측면의 수열 형태가 일치했다. 목재는 바닥부터 탄화된 형태로 잔류돼 있었으나 문제는 배수되지 않은 물이었다. 물 때문에 바닥 부분을 확인할 수 없어 주변 구조물을 치우며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이 땐 주변에 있던 구조물 발굴 전 사진과 발굴 후 사진을 반드시 촬영ㆍ비교해야 한다. 바닥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구조물이 있던 부분을 표시하고 위치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화재진압 후 만 24시간이 지났음에도 화재 현장이 배수가 되지 않은 탓에 바닥에는 진압수가 발목까지 차 있었다. 바닥 부분 탄화 형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파, 정수기, 칸막이 등이 탄화돼 나타난 흔적만으로도 발화부는 분명 소파 뒤, 정수기 앞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배수 작업을 하고 바닥을 확인할까 고민도 했다. 목격자 진술, 출입문 잠금, 화재보험, 전일 영업 종료 후 출입이 없었던 점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범죄 혐의점은 적어 보였다. 발화지점 추정 부분에는 발열체나 화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된 내용으로는 인위적인 착화 가능성은 없었지만 발화지점에 화인이 없는 것처럼 보여 생각이 복잡했다.

 

▲ [사진 11] 탄화 방향 확인


탄화잔류물을 복원하라

발화지점 추정 부분은 분명 소파 뒤, 정수기 앞이었다. 우측에 있는 목재 칸막이는 소파와 정수기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바닥부터 무언가에 의해 탄화됐음을 알 수 있다. 소파 골재인 목재도 하단이 심하게 소훼됐고 소파, 정수기, 칸막이 소훼 상태가 발화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 [사진 12] 칸막이 복원

 

칸막이를 복원한 결과 정수기 측면에 잔류된 수열 흔적과 칸막이 목재가 소훼된 형태가 들어맞았다. 그렇다면 정수기 앞이 발화지점인데 무엇이 있었을까? 화재 원인이 무엇일까? 그냥 알 수 없으니 미상? 이런 경우 화재조사관에게도 살짝은 사명감보다 귀차니즘이 찾아온다.

 

단독화재면서도 연소 확대 피해가 없고 퇴근 시간도 정확하게 확인된다. 출입문은 잠겨 있었고 화재로 인해 수익 발생보다 피해가 더 많은 것으로 판단되기에 간단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화재조사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진실을 규명한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화재조사관으로 근무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기에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지점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손으로 하나하나 지점을 더듬기에는 다소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최대한 손의 감각을 이용해 바닥에 무엇이 있었는지, 작은 모래 하나라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화재조사관의 손에 무언가 감각이 느껴졌다.

 

▲ [사진 13] 멀티코드


수집된 증거물을 확인하라

바닥을 한참 더듬은 결과 멀티코드의 잔해가 손에 들어왔다. 분열 흔적 중심부에 있던 것이다. 특이점은 콘센트 부분은 용융돼 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연결돼 있던 전선은 용융돼 단선이 이뤄진 상태였다. 이 경우 현장에서는 통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잘린 전선을 진단하고 전원 측으로의 연결 여부를 확인한다. 전선이 연결된 경우 전원 측과 부하 측 모두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 [사진 14] 벽면 콘센트


전선을 따라 확인하니 벽면 콘센트에 연결돼 있었다. 이럴 땐 감식과 감정은 분리해서 실시해야 한다. 현장을 감식하고 수집한 증거물을 수집자가 감정한다면 자칫 감성에 젖어 획일화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진 15] 단락 흔적


현장에서 육안으로 발굴된 전선의 용융점을 확인해 보니 단락 흔적으로 보였다. 용융된 부분의 원 전선에 경계가 보였고 반구가 매끄러운 형태로 빛을 내고 있었다. 수거된 전선을 감정 의뢰해 금속조직을 확인하기로 했다.

 

▲ [사진 16] 플러그


[사진 16]처럼 콘센트에 꽂힌 플러그는 한쪽이 용융돼 사라졌고 한쪽만 잔류된 모습이다.

 

▲ [사진 17] 금속조직


감정 결과 주상조직(Columnar Structure)으로 확인됐다.

 

범인은 바로 ‘멀티코드’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보자. 내부에 인명은 없었고 관계자는 전일 오후 10시께 영업을 종료하고 퇴근했다. 화재 당일 “오전 8시께 건물주로부터 전화를 받고 화재 사실을 알았고 현장으로 와보니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출입문은 앞, 뒷문이 모두 잠겨 있는 상태로 침입 흔적은 없었다. 내부의 탄화 형태는 전체적으로 훈소한 형태로 식별되며 정면 출입문으로 진입해 우측 벽면에 분열 흔적이 관찰된다.

 

2차 감식에서 정수기 튜브가 용융돼 누수 현상이 있는 것이 확인되며 바닥에는 약 15㎝ 정도의 물이 차 있었다. 분열 흔적이 관찰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탄화 형태가 나타나 있는 상태이며 분열 흔적이 시작된 지점의 집중 탄화 형태는 소파 하단 뒤, 칸막이(목재), 정수기 측면의 수열 흔적 등으로 볼 때 칸막이와 소파 뒤 하단이 발화부로 추정된다.

 

분열 흔적이 시작된 지점에서 멀티코드 콘센트가 탄화된 채 발굴됐고 플러그 두 개 중 1개는 용융돼 있었다. 나머지 1개는 콘센트 자체가 용융돼 매몰된 상태여서 확인은 불가했다. 하지만 전선이 연결돼 잔류된 것으로 볼 때 플러그 단자는 2개 모두 꽂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선 단락으로 관찰되는 용융 흔적이 또렷하게 관찰되는 점과 연결됐던 전선에서 같은 형태의 용융 흔적이 관찰되는 점 등을 미뤄볼 때 멀티코드 내부의 플러그 받이와 플러그는 접촉 불량 형태로 플러그의 용융 흔적이 잔류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발열, 발화가 진행되면서 전선 단락에 따라 관찰되는 용융 흔적이 잔류된 것으로 전기적 요인에 의해 멀티코드 콘센트 부분이 탄화되며 주변으로 연소 확대된 화재로 판단된다.

 

주변 정수기, 냉장고 등에서 수열을 받은 형태의 흔적이 관찰되는 것으로 볼 때 직접 발열보단 수열에 의한 형태로 관찰되기 때문에 발화 원인에서는 제외한다. 전선과 멀티코드 콘센트 잔류물의 감정 결과 전기적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단락으로 판명됐다.

 

Tip

Drop down fire: 복사열에 의해 가연물이 쓰러져 연소 하는 2차 화재

Fall down fire: 상부에서 화염이나 불꽃이 떨어져 2차로 연소하는 화재

 

경기 부천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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