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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방화복 내구연한 ‘3년’,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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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I Performance Products, Inc.
기사입력 2020-03-23

우리나라에서 특수방화복의 내구연한은 3년으로 규정돼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내구연한은 보급률과 더불어 국회 국정감사나 광역 지방자치단체 의회의 주요 지적사항이었다. 생산일 또는 지급일로부터 3년이 경과한 방화복을 ‘노후 방화복’으로 집계해 노후율이 높은 본부를 질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제는 예산을 충분히 배정해 노후율이나 보급률이 문제로 지적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 시점에서 과연 ‘내구연한 3년’이 적절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소방본부 담당자들은 ‘3년의 내구연한’이 지나치게 짧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멀쩡한 방화복을 두고 새 방화복을 사는 건 낭비라는 거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국 모든 119안전센터는 똑같은 빈도로 출동하지 않는다. 화재가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화복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화복도 있다. 불과 열, 연기로 가득 찬 건물에 들어가는 방화복이 있고 건물 외부에서 대원들의 작전을 통제하는 지휘관의 방화복이 있다.

 

이 모든 방화복의 내구연한을 3년으로 정하는 것은 꽤 많은 방화복을 너무 이른 시기에 노후한 방화복으로 치부하거나 현장에서 퇴출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와 비슷한 구조, 소재를 사용하는 유럽과 북미에서는 통상 3년보다는 훨씬 오랜 기간 방화복을 사용한다. 북미에서는 건물 화재진압용 보호 앙상블의 선택, 관리, 유지에 관한 미국방화협회 표준인 NFPA 1851이 방화복과 기타 보호장비 사용의 최대연한을 규정하고 있다.

 

제조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방화복은 사용을 중지하도록(retire) 하지만 NFPA 1851 기술위원회 소속 한 기술위원은 “이 규정이 사실 방화복의 노후화와는 큰 관계가 없다”고 귀띔해줬다.

 

사용 최대연한을 두는 이유는 건물 화재진압용 보호 앙상블에 관한 미국방화협회 표준인 NFPA 1971의 개정 주기(5년)가 두 번 지나는 동안 방화복이 바뀌지 않으면 구 표준에 부합하는 제품과 최신 표준에 부합하는 제품 사이에서 기능이나 성능상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이 중지된 방화복이 반드시 폐기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NFPA 1851에는 사용 중지된 방화복을 ‘비화재 훈련’에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꽤 출동이 잦은 미국 대도시 소방본부들도 한 번 지급된 방화복은 큰 문제가 없는 한 6~7년 정도를 수선해가면서 입는다. 미국 최대 방화복 제조사에서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주기적으로 화재 출동이 있는 대도시 소방본부에서 사용하는 방화복의 경우 겉감과 안감은 6년 정도, 투습방수천은 최대 4년 정도 성능을 보장할 수 있다.

 

출동이 많지 않은 곳에서 사용되는 방화복은 이보다 훨씬 수명이 늘어나게 된다. 원단 제조사에 따라서는 투습방수천에 대해 7년까지 품질보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투습방수천 제조사들은 자사 제품들에 대해 예상 사용 기간을 제시하지 않으며 “관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개인보호장비는 6~7년 정도 사용하므로 리스 방식으로 조달하는 경우 4~5년 계약은 장비를 지나치게 이르게 반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2002년 스코틀랜드 한 소방본부는 6년 반 동안 사용한 방화복(66회 세탁)의 성능을 재확인하기 위해 마네킹 연소 시험(instrumented manikin test)을 했는데 새 제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화상이 예상되는 결과치를 얻었다. 이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방화복에는 그 자체로 방염성능을 가진 PBI나 아라미드 섬유가 사용되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나 세탁으로 방화복 방염성능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종종 Operation Florian 프로그램을 통해 10년 이상 된 영국의 방화복을 저개발국 소방에 기부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방화복들도 제 성능을 낼 수 있는 제품들이라고 한다.

 

 

작년에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방화복을 적게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연간 2만5천 벌 정도를 구매하는데 직업소방관만 16만명인 일본 소방은 1만8천 벌 정도를 구매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 소방은 대개 소방관 1인당 한 벌의 방화복만을 지급한다. 둘째, 일본 소방에는 정해진 방화복의 내구연한이 없다. 개인보호장비 측면에서 보면 우리 소방이 일본에 비해 좋은 환경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노후율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양보다 많이 구매하는 관행은 서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낭비적인 측면이 강하다. 

 

다른 개인보호장비와 마찬가지로 방화복 역시 ‘언제 기존 지급품의 사용을 중지할 것인지’ 또는 ‘언제 새 제품을 지급할 것인지’ 여부는 형식적인 내구연한에 얽매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장비 상태를 보고 판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차피 개인보호장비 점검이 주기적으로 이뤄진다면 점검을 통해 수명을 판단하는 게 맞지, 장비 수준이 열악하던 시절의 규정을 그대로 유지해 아직 충분히 사용 가능한 장비를 ‘노후장비’로 취급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방화복 역시 방화두건이나 진압용 장갑과 마찬가지로 내구연한이 없는 소모품으로 분류하거나 최대 6~7년 정도의 최대사용 기간을 두되 점검을 통해 필요하면 바로 새 제품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마침 방화복의 점검을 용이하게 하는 표준규격 개정이 예정돼 있으니 이에 맞춰 나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

 

최근 몇 년은 소방장비의 개선과 확충을 위해 많은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제한된 예산 하에서 어떻게 낭비 없이 소방관에게 충분한 보호를 제공할 수 있을지 역시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PBI Performance Products, Inc._ 이진규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19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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