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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주년 소방의 날 특집] “다치고, 또 아프고”…늘어나는 공ㆍ사상 소방관들

최근 5년간 공상 소방관 495명 달해
외면한 국가와 외롭게 싸우는 소방관들
2년 넘도록 국회서 잠자는‘공상추정법’
소방복합치유센터, 공ㆍ사상 소방관 보루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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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영 기자
기사입력 2019-11-01

 

소방관들이 병들고 다치고 있다. 국가로부터 외면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관련법은 2년 전 발의됐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이 다른 상임위로 떠나자 잠자는 법안은 이제 소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 외롭고 힘겹게 싸워온 소방관들의 공상 승인 소식이 들려온다. 길고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그 이면에는 남모를 치열하고도 쓸쓸한 눈물이 숨겨져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5년간 공상을 신청한 소방공무원은 평균 495.8명에 달한다. 이 중 공상으로 승인되는 비율은 90.3% 정도다. 그렇다고 모두가 쉽게 공상처리를 받는 건 아니다. 공무원연금공단과 치열한 분쟁 또는 법정 다툼을 거쳐 어렵게 승인받는 경우도 많다.


위험직무로 순직한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5년간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받은 소방관은 연평균 4명 꼴이다. 지난해의 경우 7명이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았다. 순직의 경우도 어렵게 승인을 받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가장 큰 문제는 공무상 발생한 각종 질병이나 부상을 공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희귀병이나 암 등 각종 질병은 소방공무원들에게 있어 명백한 증명이 힘들다 보니 그 인과관계를 밝히는 일이 쉽지 않다.


공무원연금법 제35조 제1항에서 정한 공무상요양비의 지급 요건이 되는 ‘공무상 질병’은 공무수행 중 공무로 인해 발생한 질병을 뜻한다. 공무와 질병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해야 한다.


다만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건 아니다.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증명이 된다고 보고 있다.


만약 공무원이 공무집행과 관련해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질병에 걸렸다고 주장하면 법원은 공무원 채용 당시 건강 상태나 질병의 원인, 근무 장소에 발병 원인 물질이 있었는지 등을 살핀다.


발병 원인 물질이 있는 근무장소에서의 근무시간과 직무수행 환경 등 공무상 원인이 다른 사유로 유발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게 된다.


이 과정은 철저히 공상을 당한 본인 또는 공ㆍ사상자 가족의 몫이 된다.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한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인을 거부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국가가 소방관의 질병을 외면하고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몇몇 소방관들은 장시간의 법정 다툼 끝에 위험직무순직이나 순직, 공상을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판결이 내려진 고 김범석 소방관이다. 또 지난해 폭언과 폭행을 당한 뒤 숨진 고 강연희 소방관, 무려 800일 이상을 끌다 결국 백혈병으로 공상을 인정받은 장호건 소방교 등이 있다. 또 제주의 한 소방관은 2016년 퇴직 후 공무상 요양승인 신청 불승인 결정을 받았다가 올해 8월 재승인받기도 했다.

 


▲고 김범석 소방관

 

 

2006년 9월 25일 소방관이 된 고 김범석 소방관. 2013년 8월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을 겪던 그는 같은 해 11월 19일 ‘폐와 심장에 전이된 혈관육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 2014년 6월 안타깝게도 세상을 등졌다. 소방관으로 임용된 지 7년 9개월 만의 일이다.


부산남부소방서와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 국민안전처 중앙119구조본부 등에서 근무했던 그는 1021회 출동해 화재진압ㆍ구조 업무로 수백명의 시민을 구했다.


2015년 유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119구조대원으로 근무하면서 재난현장에서 유독성 물질과 유해가스 등에 반복해서 노출된 게 주원인으로 작용해 폐와 심장에 전이된 혈관육종으로 사망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혈관육종은 매우 희귀한 종양으로 유독성 물질 등에 지속해서 노출된 게 원인이 된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고 그 발병 원인이나 감염 경로 등도 분명치 않아 공무에 기인한 질병으로 볼 수 없다”며 고 김 소방관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유족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때부터 유족의 힘든 싸움이 시작됐다. 연금공단의 심의에 불복한 유족은 공무원연금급여재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했으나 2016년 3월 24일 기각됐다. 이어 행정소송을 했지만 2017년 3월 말 열린 제1심 판결에서 법원은 유족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1년 여의 변론 준비를 마치고 2018년 9월에 열린 제2차 소송 변론에서 유족은 소방청 중앙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실의 ‘소방공무원 업무상재해인정을 위한 문헌 검토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공무원연금공단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는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원고(유족) 측에 선고일 전까지 소방관 업무와 혈관육종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학적인 문헌을 찾아 추가할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날 고 김범석 소방관 부친인 김정남 씨는 호소문을 준비해 읽으려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지 못했다. 호소문에는 “신체 건강했던 31살 젊은 청년이 8년간 오로지 소방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며 육ㆍ해상 재난재해 현장 말고는 달리 악성인자를 만들만한 상황이 없었다”면서 “의료기관이 밝혀낼 수 없는 분야라면 그 책임이 국가의 몫이어야 하지 가장을 잃은 유족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이중의 고통을 주는 일이며 일반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다”고 적혀 있다.


또 “제복을 입고 쓰러진 고 김범석 소방관에게 희귀 질병이란 오명으로 그의 이름을 지우지 말아주시고 이 땅의 소방관에게 희망이 있는 미래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다 올해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 취소소송 사건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증거를 종합한 결과 망인의 공무수행과 심장 혈관육종의 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은 부당하므로 항소를 받아들여 1심 판결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망 후 5년 만에 드디어 소방관으로서 명예를 되찾은 것이다. 고 김범석 소방관 아내는 <119플러스>와의 통화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목소리였다.


그녀는 “재판일에는 경황이 없어 결과가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꼭 질 것만 같아 계속 눈물이 났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이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들어졌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구조본부와 동료들, 소방청, 언론, 최인창 총재님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면서 “무엇보다 ‘아이가 덜 서러울 수 있겠구나’, ‘조금 덜 힘들게 살게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더욱더 기쁘고 꿈만 같다”고 전했다.

 


▲고 강연희 소방관

 

 

2018년 4월 2일 오후 1시 2분께 전북 익산역 앞 도로상에 쓰러진 술에 취한 남성을 구급차에 태웠던 고 강연희 소방관.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주취자에게 “XX년아, X까, 공무원 돼봐야”, “XX년들 내가 XX를 찢어서 죽여버려 내가” 등 원색적인 욕설을 들었다.


같이 구급차에 탄 박중우 소방사는 뺨을 맞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물리적으로 제압할 방법이 없던 박 소방사는 경찰에 신고했고 그 사이 고 강연희 소방관은 머리를 5~6대 맞았다.


그날 이후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매일 같이 “머리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딸꾹질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해서 병원을 찾은 그녀는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20여 일이 지난 23일 야간근무 전에 쉬던 그녀는 또 머리 통증을 느껴 남편에게 연락한 후 의식을 잃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던 중 5월 1일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인 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부검을 진행했다. 7월 30일에 나온 결과를 보면 고 강 소방관의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 및 이후 발생한 합병증’이었다.


유족은 순직 심의를 요청했고 8월 30일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심의가 가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10월 23일 소방공무원 직무 특성상 고려될 수 있는 위험직무순직을 신청했다. 그러나 올해 2월 13일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규정한 위험직무순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소방공무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구급대원의 직무가 위험하지 않다고 본 것도 모자라 심사에 현장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소방공무원은 ‘#피_더 펜’이라는 1인 시위를 이어갔다. 3월 4일 고 강연희 소방관의 남편인 최태성 소방관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위험직무순직 재심을 신청했다.


소방공무원의 반발에 정치권의 지적까지 이어지자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유족을 포함한 동료 대원을 참고인으로 참여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4월 29일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가 개최한 고 강연희 소방관의 위험직무순직 재심이 가결됐다. 1년 여의 힘든 싸움 끝에 마침내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을 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월 4일 진행된 안장식에는 많은 동료가 함께하며 고 강연희 소방관의 영면을 기렸다. 이날 고 강연희 소방관과 함께 인화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고 그녀의 위험직무순직 가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정은애 센터장은 대표로 편지를 낭독했다.


“너로 인해 소방에 대해 국민이 많이 알게 됐고 법령 개정까지 이끌어 내게 됐어. 네가 없는 지금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만은… 남은 후배들은 고 강연희 소방경을 기리며 당신의 희생 덕분에 당신 이후 소방관들의 노고에 좀 더 합당한 예우를 받을 거라고 기억하겠지. 살아서도 훌륭했고 죽어서도 큰 빛이 돼준 연희야”


고 강연희 소방관의 남편인 최태성 소방관은 위험직무순직 가결을 받기까지 함께 고생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1년 전 그날로부터 시간이 멈춰진 채 힘들게 지내왔지만 늦게나마 이곳에 오게 돼 이제야 소방관으로서 걸어온 아내의 걸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애써 준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편 고 강연희 소방관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40대 주취자는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장호건 소방교 

 

 

경기도 의정부소방서에서 화재진압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장호건 소방교. 그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다.


2005년에 소방관이 된 장호건 소방교는 10여 년간 구조대에서 근무했다. 평소 그는 담배를 피워본 적도 없고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아 가끔씩 생기는 술자리에서도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또 유해화학물질, 화재, 추락, 붕괴와 같은 다양한 구조 현장을 누빈 그는 평소 운동, 식단관리 등 구조대원으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16년 1월 그에게 고열을 동반한 몸살이 찾아왔다. ‘감기가 왔나 보다’ 생각한 그는 동네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며 버텼지만 몸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행한 피검사에서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피검사 결과 그의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다행히도 막냇동생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그러나 다시금 건강해질 줄 알았던 그의 몸에서 이상반응들이 나타났다.


손톱과 발톱이 모두 빠지고 피부가 점점 검게 변했다. 쑤시고 시린 안구건조증으로 하루 10~20개씩 인공눈물을 써야 했다. 장 소방교 몸에 들어간 동생의 조혈모세포가 몸을 공격하는 ‘숙주 반응’으로 부작용을 일으켰기 때문.


2018년 6월 8일 공무원연금공단에 공상 신청을 했지만 8월 5일 보류 통보를 받았다. 보류 통보 후 연금공단의 담당의사와 가족력이나 근무환경, 근무일수 등 면담을 하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같은해 11월 28일 장호건 소방교는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공무상 요양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최초로 신청한 날로부터 877일간에 대한 요양비를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장호건 소방교는 “제가 공상 승인이 된 것은 저보다 먼저 소송해 주시고 싸워주신 선배님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앞으로도 소방관의 처우가 좋아져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더욱 안전해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전했다.

 


강 모 퇴직 소방관 

 

1982년 12월 소방관이 된 강모씨는 2016년 6월 퇴직할 때까지 제주도 내 각 소방서에서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활동을 했다.


재직 중 난청 증세를 보인 강 씨는 2010년과 2011년, 201년 세 차례에 걸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이때 담당의사는 소음성 난청이 의심된다는 진단과 함께 직업환경과 소음 노출이 원인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놨다.


강 씨는 퇴직 전인 2016년 4월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질병을 이유로 요양 승인을 신청했지만 강 씨의 소음성 난청은 공무상 질병으로 승인받지 못했다.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기각했다. 하지만 2019년 3월에 열린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강 씨의 손을 들어 줬다.


33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사이렌 등 높은 소음에 지속해서 노출돼 난청을 앓게 됐다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소방관 업무가 소음성 난청을 유발할 수 있는 ‘소음노출업무’에 해당한다는 점이나 강 씨의 일상적인 근무 환경에서의 소음 측정치, 소방관으로서의 근무기간, 병원 검사 결과 등에 비춰보면 산업재해보상보허법상의 업무상 질병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강 씨의 소방공무원 업무와 소음성 난청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소방공무원으로서의 ‘공무’와 ‘소음성 난청’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소방관 살리는 선진국의 ‘공상추정법’

 

어렵게 공ㆍ사상을 인정받는 소방관들에게는 법 근거가 필요하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법 체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소방관이 암에 걸렸다면 연관성을 국가가 입증한다. 만약 소방관의 업무가 암과의 연관성이 없다면 이를 소방관 본인이 아닌 국가가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다. 소방관이 질병에 걸렸을 땐 이를 우선적으로 직무와의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셈이다.


미국은 1935년 펜실베니아주에서 최초로 공상추정법을 제정한 후 현재는 50개 주 가운데 43개 주가 심장질환과 폐질환, 전염성질환 등에 대한 공상추정법을 갖고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37개 주에서는 암도 포함하고 있다.


법의 내용은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많은 주에서 질병으로 진단받기 전 최소한의 근무 연수와 임용 시 직업성 질환 증거가 없음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주가 업무상 질환으로 추정되는 암이나 질병의 종류를 제한하고 있으나 개정을 통해 지속해서 추가하고 있다. 또 질병이 업무와 관련 없는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걸 입증해 추정을 깨뜨릴 수 있는 반증조항(rebuttable clause)도 포함하고 있다.


캐나다는 2002년 Manitoba 주가 소방관의 뇌암과 방광암, 신장암, 비호지킨림프종, 백혈병 등에 대한 추정법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전체 13개 주(준주 포함) 중 10개 주(준주 포함)에서 입법이 이뤄졌다.


암과 심장질환, 전염성질환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에 비해 대체로 더 요건이 엄격하다. 많은 주의 추정법은 각 암의 종류별로 각각의 최소근무연수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는 호주의 공상추정법 입법 모델로 이어지기도 한다.


호주의 경우도 2011년 Commonwealth에서 연방기관 소속 소방관들의 암 추정규정을 둔 것을 기반으로 전체 8개 주(자치구 포함) 중 6개 주(자치구 포함)에서 추정법이 제정됐다.


다양한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실제로 노출되는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의 종류와 농도에 대한 측정이 힘듦에도 소방관 스스로가 암에 대한 업무를 입증하는 건 부당하다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호주의 모든 공상추정법은 12개 암에 대해 규정한다. 암별로 최소근무연수를 요건으로 하고 있어 미국과 캐나다보다 엄격하다. 미국,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반증조항을 둬 추정 적용을 배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공상추정법’ 어디까지 왔나…

 

2017년 5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위험직무 종사 공무원에 대한 공상추정법(공무원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 법안에는 소방관처럼 재난이나 재해 현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구호나 수습 업무에 종사한 공무원이 암이나 희귀질병에 걸릴 경우 이를 공무상 질병으로 우선 추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미국 등 선진국처럼 암과 같은 희귀질병에 걸릴 경우 먼저 인정하고 이를 인정 못하겠다면 국가가 나서서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공ㆍ사상 소방관의 직무상 연관성의 입증은 물론 소방관의 복지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 법안에 대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회 검토까지 마친 상태다. 이 검토보고서에는 개정안을 바라보는 소방청과 인사혁신처, 대한의사협회 등의 의견이 담겼다.


소방청은 “공무와 발생 질병 간 인과관계 입증은 현대 의학에서도 어려운데 이를 당사자 또는 그 유족이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당사자와 유족에게 전가하는 것이므로 입증책임전환을 법률에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인사혁신처와 대한의사협회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친다. 인사혁신처는 “공상 추정 및 입증 책임 전화에 대한 입법효과를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시행 중이고 향후 이를 확대할 예정이므로 그 시행 결과에 대한 평가 등 입증책임 전환을 위한 사전 준비와 검토를 거친 후 제도의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업무환경과 질병과의 인과관계 판단을 위한 직업환경 전문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공무상 재해 관련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또 공상 심의 전 작업환경 측정 업무관련성 조사 결과를 심의에 반영하는 특수질병 전문조사제를 운영하는 등 공무상 재해에 대한 공무원의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2016년 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공사심의 전 전문조사제’는 희귀 암이나 백혈병 등 특수질병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작업환경측정 지정병원에 업무연관성에 대한 전문조사 의뢰 후 그 결과를 참고해 공무상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시행 시 모호한 규정과 형평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의사협회는 “질병이란 한순간의 노출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고 오랫동안 노출된 만성적인 환경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등 여러 발병원인이 있음에도 개정안은 일률적으로 3년 이상의 종사자만을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어 인과관계 입증에 따른 구체적 기준이나 판단 근거가 다소 모호해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실제 화재 진압에 한번이라도 노출된 경우 그로 인한 불필요한 노출이 없었다 할 수 없으므로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각종 암과의 인과관계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개정안과 같이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경우 화재진압 등의 부서에 3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에게 암, 뇌혈관 질환 등이 발생하면 공무상 질병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무원연금공단이 인과관계가 없음을 입증하기에는 의학적 측면에서 타당치 않은 상황에서 입증 책임 전환이라는 법리를 도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사료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개정안이 주로 소방공무원 업무에 초점을 맞춰 입증책임 전환을 규정하고 있는 데 다른 유해 환경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의 경우와 형평성 여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타내고 있다.


법안의 검토가 이뤄진 것은 2017년 9월 18일이다. 그 이후부터는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소방관들의 공ㆍ사상자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법안에 대한 관심은 되레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적 대안은 있나…

 

10월 7일 열린 소방청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소방공무원의 건강 질환 문제를 지적하며 소방청의 직업성 질환 입증에 대한 제 역할을 요구했다.


권미혁 의원은 제주에서 33년간 근무한 소방관이 공무상 요양 승인을 인정받지 못하다 올해 초 승소 이후 8월에서야 공무상 요양 재승인받은 사례를 들며 “이는 소방에서 난청에 대한 직업성 질환이라는 판정을 안 해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법원이 (소방청보다) 훨씬 더 정교한 작업을 했다”며 “소방청 차원에서 직업성 질환에 대해 예민하고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정문호 소방청장은 “직업성 질환에 대해 밝혀줄 수 있는 데가 소방청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다”면서 “현재로서는 전문성이 조금 부족하다. (소방)복합치유센터가 설치되면 공무상 요양 질환에 대한 입증 책임이나 입증 자료를 연구해 제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소방복합치유센터는 2023년 운영을 목표로 충북 음성군 충북혁신도시 내에 지어질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화상 치유와 정신건강, 재활, 건강증진 등 4개 센터 중심으로 기능을 특화해 소방공무원 주요 상병을 진료할 계획이다.


특히 소방청이 운영하는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관리시스템’을 관리하며 소방공무원 임용부터 퇴직까지 공직 생애 기간 동안 유해인자 노출과 건강 이력을 관리ㆍ연구하는 기관의 역할도 담당한다.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관리시스템’은 소방공무원 맞춤형 보건서비스 제공과 소방 활동 현장 안전 정보 수집ㆍ분석을 체계적으로 실행해 업무의 효율성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


소방공무원과 특수검진 기관, 정신과 의사(상담사), 현장안전점검관이 정보를 수집하면 ▲출동 관리 이력 ▲특수건강진단 관리 ▲정신건강 관리 ▲보건안전 콘텐츠 등으로 나눠 관리한다.
이 정보들은 차후 소방공무원의 건강 관리와 복지, 공ㆍ사상 소방관의 직무상 연관성 입증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소방청은 “그간 개인이 입증해야 했던 공ㆍ사상 소방관들의 직무 연관성 입증 등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소방복합치유센터 설립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관리시스템 개념도(출처 소방청) © 소방방재신문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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