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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기고]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구급대원 업무 범위. 그래도 생명은 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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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혁 양주소방서 구급대 소방장
기사입력 2019-10-10

▲ 이정혁 양주소방서 구급대 소방장

 화재 예방과 진압을 주로 하던 소방조직은 1980년 10월 대전에서 구급차 한 대를 활용해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최초로 구급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부산과 서울 등 부분적으로 운영되다가 1983년 구급 업무가 소방법상 기본 업무로 법제화돼 전국으로 확대됐다.


시행 초기에는 주로 화재 현장에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단순 이송업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발생한 성수대교ㆍ삼풍백화점 붕괴 등 국가적 재난을 계기로 구급 업무는 소방의 빠질 수 없는 역량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19 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응급구조사ㆍ간호사 등을 꾸준히 특별 채용해 지난 2017년 기준 구급차 1384대, 전문 구급대원 9772명이 활동하고 있다. 중증 환자를 포함한 이송 환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08년 120만 명에서 2017년 170만 명으로 증가했다.


1995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공포는 국내 응급의료체계 현대화의 시발점이 됐다. 이 법률은 기존 병원 중심 응급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각종 사고 현장의 응급환자 상담ㆍ구조ㆍ이송 업무 수행 등 응급구조사 양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90년대 응급의료체계를 시작으로 20년이 지난 현재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는 전혀 개선되지 않아 응급의료체계 발전과는 상반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를 살펴보면 ▲정맥로 확보 ▲기도기 유지 ▲수액 투여 ▲심폐소생술 등 단 14가지로만 한정됐다. 이마저도 지난 2003년 관련 법 개정 이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실제 구급현장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데 폭설이 내린 어느 새벽 동료와 야간 근무 중 상황실로부터 산모 출산 임박 신고가 접수돼 출동했던 날이 떠오른다.


현장 도착 후 산모 검진 시 이슬 맺힘과 양수가 확인돼 분만이 임박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즉시 산모를 편안한 자세로 눕힌 뒤 무릎을 세워 분만을 유도했고 무사히 태아를 출산했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된 산모와 태아는 모두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산모와 태아 모두 건강해 다행이었지만 구급대원으로서 현장에서 신생아 탯줄을 절단하는 등 분만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어 구호를 행하는 자가 불안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만약 상황이 악화됐다면 무면허 의료 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각종 질환과 재난사고 현장에서 병원 전 응급처치 최 일선 인력인 현장 구급대원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계류돼 ‘소극적 응급처치’를 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업무 범위 개정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구급대원 업무 범위 확대와 관련한 법 개정 등이 사회적 이슈인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향후 업무 범위 확대는 중증 환자 초기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고 심정지 환자에게 신속한 전문소생술을 제공하는 등 병원이 아닌 현장에서부터 고품질 응급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거라 예상된다.


그러나 업무 범위가 확대됨에도 구급대원이 환자에게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와 부작용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구급대원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소방청은 체계적인 교육ㆍ훈련으로 구급대원 개인 역량을 향상해야 할 것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출동 중인 모든 소방 구급대원이 행하는 응급처치가 더는 무면허 의료 행위가 아닌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가치로 인식될 수 있도록 구급대원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

 

이정혁 양주소방서 구급대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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