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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는 구급대원’ 폭행 방지 대책 어디까지 왔나

폭행 처벌 방지 위한 개정안만 9건 “국회서 잠잔다”
소방청 대책만으론 한계… 국회 문턱 빨리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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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누리 기자
기사입력 2019-06-10

▲ 고 강연희 소방경의 유해를 안장하고 있는 유가족     ©전북소방본부 제공

 

[FPN 최누리 기자] = 구급 활동 중 취객의 폭행을 당한 뒤 숨진 고 강연희 소방경이 지난 4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묘역에 안장됐다. 고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 2일 주취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해 심적 고통과 불면증, 어지럼증 등을 겪다가 같은 해 5월 1일 뇌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구급대원의 안전과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국회에서는 관련법 개정안을 줄지어 내놓았고 소방청 등 정부 차원의 대책도 마련됐다. 하지만 고 강 소방경 사고 이후 1년이 넘은 지금도 구급대원의 안전 보장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등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소방청도 구급대원 폭행 방지와 지원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구급대원의 폭행을 막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폭행 갈수록 느는데…“맞을 수밖에 없어요”

 

‘119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이하 119법)’에는 누구든지 구조ㆍ구급활동을 방해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현행법상 구급대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으로 소방활동을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구급대원이 주취자 등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4년간의 소방공무원 폭행 사건은 779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215건의 사고가 접수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처벌은 기껏해야 벌금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같은 기간 폭행에 따른 조치 결과를 보면 구속 비율은 4.6%(36건)에 불과했고 95.3%(743건)에 달하는 가해자가 불구속 처분을 받았다. 또 현재 수사ㆍ재판 중인 사건(272건)을 제외하면 벌금(221건)이나 기소유예(25건) 등으로 조치가 끝났다. 

 

고 강 소방경과 함께 근무한 정은애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은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며 “심지어 부엌칼 등 흉기를 몸 일부에 차고 다니는 사례도 있어 구급대원이 요구조자의 눈을 주시하며 응급처치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주취자나 그 가족들은 폭행에 대응하는 구급대원에게 협박을 일삼기도 한다. 실제 “내일 멍 하나라도 들면 가만 안 둔다”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 센터장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구급대원은 폭행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꼼짝을 못 한다”면서 “사실상 폭행을 당하더라도 가만히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국회서 잠자는 개정 법률안만 9건

▲ 소방공무원 폭행방지 입법 추진현황     ©소방청 제공

 

고 강 소방경 사고 이후 국회에서는 구급대원 폭행 사고 방지를 위한 관련 법안이 줄지어 제출됐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은 ‘119법’과 ‘소방기본법’ 등을 모두 합쳐 9건에 달한다.  

 

이 법안들에는 폭행 등 소방활동 방해로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비롯해 구급대원에게 최루액 분사기와 전기충격기 등의 호신 장비를 소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골자가 담겨 있다. 

 

또 욕설 등 모욕을 소방활동 방해에 준해 처벌하는 내용과 소방과 경찰공무원의 현장 협력을 위한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 관련 소송의 지원 범위를 소방활동 책임 피소에서 피해보상 소송까지 확대하는 규정을 담은 법안도 있다.

 

이러한 법안들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큰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고 강 소방경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넘도록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 고심 끝에 대책 내놨지만… “법률부터 정비해야”

 

소방청은 지난해부터 구급대원 폭행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도개선 TF’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않는 못하는 이상 정부가 추진하는 방지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은 구급대원의 폭행 우려 현장에 구급차와 소방차를 동시 출동시키고 소방공무원을 보호하는 내용의 표준작전절차(SOP)를 개정했다. 위급상황 시 버튼을 누르면 119와 112에 동시에 신고할 수 있는 버튼식 자동경보장치도 보급 중이다. 

 

소방과 경찰 간 협조 필요 사안에 대해 공동 대응 등을 골자로 한 현장 협력 매뉴얼도 마련했다. 공무원집행방해죄 양형기준 중 ‘인명구조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부분을 ‘구조ㆍ구급’으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 의견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폭행 피해를 입은 소방공무원의 지원 대책도 강화하기로 했다. 폭행 피해 소방공무원의 민사소송과 요양 처리를 지원하고 심리 상담ㆍ치료 관련 예산을 늘려 지난해 64억에서 올해 100억원으로 확대했다. 인격장애자 판별과 단계별 조치요령,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예방ㆍ관리 등의 내용이 담긴 폭행상황 대처요령 교육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장 대원들은 이런 대책만으로는 폭행 방지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원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공무원은 “구급대원 폭행 시 강력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일부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협박과 폭언, 폭행 등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관련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과의 공조 미흡 문제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소방공무원은 “폭행 예방을 위해 사전 협조 요청을 해도 경찰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서 “주취자가 주먹을 휘두르는 등 눈앞에서 폭행이 발생할 때만 경찰이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지만 국회 차원의 법안 논의는 기약조차 없는 상태다.

 

추가적인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소방공무원은 “구급대원이 주취자 폭행 시 대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규 개선도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급대원의 폭행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시각도 많다.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호신 장비를 사용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도 ‘소방공무원을 폭행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지 않는 한 관련 사건은 지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 소방공무원은 “법안의 시급한 통과도 중요하지만 개정 이후 국민이 구급대원 폭행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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