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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고양 저유소 화재 “모든 게 처음이었다”

- “고양시 1/3 불바다 위기” 보이지 않았던 소방의 작전
- 휘발유 빼며 저장탱크엔 물 넣어… 유일했던 ‘자연 연소’
- 소방 존재 가치 드러낸 최초의 대형 유류 저장소 화재
- “실제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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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기사입력 2018-10-24

▲ 지난 7일 발생한 고양시 저유소 화재 당시 항공에서 소방드론이 촬영한 사진이다. 대규모 저유소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준다.     © 서울소방재난본부

 

[FPN 최영 기자] = 집채만한 불 기둥에 접근조차 어려운 화재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만약 불길이 옆 저유소로까지 번졌다면 반경 5~10km까지는 불바다가 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지난 7일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화재 얘기다. 이 화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건립 이래 가장 큰 위험물 시설 화재로 기록됐다.


이날 동원된 소방력은 경기와 서울, 인천, 강원, 충북소방에 더해 산림청과 공군, 인천ㆍ김포공항 등 414명에 달한다. 현장에 동원된 펌프차와 화학차, 무인파괴방수차 등 각종 소방장비와 헬기 등 민간에서 지원된 장비까지 포함하면 161대가 넘는다.


오전 10시 56분 첫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과 여러 기관들은 16시간 만인 8일 새벽 3시 58분이 돼서야 불길을 완전히 잡을 수 있었다.


신고 접수 시점부터 대응 2단계를 발령했던 소방의 선착대는 9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길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고 1시간 57분 만에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그러나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은 잡을 수가 없었다. 휘발유가 타면서 발생하는 고열로 출동한 소방펌프차는 불이 붙은 탱크 가까이로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고작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물을 쏟아낼 뿐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세기는 너무도 강했다. 유류 화재를 완전히 덮는 방식으로 불을 질식시키거나 냉각하는 ‘폼’(특수 물질을 물과 섞어 거품 형태의 소화약제)은 탱크 내부로 도달할 수도 없었다. 1500℃이상 높은 고온으로 활활 타오르는 화염 탓이었다. 원거리로 방수를 아무리 해도 물은 화점에 닿기가 어려웠다. 직경 28m가 넘는 넓디넓은 표면의 불을 폼으로 덮는 것은 시설 특성상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사실상 화재진압이 어려워 연소물질인 휘발유를 모두 태우는 방법 밖엔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 소방의 현장 대응 조치 사항     © 소방방재신문


이해할 수 없는 폭발로 시작된 불. 이번 화재는 분명 부실한 안전관리가 부른 인재였음이 틀림 없다. 그 부실한 안전시설에서 출발한 화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몸집을 키웠다.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방의 현장 대응 뿐이었다.


화재 당일 소방의 작전 자문을 위해 전문가로 급파됐던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이창우 교수는 "영화 속에 들어갔다 온 느낌"이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화재 현장에 처음 갔을 때 ‘오늘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며 안도했다. 이어 “그만큼 긴박했던 화재 상황에서 국가 비상사태까지 어이지지 않았던 것은 소방의 성공적인 작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화재는 위험물 시설의 부실 관리가 부른 대형 화재였다. 시설관리 등 예방 측면의 미비했던 관련 제도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안일한 대한송유관공사의 대처도 도마 위에 올려졌다. 화재 당시 더 큰 피해를 막은 소방의 작전이 없었다면 ‘재난’ 규모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였음은 분명하다는 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 긴박했던 화재 현장 속 소방의 작전. 그 때의 상황을 <FPN/소방방재신문>이 집중조명한다.


아찔했던 불… 지하에 숨어 있던 위험

 

▲ 고양시 저유소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활활 타오르는 저유소 인근에서 진압활동을 벌이고 있다.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이창우 교수는 “화재가 다른 탱크로까지 이어졌다면 최소 반경 5~10km까지는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면서 “작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위치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에는 총 14기의 위험물 저장탱크가 들어서 있었다. 경유와 등유 휘발유, 혼합유 등 저장된 위험물을 모두 포함하면 7738만ℓ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자칫 휘발유 탱크에서 시작된 불이 다른 저장탱크로 옮겨 붙기라도 한다면 대규모 폭발로 이어져 고양시의 1/3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불이 시작된 탱크는 8.5m 높이 중 3.5m가량이 지상으로 나와 있는 구조다. 지름 28.4m 크기의 유류 탱크 테두리에는 모두 흙더미가 덥혀 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사실 더 큰 위험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지하 구조였다.

 

▲ 저유소 화재가 발생한 고양시 대한송유관 공사 경인지사에 저장돼 있던 위험물 탱크는 총 14개였다. 이날 화재가 인근 탱크로까지 번졌다면 큰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 사진 :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 편집 : 소방방재신문


탱크 바닥에는 약 2m 높이의 공동구가 있었다. 이 공동구를 통해 각 탱크에는 저장된 유류를 옮기거나 빼는 인입관과 배출관이 연결돼 있고 평상 시 관리를 위한 점검구가 각 탱크마다 존재했다. 만일 지하 공동구를 통해 화재가 확산된다면 화재를 진압하는 수많은 대응 인력은 물론 인근 지역도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속전속결… “최상의 전술로 막아냈다”


역사상 최초의 화재 형태이자 최초의 진압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화재 현장에 급파된 전문가들은 화학적 특성을 고려한 자문을 이어갔고 지휘를 맡은 이재열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그 의견을 적극 수렴해 즉각적인 판단을 내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허용되지 않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이재열 본부장이 화재 현장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 경기재난본부


휘발유의 자연 연소, 그리고 유류를 빼는 작전에 동시에 돌입했다. 불이 붙은 휘발유의 용량을 최대치로 줄이는 방법이 가장 빠를 수 있었지만 아래 쪽 공동구와 연결된 유류 배관 때문에 불가능했다. 탱크 하단 0.78m 정도 높이에 위치한 배관까지 불길이 닿을 경우 오히려 화재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 어떤 판단조차 쉽지가 않았다.


현장에서는 지하구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모래를 공간에 채우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그 많은 양의 모래를 단시간에 투입할 수는 없었다. 결국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우선 아래쪽에 위치한 배관을 통해 인접의 빈 저장탱크로 휘발유를 이동시켰다. 연소될 수 있는 휘발유를 최소치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다른 탱크로 배출된 휘발유의 양은 177만ℓ에 이른다.


이후 소방은 아래 연결된 배관을 통해 물을 주입하기로 했다. 아래에서 유입되는 물을 활용해 휘발유를 상부로 밀어 올려 안전하게 연소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너무 큰 압력으로 물을 넣을 경우 휘발유와 물이 뒤집어지는 ‘와류현상’이 생길 수 있어 자칫 불길을 키울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소방은 처음부터 단계별로 수압을 조금씩 올리는 방식으로 천천히 물을 주입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휘발유를 물 위로 띄워 모두 태운다는 그 작전으로 화마와의 전쟁을 이어갔다.

 


외부에서도 긴박한 상황은 계속됐다. 인접 탱크로 연소가 확대되지 않도록 냉각에 주력했다. 경기도와 중앙119구조본부, 산림청 헬기 등도 대거 투입돼 냉각 살수를 도왔다. 인천 공항은 물론 시ㆍ도 소방력과 민간에서 보유한 포소화약제도 총 동원됐다. 이날 7대에 이르는 공항의 고발포차와 소방의 수많은 화학차 등에서 저유소 화재에 사용한 포소화약제의 양은 10만9천ℓ에 달할 정도다.


이창우 교수는 “이번 화재가 하나의 탱크 연소로 끝난 것은 소방의 긴박했던 현장에서의 결단력과 순발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국가적 비상 사태를 막은 대응 작전은 분명 최초의 사고에서 이뤄낸 최상의 전술이었다”고 말했다.


모든 건 처음… “소방 존재 가치 보여준 사고”


올해 소방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위험물 화재나 폭발사고는 14건으로 집계된다. 그간 위험물질 저장 시설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화재나 폭발은 줄곧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화재 규모도 규모였지만 저장소의 형상은 마치 서로가 연결된 대형 폭탄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창우 교수에 따르면 고양 저유소와 같은 위험물 탱크의 화재는 구축된 소방시설로 초기소화를 놓칠 경우 진압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그래서 자연 연소를 시켜 소화하는 방법을 최선으로 본다. 이같은 화재 대응 방법은 세계 소방에서도, 우리나라 소방일지라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유례없는 규모의 화재였기에 대한민국 소방 조직에서도 사실 대응 경험이 전무했다. 현장 대응을 수행한 소방 또한 이번 화재가 그만큼 생소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사고도, 작전도 결국 최초였다는 얘기가 된다.


이창우 교수는 “고양 저유소의 화재는 최초의 화재이자 그 화재를 대상으로 펼친 최초의 진압 전술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제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당시 상황에서의 변수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 이창우 교수가 고양시 저유소 화재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최영 기자


그런 특수성에도 소방의 진압 작전은 보란 듯 성공했다. 현장에서 구상했던 전술은 단 하나의 오류도 발생하지 않았다. 자체 안전시설의 역할은 실패했지만 화재 이후 14개에 이르는 유류 저장탱크로까지 불길이 번지지 않았던 배경은 여기에 있었다.


이 교수는 “이번 화재의 대응은 진압 역사상 손꼽히는 소방의 전술로 기록되고 나아가 국가에 소방이 존재하는 가치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예방 측면의 미비점과 위험성을 우리가 재확인한 것도 중요하지만 소방의 결단력과 통솔력을 통해 국가적 재난을 막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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