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최영 기자] = 마침내 소방장비의 생애주기를 체계화할 수 있는 법안이 탄생한다.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소방장비관리법’이 19일에는 국무회의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곧 정부가 이 법안을 정식 공포할 것으로 보인다.
소방장비의 질을 높이는 건 결국 국민안전을 강화하는 길이다. 성능과 품질이 확보된 소방장비가 잘 관리되면 소방공무원은 더욱 안전한 현장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소방은 소방장비를 구매할 때 직접 규격서를 작성한다. 분산된 시ㆍ도별로 작성되는 규격은 제각기다. 장비 납품에 대한 검사와 검수까지 맡고 있지만 성능과 품질에 대한 전문성 면에서 이 검증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비도덕한 업체들이 산적해 있지만 마땅한 제재조치도 못 내린다는 사실이다. 인증 없는 장비를 공급하거나 소방관을 속이더라도 조달에 따른 부정당 제재만 할 수 있을 뿐 처벌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다.
장비담당자는 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담당자의 전문성은 둘째 치더라도 현장에서 원하는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규격 수준을 조금이라도 올렸다간 특혜 시비에 휩싸이기 일쑤다. 규격 미달이거나 다른 스펙을 가진 장비 업자가 늘 민원을 제기하는 탓이다. 담당자들은 사실 장비 구매 업무를 보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한다.
어디 문제가 이뿐일까. 때마다 시ㆍ도별 구매 가격에 차이를 보이는 소방장비는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올해 국감에서는 소방관들이 구입한 만능도끼가 금도끼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당시 행정안전위원회 이용호 의원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소방조직은 실 구매가 보다 2~3배가량 높은 돈을 주고 장비를 구입했다. 만능도끼와 랜턴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됐다.
소방은 930여 종에 이르는 장비를 보유ㆍ관리한다. 정부부처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표준규격을 설정한 장비는 달랑 33종에 불과하다. 2년 전 감사원으로부턴 시ㆍ도별로 다른 소방장비 기준의 통일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런데도 중앙 조직인 소방청 내 장비 담당 인력은 장비표준이나 헬기 등 분야별 한 손에 꼽힐 정도밖에 없으니 업무는 늘 제 자리 걸음이다. 찰나에 무검사 방화복 유통 사건처럼 이슈가 생기거나 타 기관 감사라도 진행되면 본연의 업무는 마비 수준이다.
315대의 특수차량과 19대의 헬기를 운용하는 경찰은 1정책관, 3담당관 조직에서 150명의 인원이 장비 업무를 본다. 109대 특수차량과 308척의 함정, 헬기 23대를 운용하는 해경도 1국 5과에서 79명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4,751대에 이르는 소방차량과 28대의 소방헬기, 27척의 소방정 등을 운용하는 소방은 일개 과 단위 부서 13명이 전부다.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유재중 의원 발의로 공포를 앞둔 소방장비관리법은 이런 소방장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줄 것이란 희망이자 보루다. 소방차량과 특수장비의 관리 체계화를 이루고 표준화와 전문화를 통해 소방조직 내 산적한 장비 문제를 해소해 줄 단초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만 제정했다고 다가 아니다.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효율적인 조직과 인력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법이 있다 해도 이를 운용할 조직이 없다면 말짱 허당이다. 내년도 하위법령 제정을 거쳐 2019년부터 시행되는 소방장비관리법에 앞서 반드시 조직이 보강돼야 하는 이유다. 장비와 항공, 소방에 관한 정보통신 등 세분화된 업무를 담당할 부서들이 조직돼야 한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소방관이 신뢰할 수 있는 소방장비는 곧 국민의 안전이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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