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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이재홍 기자] = 국정감사를 앞둔 시기, 넘쳐나는 보도자료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든다. 작년에도 본 것 같은데? 재작년에도 있었던 내용인데? 그렇게 최근 몇 년 간, 몇 명, 몇 퍼센트라는 수치만 조금씩 달라진 보도자료는 올해도 어김없다.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자살하는 소방관들, 우울증과 PTSD, 인력 부족, 공상. 매년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다. 소방방재청과 국민안전처를 거쳐, 새롭게 탄생한 소방청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문제들은 계속해서 국회를 통해 지적됐다.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니 지적도 반복되는 것이겠지만, 이쯤 되면 매번 질타를 받으면서도 개선하지 않는 소방조직보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국회에 더 답답함을 느낀다. 국민을 대변한다던 국회의 역할은 고작 지적까지였나?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공약을 바꿔 말해야 할 것 같다. ‘제가 개선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제가 지적하겠습니다’로.
국회의 반복되는 지적과 정부의 지키지 않을 개선 약속, 어쩌면 이 소모적인 도돌이표가 정당 간의 이해관계와 이념 차 때문인가 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신기하리만치 여야의 단합이 잘되는 곳이다. 특히 소방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국민이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소방관, 그들의 처우 개선과 복지 증진에 과감히 반대를 외칠 만큼 무모한 의원은 없다.
그런데도 왜 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채 똑같은 지적만 반복될까? 혹자는 이를 ‘국회의원 나리들의 큰 그림’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야 다음, 그다음에도 계속해서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조소 어린 표현이다.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소방관들을 위한 법안 마련에 고심하고 통과를 위해 애쓰는 몇 몇 의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개선 없는 질책만 반복되는 현실, 그 책임을 고스란히 소방조직에만 물을 수 있을까? 아닌 척, 무관한 척, 고고한 지적자를 자처하는 국회에도 책임은 있다.
정부와 정책을 비판하고 개선의 계기를 마련해야 할 국정감사의 기능은 상당부분 왜곡됐다. 이 자리에 선 의원들은 마치 1년에 한 번 열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만 급급해 보인다. 맥락 없는 호통이 난무하고 속된 말로 까기 위한 질의가 이어진다. 답변을 들을 생각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지적이지, 정부의 답변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의원들의 시원한 질타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 개선이 동반되지 않고 그저 질책에 그칠 뿐이라면, 흔한 개그프로의 숱한 정치 풍자쇼와 다를 바는 무엇인가?
지적이 다가 아니다. 수많은 문제를 지적하고도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도리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위원회 의원으로서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부디 뫼비우스의 국정감사는 올해가 마지막이기를. 이제는 가만히 앉아 소방관들의 눈물을 닦아주라고 호통만 치는 게 아니라, 일어나 손수건이라도 하나 건네는 국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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