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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말 많고 탈 많은 내화충전재, 무엇이 문제인가?
생산부터 시공까지 ‘허점 투성’… 실효성 있는 체계부터 갖춰야
성적서 하나면 만사 OK? 경제성 논리에 ‘부실시공 위험 상존’
이재홍 기자   |   2015.07.09 [15:53]
[FPN 이재홍 기자] = 건축물 내 배관 등 관통부위에 쓰이는 내화충전재가 ‘불량’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설연)이 5개 업체 제품을 선정해 수거ㆍ시험한 결과 이 중 4개 업체의 제품 성능이 법정 기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화충전재는 화재 발생 시 건축물 내 방화구획을 관통하는 배관이나 전기 케이블 트레이 등을 통해 화염과 유독가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된다. 즉, 내화구조의 틈새를 채워 내화성능을 유지하기 위한 자재다.

▲ 건물 내 전선이 관통하는 부위에 적용된 내화충전구조의 모습.     © 소방방재신문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지난 1989년 25만여 가구의 정전 피해를 발생시켰던 월계변전소 화재를 계기로 한전이 자체 구매규격을 제정한 것이 내화충전구조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여러 화재 사례에서 내화충전구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련 법령이 개정돼 왔고 지난 2012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고시로 설비 관통부에도 내화충전구조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현행법상 내화충전재는 국가공인시험기관의 성능 시험을 거쳐 시험 성적서를 받아야만 유통이 가능하다. 이 시험에서는 1,000도의 화염에 120분간 노출시켰을 때 불에 타지 않으며 구조체 온도가 180도 이상 올라가지 않아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4개 업체 제품은 국가공인시험기관인 방재시험연구원(이하 방시연)의 시험을 통과하고 성적서를 받았다. 하지만 건설연이 진행한 시험에서는 120분을 견디지 못하고 불타버렸다.

일각에서는 제조사가 시험용으로 제출했던 것과 다른 저질의 제품을 유통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하지만 관련 분야 관계자들은 사전에 저품질 제품 유통을 걸러줄 수 있는 제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 업체 관계자는 “법에 규정된 대로 시험기관의 성적을 받고 유통했지만, 현장에서 뒤늦게 문제가 된 것”이라며 “그럼 애초에 시험규정을 까다롭게 만들거나 최초 성적서와 다른 제품을 만들 수 없도록 철저하게 공정을 확인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내화충전구조에 대한 관리체계가 터무니없이 허술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불거질 문제였다”고 말했다.

성적서 하나로 3년간 사용… 엉성한 검사체계가 저품질 양산
관련 분야 관계자들은 현행 검사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내화충전재의 시험은 제조사가 정해진 시험기관으로부터 샘플 제품에 대한 시험을 거치고 적합 판정의 성적서를 받게 된다. 이 성적서만 있으면 3년 동안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하다.

내화충전재를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금 내화충전재의 검사체계는 3년에 한 번 어떻게든 성적만 받으면 되는 시스템”이라며 “어떤 공정이든 불량률이라는 게 존재함에도 지금의 체계에서는 몇 번을 떨어지든 한 번만 통과하면 3년 동안 판매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예를 들어 제품 자체의 불량률이 50%라고 해도 운 좋게 통과하면 3년간 판매가 가능한 게 현실”이라며 “그런 제품 100개, 1,000개가 현장에 적용됐을 때 과연 모든 현장에서 제품성능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품질 관리 자체는 업체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어찌 됐건 제품의 성능이 안 나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업체의 잘못”이라면서도 “최초 시험만 통과하면 되는데 굳이 품질관리에 투자할 이유가 있겠는가”라며 “더욱 좋은 품질을 유지하거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없고 제도도 없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더욱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 지난 5월 모 건설사의 아파트 시공현장에서 진행된 자체 성능시험.     © 소방방재신문

공정 확인점검도 없는 관리ㆍ감독 사각지대  
공정 과정에 대한 확인점검도 사실상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내화구조의 인정 및 관리기준’ 고시에는 내화충전구조 제조업자에 대한 공장품질확인점검을 필요한 경우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게 관련 분야의 중론이다.

이렇다 보니 내화충전재 제조업체가 성적서를 받는 것에만 치중할 뿐 양산되는 제품의 품질유지 여부에는 중점을 두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불량 제품 생산 가능성이 있는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거나 타사의 제품을 가져다 유통만 하는 업체가 시험성적서를 받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초 인증 과정부터 관리ㆍ감독 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안전과 직결되는 제품은 인증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내화충전재의 인증 체계는 불량 제품과 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보통 생산제품의 품질 인증 체계는 ‘사전’ 또는 ‘사후’ 감독 방식으로 구분되지만, 내화충전재의 인증 체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엉성한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사전관리 개념의 인증 체계의 경우 생산 제품이 유통되기 전 양산된 제품에 대해 성능 테스트를 거치는 방식이다. 국내 소방용품들이 이러한 형태의 품질 관리를 받고 있다.

사후 감독 방식은 최초 인증 제품의 테스트를 받아 통과하면 해당 업체가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지만, 유통 이후 수거 시험이나 정기적인 검사를 거쳐 품질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사후 방식의 경우 품질관리 능력 여부를 확인하는 사전 공정과정의 검증을 반드시 거치는 게 기본이다. UL과 FM 등 선진 유명 인증 체계가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내화충전재 인증 체계가 언뜻 보면 ‘사후 시스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공정과정에 대한 심사 등 양산 제품의 품질 확보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 부실하게 시공된 건물 내 입상배관 관통부.     © 소방방재신문

시공업계, “경제성만 쫓아 무면허 업체 난립… 부실시공 위험”
시공업계에서도 내화충전재는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허술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어 부실시공을 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품 자체는 문제없더라도 정작 현장에서는 업역 관리가 불분명하게 이뤄지고 무차별적인 하도급까지 성행하고 있어 내화충전재의 성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공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현행법상 내화충전구조의 시공은 미장ㆍ방수ㆍ조적공사업 면허를 가진 전문건설업체만 할 수 있다. 그러나 허술한 관리ㆍ감독체계 아래 ‘무면허 업자’들이 시공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방화구획 전문 공사만 20년 가까이 해 온 A 씨는 “현재 법규에는 전문 면허 업체가 시공하도록 돼 있지만 50%가 넘는 현장이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거치는 상황”이라며 “무면허 업체가 시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무면허 업체가 시공할 경우 부실공사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며 “무면허 업체를 선정했다는 자체는 이미 공사비 절감을 목적으로 내화충전구조재를 등한시하는 실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장 관계자는 “공사비 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시공일정을 앞당기다 보니 2주일의 양생 기간을 거쳐야 하는 방화 실란트 시공을 한나절 만에 끝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 지난달 25일 마곡지구 공사현장에서 열린 내화충전재 성능재시험 촉구 기자회견.     © 전국건설노동조합 제공

현장 감독해야 할 관계자도 전문성 ‘無’
내화충전구조재에 대한 관심도 향상과 전문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은 한 달간 수도권 대형 공사현장을 점검하고 내화충전재가 미설치된 건축물의 전면 재시공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내화충전재 성능 재시험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당시 건설노조 현석호 교육선전실장은 “일부 LH공사 담당 직원들은 내화충전재가 뭔지도 모르고 있더라”며 “공사 감독을 총괄해야 할 LH마저 이런 실정이니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요 건설 기관마저 내화충전구조재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속 강화한다는 국토부, 문제 본질부터 알아야
최근 내화충전구조재의 불량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해당 업체 제품에 대해 재검증한 뒤 인증 취소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부실 사항이 적발될 경우 처벌 대상을 제조업자와 유통업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건축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관련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주무부처가 여전히 내화충전재 품질 관리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간파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화충전재 품질관리나 검사 관련 법 자체가 느슨한데 단속만 강화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단순히 사후 처벌만 강화하며 생색낼 일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 원인에 대한 기본 체계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재홍 기자 ho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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