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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아니어도 괜찮아!
Episode 05.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경기 파주소방서 이숙진   |   2023.12.01 [14:30]

구급대원 7년, 행정업무 7년, 바쁘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번아웃이 찾아왔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후 부속실에 근무하며 불명예 퇴직한 두 명의 관서장을 모셨다. 이 때문에 각종 이슈되는 사건 사고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고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던 것 같다.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런 의욕 없이, 영혼 없이 빈 껍질만 겨우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휴직 전 내 마지막 업무는 소방시설 완비였다. 그 당시 화재배상 책임보험 가입 소급 적용 기간에 관내 신도시가 활성화되면서 다중이용업소 재발급과 신규발급 등 처리해야 할 민원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 와중에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과의 사이 또한 원만하지 않았다.

 

우리 팀 최고 선임이 점심시간 보안 담당자 지정 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 얼굴에 문서를 던지고 화를 냈던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분을 볼 때마다 내게 막말하며 얼굴로 문서를 던진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은 그런 대우를 받으면 누구도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땐 반박할 힘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문제를 제기할 에너지가 내겐 없었다.

 

민원업무도 과부하 상태인데 다중이용업소를 일일이 찾아가 확인해 보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 태반이었다. 업주들도 대다수 비협조적이었다. 

 

관련 법령 연찬이며 기본업무가 숙달되기도 전에 쌓여가는 업무량에 과부하가 제대로 걸렸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새벽까지 잠이 안 오고 기분이 나빠지면서 가슴이 벌렁거려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싶고 마법처럼 나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이 이어졌다. 

 

결국 심계항진이 동반된 불안장애를 진단받고 3개월간 약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도 불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법 해석도 명확하지 않은데 업무적 융통성은 언감생심 부릴 수 없는 호사였다. 

 

융통성을 갖고 일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성격인 데다 관련 법령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로 새로운 일들이 밀려 들어오니 정말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불어 주변에 나를 이해해주는, 내 편인 사람이 한 명도 없던 시절이었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다들 맘대로 해라. 

나도 이제 잘 보일 생각도, 마음도 없다. 그냥 쉬고 싶다. 

아니 사라져 버리고 싶다. 소방서를 그만두고 싶다’

 

이렇게 더는 버티기 힘든 순간까지 치닫다가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구급대로 발령이 나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쫓겨났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그 당시 난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맘대로 하란 식으로 지냈는지 모르겠다.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하고 병원에 이어 7년 넘게 구급 현장에서 실무를 했지만 그땐 구급 현장 업무를 손 놓은 지 8년이 된 상태였다. 기억나는 응급처치라고는 혈압 측정밖에 없었는데 현장에서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너무 겁이 났다. 

 

당장 구급차를 타고 다양한 환자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만날 환자가 만성에 비응급만 있는 건 아니란 걸 잘 알아서 너무 무섭고 막막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마저도 구급 관련 유자격자니 언제라도 구급대원으로서 환자를 보고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그땐 내게 선택지가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당장 휴직이든 병가든 내고 이걸 끊어 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내린 최선이었다. 

 

인사가 난 날 바로 “병가를 내겠다” 하니 인사담당 부서 팀장이 나를 불렀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정을 봐줬어. 

근데 이렇게 인사가 났다고 병가를 내버리면 인사에 불복하는 것밖에 안 돼.

이런 식이면 곤란해”

 

‘아니 내 사정을 언제 봐줬다는 거지?’ 나는 너무 억울했다.

 

 마음이 병들면서 주변 관리를 너무 안 한 게 결국 내 발목을 잡고야 말았다. 그래도 그 당시엔 다음이나 나중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내 평가가 최악이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휴직을 고려하고 있던 차라 병가, 연가를 다 몰아 쓰고 육아휴직까지 해서 1년 6개월을 쉰 후 2015년 복직했다. 

 

쉬는 동안 초반 3개월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약을 먹으며 정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나머지 1년은 소방관이 아닌 초1 학부모이자 일반인으로 잘 지냈다. 가끔 복직하면 당연히 구급 업무를 하게 될 거란 생각으로 구급 관련 공부를 하면서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업그레이드된 응급처치 관련 지식을 재무장하고 복직했다. 마음의 준비가, 아니 의지가 모든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진리였다. 

 

복직한 공간엔 휴직 당시 같은 과, 같은 센터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없었지만 얼마나 많은 술자리에서 내가 회자됐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많이 회복돼 괜찮아졌고 구급 업무에 대한 마음가짐도 준비된 터라 그런 소문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더 솔직하게 뭐라 하든 견딜 만했다.

 

그때 알았다. 번아웃은 무조건 그 연장선을 끊어내고, 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치유가 된다는 사실을…. 

 

‘번아웃은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춘 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어라’가 정답이었다. 하루 이틀 휴가도 크게 리프레시가 되진 못한다. 

 

무조건 그 상태에서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을 찾지 못하면 결국 최후의 선택도 하게 된다. ‘나에게는 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고 좋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이 우울한 순간이 지속되는 날이 오면 인생에서의 쉼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니 꼭 하던 일을 멈추고 그대로 삶에서의 로그아웃이 필요하다. 

 

잘 돌아가는 기계나 컴퓨터도 계속 쓰기만 하면 멈추고 버벅거리는 순간이 분명 온다. 배터리 방전상태를 벗어나려면 인생의 리셋도 필요하다. 

 

리셋해야 다시 새롭게 또 한동안 열심히 달릴 수 있으니 직장에서도 쉼표, 다시 말해 리셋이 필요한 순간엔 과감하게 멈춤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하고 싶은 것도, 하다못해 먹고 싶은 것마저 없는 상태로 무기력하다면 ‘내가 번아웃이구나’ 받아들인 뒤 그 자리에서 멈추고 쉬어야 한다. 

 

번아웃은 시간이 약이 아니고 견디면 낫는 병도 아니다. 지금 내가 멈추고, 쉬고 충전해야 할 시점을 알려주는 마음의 신호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 그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뷔’가 과거 번아웃이 와서 “‘쉬려면 내가 다쳐야겠구나’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한 인터넷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오랜 시간 열정을 다해 뛰기만 했을 거다. 우리가 TV로 보는 그들의 화려한 모습은 잠깐이었겠지만 몇 분의 무대 공연을 위해 며칠, 몇 년을 열심히 연습한 그들은 이미 너무 지쳤을 테다.

 

은퇴한다고, 잠시 쉰다고 하면 사람들은 너무나 아쉬워한다. 

 

“지금 한참 정상인데 왜 쉬려고 해요?” 

 

그러나 그들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노력한 시간을 우린 정확히 모른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들고 무기력한 번아웃을 만난 당신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 유일한 해답은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무조건 쉬어라’다. 그래야 또 다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또다시 나아갈 수 있다.

 

경기 파주소방서_ 이숙진 : emtpara@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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