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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자연발화인가? 화재조사관의 착각인가? 미상의 원인인가?”
게으름이 주는 경각심!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2021.02.23 [09:40]

국민이 생각하는 자연발화는 어떤 물질이나 물건이 사람의 고의성이나 부주의 없이 불에 타는 현상을 말한다. 자연적 발화나 화학반응에 의한 자연발화를 통틀어 자연발화로 인식하고 있다. 화재조사관은 자연적 발화 열과 자연발화를 정확하게 구분해 사용한다.

 

우리나라 국가화재분류 체계에서 자연적 발화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화재, 즉 자연에서 형성된 태양열이나 바람에 의한 마찰열, 돋보기 효과와 같은 인위적 가미가 없는 대자연 그대로 형성된 창조물에 의해 발생하는 열을 자연적 요인에 의한 발화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은 화학반응이든, 전기적 요인이든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연소하는 현상을 자연발화라고 말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을 거다. 사람의 행동이나 조치 없이 어떤 사물이 스스로 반응하고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그것은 분명 자연적인 사고가 맞다.

 

화재조사관은 자연적 요인과 자연발화를 반드시 구분해야 하고 열원에 대한 조사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 자연적 요인과 자연발화에 대한 조사나 규명은 화재조사관으로서도 쉽지 않은 명제다. 자연적 요인은 어찌 보면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열원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건 어려움이 있다.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자 할 때 다수의 화재조사관은 소거법에 의해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다. 모든 원인을 소거하고 남는 열원을 화재 원인으로 결론 내지만 열원을 소거했을 때 남는 열원이 없다면 ‘미상’으로 결론 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열원을 못 찾거나 가능성이 있는 열원, 요인이 현장에 없다고 미상으로 처리한다면 연간 발생하는 4만여 건 이상의 화재 사고 중 대다수 원인이 미상으로 결론 날 수 있다.

 

또 원인 미상 화재는 발화지점의 점유자 또는 소유자가 무과실 책임을 주장하며 발화지점만을 다툴 수 있다. 화재로 인한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점유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려는 시도와 나아가 원인에 대한 부분도 서로 다툼과 혼돈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현장이든 화재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다. 이러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내고 원인도 정확하게 밝혀야 하는 고뇌의 마음과 어려움은 화재조사관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자연적 발화 열은 도시화 된 지역에선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니 규명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도농복합도시나 농촌에선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자연적 요인인가?

이번에 소개할 화재 사고는 도시화 된 지역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화학적 요인 중 자연발화로 결론 지은 사건이다.

 

어느 해 3월 중순 아파트 13층에서 오후 2시 30분께 발생한 화재는 관계자가 자체 진화한 후 소방서에 신고했다. 아파트 소유자는 오전 10시께 외출했고 주택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오후 2시 30분께 신고자가 귀가해서 보니 주택 내부에 연기가 자욱하고 거실 소파 위에 놓았던 라텍스 이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라텍스 이불을 화장실로 옮기고 물을 뿌렸다. 정확한 발화 시간은 알 수 없었다.

 

주택에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돼 있었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화재 규모가 작고 훈소 형태로 탄화했다. 소파 위 이불에 국한돼 탄화하고 연소 확대도 없었다. 스프링클러는 작동온도인 72℃까지 도달하지 않아 작동하지 않았다.

 

소유자가 외출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주택 내부엔 연기만 자욱했고 화염은 없었다고 했다. 소파 위에는 열원이나 요인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훈소의 대표적인 열원은 담배꽁초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어느 곳에서도 담배의 흔적이나 라이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화재지점을 모두 치운 현장은 사후 조사와 같아 현장에서 증거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화재지점 탄화물이 모두 치워진 상태에서 화재 원인을 조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인위적인 부주의나 고의성이 있다면 치밀한 계획이 아니고는 증거를 완전하게 감춘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 그것을 찾아내는 게 바로 화재조사관의 몫이다. 탄화한 형태와 연소 패턴 등을 볼 수 없으니 진술에 의존해 현장을 복원하거나 추정할 수밖에 없다.

 

▲ [사진 1] 소파


소파에 잔류한 형상을 살펴보면 바닥은 원 상태로 탄화 흔적이나 수열 흔적이 없었다. 등받이 부분만 열에 의해 경화한 형태였으며 탄화하지 않았다. 소파가 석유화학 물질 임에도 탄화하지 않고 경화한 형태는 수열이 있었으나 과하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서서히 온도가 상승했거나 간접수열에 의한 거로 판단했다.

 

이렇게 잔류한 현장을 보고 화재 원인을 규명해 내라고 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근거로 화재 원인을 규명할 건가? “이 현장은 화재 원인을 밝힐 수 없어요”라고 답하기엔 화재조사관으로서 무책임한 말 같기도 하고 원인을 규명하자니 소설을 쓰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하나하나 확인해 보자!

“소파 위에 있던 이불은 다 어디 있나요?”라고 물으니 “화장실에 갖다 놓고 물을 부었어요”라고 말했다. 화장실을 확인하니 탄화한 이불이 있었다.

 

▲ [사진 2] 탄화한 이불


확인하니 탄화한 이불과 탄화하지 않은 이불이 식별됐다. 겉으로 확인되는 건 불꽃이 있는 유염 화원보다 불꽃 없이 서서히 무염 화원으로 진행한 형태로 판단했다.

 

이불 종류와 탄화 정도를 확인해야 했다. 이불이 캐시미론1)인지, 라텍스2)인지, 목화솜 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석유화학 제품과 천연제품은 탄화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인화 온도가 다르기에 잔류한 탄화형태가 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하나하나 들춰가며 탄화 정도를 확인했다. 소파와 면하고 있는 맨 아래 이불은 열에 의해 누른 정도였고 탄화하지 않았다. 라텍스 이불은 심하게 탄화해 있었다.

 

▲ [사진 3] 탄화 흔적 확인


탄화한 이불 중 탄화 정도가 가장 심한 건 라텍스 이불이고 면 이불은 군소적으로 탄화형태가 나타나 있었다. 

▲ [사진 4] 하단에 있던 이불


하단에 있던 이불은 미연소 상태로 잔류해 있었고 일부 수열에 의해 경화한 현상만 관찰됐다.

 

▲ [사진 5] 이불 놓인 순서

 

이불이 소파 위에 놓인 순서다. 하단에 있던 이불은 미연소 상태고 중간에 있던 라텍스 이불은 군소적으로 탄화한 형태다. 상단에 있던 이불은 전체적으로 고루 탄화한 형태로 확인했다.

 

이불이 소파 위에서 탄화한 형태를 보고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은 ‘부주의’ 또는 ‘방화’다. 이번 사고는 외출 시간과 귀가 시간이 확인되고 현장에 방화와 관련해 연관 지을만한 증거나 증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화재로 인해 수익이 발생하기보단 손해가 더 클 것으로 판단됐다. 연소 현상은 방화보다는 의문점이 많이 남는 화재였다.

 

화재 원인 가능성을 고민하라!

아파트 소파 위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담배꽁초 외 달리 생각나는 화재 원인은 없었다. 하지만 가정 내 흡연자가 없었고 더군다나 주택 내부에 담배나 라이터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뇌리를 더욱 복잡하게 했다.

 

그렇다면 방화? 그건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현장에 잔류한 탄화 흔적만으로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연소시켰을까? 하는 고민에서 접근해 봤다.

 

가정에서 일상적인 용품을 이용해 연소시켰다면 무엇으로 했을까? 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화재조사관은 약간의 가능성도 확인해야 하고 조그만 증거라도 깊이 있게 관찰해야 한다.

 

큰 틀에서 자연발화? 어떻게 고민해야 할까? 자연적 요인에 의한 발화인가? 아니면 자연발화를 가장한 방화인가? 살짝 딜레마(Dilemma)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방화보다는 다른 가능성을 우선 조사하기로 생각하고 이불이 있던 소파 근처를 먼저 살폈다.

 

▲ [사진 6] 발코니


발화지점 주변 구조물을 살펴라!

다른 주택과 특이점은 거실과 발코니 창문이 개방형이고 화초가 많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또 태양 빛이 발코니 외벽 창문을 통해 내부로 비추는 게 확인되고 화초가 무성하게 잘 자라있었다. 발코니에는 발화 열원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다만 외부 창문이 페어글라스3)로 설치돼 있었고 깨끗하게 청소된 상태로 햇볕 투과가 잘 되고 있었다.

 

신고 시간이 오후 2시 30분께고 화재 발생 시간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훈소 형태를 볼 때 장시간 탄화한 거로 판단했고 태양이 정오에 있을 때 혹은 정오를 지난 시간일 수 있다.

 

이런저런 현상을 모두 종합해도 태양 빛이 발화 열원으로 작용하려면 태양광 빛을 한곳에 집약적으로 모으는 현상이 있어야 발열이나 발화가 가능하다.

 

빛을 집약적으로 한곳에 모으려면 돋보기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페어글라스 자체만으로 빛을 한곳에 모을 수 없다. 빛을 한곳으로 모으려면 볼록렌즈가 주변에 있어야 하는데 탄화한 높이에서 딱히 식별되는 건 없었다.

 

천장에 설치된 샹그릴라가 있었으나 각도가 맞지 않는 것 같았고 주변에는 빛을 모을 만한 도구나 구조가 없었다.

 

▲ [사진 7] 조명과 빛


샹그릴라가 있다고 빛이 한곳으로 모이는 건 아니다. 샹그릴라에서 빛이 모였다면 가능성이 있을까? 샹그릴라에 빛을 더하기 위해 장식한 크리스털이 눈에 띄었고 생긴 모양이 돋보기와 유사했다.

 

▲ [사진 8] 샹그릴라


샹그릴라를 거실에서 쳐다보니 창문 상단보다 약간 낮은 높이에 설치돼 있었다. 밖에서 빛이 들어온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확인된다 해도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건가? 라는 숙제는 여전히 남는다.

 

태양광이 샹그릴라를 통해 내부로 빛이 집중되고 발열했다는 건 어찌 보면 추리소설을 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화재조사관 입장에선 모든 가능성을 기록했을 뿐인데 화재를 다루지 않는 사람들은 “야, 소설을 써라.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얘기를 보고서에 쓴다” 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주장하는 원인에 관해 설명하라!

“샹그릴라와 태양 빛의 각도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래?” 그렇다면 태양광이 비추는 빛을 거실 내 소파까지 어떻게 전달한 건지를 설명해야 한다. 태양 빛은 직진성이 있어 발코니 유리창과 샹그릴라를 통해 소파까지 빛이 일직선으로 오기에는 빛의 각도가 맞지 않는다.

 

빛이 소파까지 도달할 가능성을 객관적ㆍ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태양 빛→발코니 창문→샹그릴라→소파로 이어져 발열해 훈소한 형태다’고 한다면 빛의 직진성을 무시한 결과다.

 

현장과 비교해 일치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게 문제다. 태양 빛이 페어글라스를 통해 투과되고 샹그릴라에서 굴절된다면 소파에 빛이 도달할 가능성은 있다.

 

빛은 직진성이 있지만 굴절은 없다. 그러나 어떤 구조물이나 물체가 닿으면 반사되거나 굴절되는 효과가 있어 입사각과 반사각, 굴절각이 다르다면 굴절 빛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샹그릴라 구슬이 볼록렌즈 역할을 했다면 가능하다. 샹그릴라 볼록렌즈에 의해 태양광이 모집돼 집중적으로 소파에 비출 가능성이 있다.

 

▲ [그림 1] 빛의 입사각과 반사각


빛은 어떤 물체에 부딪히거나 통과하면 더 직진하지 못하고 반사되거나 굴절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진술 내용을 종합해 판단하라!

소유자는 라텍스 이불을 일주일 전 세탁해 소파 위에 개어 놓은 채 있었다고 했다. 정오에는 라텍스 이불과 다른 이불을 같이 개어 놓은 소파 부분에 햇볕이 잘 들었다고 한다. 이불은 라텍스 제품과 면 종류 이불이 있었다.

 

그런데 맨 위에 놓았던 이불만 집중 탄화했고 중간 이불은 조금 탄화했으며 맨 아래 있던 이불은 미연소 상태로 잔류했다.

 

진술 내용 중 특이한 건 라텍스 이불을 소파 위에 놓고 3~4일이 지난 후 메케한 냄새가 나기는 했는데 화재 징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보통 메케한 냄새가 나면 다시 세탁하거나 햇볕에 말리는데 거실에 햇볕이 잘 들어 완전하게 건조하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그대로 뒀다고 했다.

 

▲ [사진 9] 사용한 세제

 

세탁에 사용한 세제는 일반적인 세제로 확인됐다. 세탁할 때 첨가하는 과탄산소다와 이산화염소, 차아염소산 등의 성분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세탁할 때 사용한 세제들이 어떤 반응으로 발열하지 않았을까? 확인해 봤다.

 

라텍스 제품의 기공에 잔류해 있던 과탄산소다나 차아염소산이 스며들어 태양열에 의해 건조되고 축열 되면서 발열해 메케한 냄새를 발생하지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있었다.

 

표백제 성분에 있던 차아염소산나트륨 성분은 가성소다와 염소가스를 만들고 매우 불안정한 결정상태이며 용융점은 18℃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에 의해 분해되고 건조된 세탁물에 잔류한 무수물은 폭발 가능성도 있다.

 

산소계 표백제는 탄산나트륨과 과산화수소로 만들며 크로락스와 산소계 표백제를 혼합 후 물이 증발하면 폭발 가능성도 있다.

 

종합해 생각하라!

진술 내용과 현장을 종합해 판단하면 다음과 같다.

 

세탁하고 이불을 개어 소파 위에 올려놨고 3~4일 지난 후 메케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사흘 후 화재가 발생했다. 이불은 세탁 후 건조해 소파 위에 개어 놓은 지 일주일이 됐다. 라텍스 종류와 면 종류의 이불이었다.

 

거실과 발코니 중간 문은 없었고 평소 햇볕이 잘 드는 거실까지 빛이 들어와 따듯했다. 세제는 일반 중성세제와 산소계 표백제, 일반 표백제를 사용했다. 세제의 성분을 분석하니 발화 가능성이나 폭발 가능성이 있었다.

 

라텍스 제품은 천연고무 재질로 기공이 존재하고 세탁 시 사용한 세제가 기공에 머물 수 있다. 건조된 상태에서 보관되고 태양열이 지속해서 창문과 샹그릴라를 통해 비쳤다.

 

정오를 지나며 발생한 화재로 추단되며 직접 발화한 부분에서 화재 원인을 찾는다면 화학반응에 의한 자연발화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태양열에 의해 축열하고 탄화하며 발화한 자연적 요인에 가까운 화재로 기억에 남는다.

 

 

 


1)캐시미론 : 명주, 목화솜의 단점을 보완한 화학솜 

2)라텍스 : 고무나무 껍질에서 나오는 끈적한 액체, 천연고무

3)페어글라스 : 목겹으로 된 유리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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