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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구급일지 Part 10 - 의료지도 의사와의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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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기사입력 2021-01-23

 

의료지도 의사에게 전화할 때 사실 반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통화버튼을 누를 때가 많다. 뭐 전화해봐야 빨리 이송하라는 소리밖에 안 하니 그저 구급일지에 체크 표시를 하기 위한 요식적 행위로 그칠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구급대원들이 얼마나 의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에 저 양반들이 저렇겠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느그 아버지 쓰러져도 그따구로 의료지도할 건가’ 하는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도 많다.

 

그저 내가 하는 거라곤 ‘한 건, 한 건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환자를 처치하고 의료지도 의사에게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

 

며칠 전 20대 추락 추정 환자를 이송할 때였다. 환자는 이송 중에 극도로 상태가 악화돼 호흡이 곧 멈출 듯했다. 제세동기 알람 소리와 우리 구급대원들 긴장된 목소리가 구급차 환자실에 울리고 있었다.

 

“부장님! 환자 상태가 안 좋습니다. 의료지도 좀 받아주십쇼!”

 

나는 운전하랴, 무전하랴 환자실의 구급대원들에게 지시하느라 손과 눈이 바빴지만 나보다 더 정신없는 구급대원을 대신해 의료지도를 연결했다.

 

“OO구급대 소방장 이재현입니다. 1급 응급구조사고 간호사 2명 같이 있습니다. 20대 여성 실신으로 신고 접수됐는데요. 현장 도착 시 의식 수준 stupor, 맥박은 130회, 혈압은 측정 불가, 자발 호흡은 있었습니다. 사고 발생 시각이나 사고 기전은 정확하지 않은데 6층 추락으로 추정됩니다. 안면부 경미한 출혈 흔적이 있는데 비강, 구강에서 관찰되고 안면부 경미한 함몰이 보입니다. 그밖에 골절 소견은 관찰되지 않고요. 지금 OO대병원 외상센터 이송 중인데 계속 상태가 악화되고 호흡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Agonal respiration 양상에 분당 10 정도 rr 관찰돼서 opa 삽입하고 산소소생기로 벤틸레이션 제공 중인데 산소포화도 측정이 안돼 삽관이나 아이젤 삽입이 필요해 보입니다. 분당 70회 Wide qrs vt 관찰되고 Pupil 양측 모두 4㎜ fix 대광반사가 없습니다. 병원까진 15분 이상 소요될 것 같습니다. 의료지도 부탁드립니다”

 

아웃사이더 속사포 랩처럼 환자 상태를 보고하자 전화기 너머로 차분하고 진지한 의사의 지도가 이어졌다.

 

“아, 삽관이 필요할 것 같네요. 가능하시면 인투하시고요. 1회 실패하시면 아이젤 삽입하시고 환기하시고요. 혈압 잡히나요? 안 잡히면 정맥로 확보하시고 500㎖ 수액 투여하세요. 그리고 환자 상태 바뀌면 바로 다시 전화 주세요”

 

환자실의 구급대원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얼마 지나지않아 환자의 심전도는 pea로 바뀌고 coma 상태로 악화돼 갔다. 다시 의료지도를 연결하고 지시에 따라 응급처치를 하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했다.

 

결과적으로 환자는 사망했고 우리의 처치가 도움이 됐다곤 할 수 없으나 한 건, 한 건 출동마다 최선을 다하고 의료지도 의사에게 현장 상황에 대해  진심을 담아 전달하다 보면 우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개선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후배 구급대원들은 우리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처치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생각해 본다.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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