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유은영 기자] =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인천 소방관 중 혈관육종암에 걸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천소방본부 복지지원팀에 바로 연락을 했다. 이만저만해서 김영국 소방관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라 그랬는지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했다. 연락처를 남겼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했다. 이번에도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했다. 연락을 부탁드린다 했더니 조금 지나 전화가 왔다. “김영국 씨 본인이 언론에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아 연락처를 알려드릴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공상ㆍ순직 관련 취재를 해 온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공상이나 순직 심의를 앞둔 경우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응원이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는 일조차 거부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수소문 끝에 김영국 소방장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의 사연이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예상 못 한 답이 돌아왔다.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본부에서 연락받은 거 없습니다. 제게 관심을 주시는데 저야 인터뷰하고 싶죠…” 인천소방은 왜 그에게 묻지도 않고 기자에게 거짓말을 한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공상이나 순직 업무를 맡은 여느 담당자들과 다른 태도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방청이나 소방본부, 심지어 소방서의 복지 담당자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응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자의 관심을 반기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해 줬다. 그렇게라도 공상자나 순직자에게 도움이 되길 누구 보다 바랐다.
김영국 소방장의 사연을 들은 뒤 세상에 그의 이야기를 알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JTBC 뉴스팀의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김영국 씨 사연을 뉴스로 알리고 싶다는 것. 그에게 동의를 얻어 연락처를 전달했다. 6월 6일 현충일 JTBC 뉴스 ‘오픈마이크’ 코너에서 그의 외로운 싸움이 그려졌다. 이후 KBS ‘인간극장’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개월 정도 지난 후에야 김영국 소방장의 공상 심의회가 열렸다. 너무 다행스럽게도 인사혁신처는 희귀병인 ‘혈관육종’을 공무상 요양(공상)으로 인정해 줬다. 이는 혈관육종으로 투병 중인 공무원에게 공무상 요양 승인을 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공상 소식을 인사혁신처로부터 전해 들은 그에게 “축하드려요. 너무 잘됐네요”라고 하니 “심의가 끝나면 기자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괜스레 긴장하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는 정말 뜻밖의 말을 꺼냈다. “기자님, 제가 그동안 여기저기서 기부를 좀 받은 게 있는데요. 그 돈을 도무지 쓸 수가 없어요. 혹시 적당하게 기부할 수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기자님은 잘 아실 것 같아서 여쭙니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우물쭈물하다 기부 가능한 방법을 설명해 드렸다.
그런데 뭔가 걱정이 앞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간 수술이다, 치료다 금액이 만만찮았을 거고 아이들도 있는데 이왕이면 본인이 쓰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에게 “집에선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당연히 알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벌잖아요”라며 그는 수줍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졌다.
좋은 일을 하시는데 이런 건 알려야 한다며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러지 마세요”라며 거절했다. 전화 통화였지만 손사래를 치는 게 느껴질 정도로 완강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고집이 통했던 걸까. 그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문득 이렇게 따뜻한 소방관에게 왜 힘든 병마가 찾아왔는지 원망이 밀려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그저 ‘그의 병이 낫길, 그의 고운 마음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알 수 없는 무력감도 함께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의 가족과 눈을 맞추고, 사랑을 나누고, 멋진 소방관으로 활동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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