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최영 기자] = 지난 2014년 대전 아모레퍼시픽 물류창고 화재. 2015년 김포 제일모직 통합물류센터 화재, 이 두 화재의 공통점은 랙크식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라는 점이다. 두 화재는 각각 50억원과 24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피해를 남긴 대형 화재로 기록됐다.
연이은 화재 이후 우리나라 랙크식 창고 화재 안전성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이후 소방청은 ‘현장중심형 소방활동지원 기술개발사업’을 통해 과학적인 연구 기반의 랙크식 창고 소방시설 기준 개발을 추진했다.
‘샌드위치패널(대형물류) 창고ㆍ공장형 화재확산 분석을 통한 과학적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연구에선 랙크식 창고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화재안전 시스템의 개발도 추진됐다.
경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 연구기관으로, 방재시험연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주)씨엔테크, (주)H2K솔루션, (주)안국E&C, (주)파라텍, (재)한국기계전자시험연구원, (주)비전엔지니어링 등이 협동 기관으로 참여했다.
이 연구에서는 전국 40여 개소 물류창고에 대한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실대형 화재실험을 통한 문제점 분석과 대응방안도 분석했다.
연구진은 물류창고의 화재 위험성을 결정짓는 요소로 ‘가연물의 종류’와 ‘상황’을 지목했다. 우리나라 물류창고는 임대창고와 전용창고로 구분된다. 임대창고의 경우 다양한 물품들이 보관되는 반면 전용창고는 대체로 한정된 종류의 가연물이 보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임대 창고는 화재 위험성이 가장 높은 물품을 소방안전대책 수립 기준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창고 특성 살려 실제 시험 해보니… “위험성 컸다”
연구진에 따르면 미국 FMDS(Factory Mutual Loss Prevention Data Sheet)에서는 고 위험군의 포장재와 내부재질을 네 가지 기준으로 나눈다.
▲판지박스포장 비발포플라스틱(Cartoned Unexpanded Plastic, CUP) ▲판지박스포장 발포플라스틱(Cartoned Expanded Plastic, CEP) ▲판지박스 비포장 비발포플라스틱(Uncartoned Unexpanded Plastic, UUP) ▲판지박스 비포장 발포플라스틱(Uncartoned Expanded Plastic, UEP) 등이다.
연구진의 실제 실험 결과 판지박스포장 발포플라스틱은 초기의 높은 열방출율과 함께 빠른 화재성장 속도를 나타냈다.
특히 연구진은 랙크식 창고의 적재물품 특성에 따른 위험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창고의 적재물품이 3차원 공간의 구조적 배치의 특성을 가져 위험성이 크다고 봤다. 물품 간 형성되는 송기 공간(Flue space)을 통해 급격히 화재가 수직으로 확산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미국 FMDS 8-9 기준에 따라 판지박스포장 발포플라스틱 가연물을 4단 적재 높이로 10m, 천장 12m의 조건에서 화재조기진압용 스프링클러(ESFR sprinkler)를 K-360, 방사압력 0.41MPa로 설치해 실험한 결과 물품 최상단에 화염이 도달하는 시간은 착화 후 약 40초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화재조기진압용 스프링클러는 화염이 도달된 직후 개방돼 방사되긴 하지만 적재 물품이 연소되고 무너져 화재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방지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결과였다”고 밝혔다.
인랙 스프링클러(In-Rack sprinkler)에 대한 실험도 진행됐다. 이 결과 국내에서 사용되는 K80 헤드의 경우 판지박스포장 발포플라스틱 가연물 연소 시 화재진압이 어려웠고 K115 헤드도 상당한 피해를 동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특히 화염과 플룸에 노출되지 않으면 헤드의 반응시간이 늦고 화재가 상부로 진행되더라도 인근의 헤드가 동작하지 않아 화염이 상부로 전파됐다”며 “수평차단막을 설치한 실험에서는 K115 헤드를 모든 송기 공간의 교차지점에 배치했을 때 화재확산 방지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서 랙크식 창고의 적재물품 화재에 있어 40초 이내 극 초기 살수가 진행되지 않으면 화재진압이나 물품보호가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화재 감지ㆍ소화 시스템 개발 성공
랙크식 창고의 위험성을 확인한 연구진은 새로운 감지기술과 소화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극 초기 감지와 진압을 위한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잡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센서 네트워크(Sensor Network)와 지능형 수신반(Smart fire control panel)의 인공지능(AI)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었다.
기존의 창고 적용 화재감지기는 천장에 설치돼 화재 감지에 시간이 걸리고 발생 위치 판단이 어려운 문제점이 있어 랙크 내부에 설치하는 인랙 화재감지기(In-Rack fire detector)를 개발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연구를 통해 개발된 인랙 화재감지기 시스템은 네트워크로 감지 결과와 화재발생 위치 정보를 생성할 수 있고 극 초기에 소화시스템을 동작할 수 있다”면서 “인랙 화재감지기는 다중센서를 통해 연소생성물(열, 연기, CO, 영상카메라)을 감지하며 퍼지로직을 이용한 지능형 화재 판단 알고리즘 탑재로 오동작을 최소화하는 등 높은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감지시스템과 함께 개발된 화재진압용 시설은 집중식 스프링클러(Concentrated sprinkler)다. 이 시스템은 랙크 내부 배관을 일제 살수식으로 구성해 개방형 헤드와 수직 배관을 적용했다.
하부에는 습식배관이 있고 개방형 수직배관과 하부 수평 습식배관 사이에는 전자밸브를 연결해 밸브 개방 시 송기 공간 전체에 살수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또 랙크 하부에 피트(pit)를 구축하고 습식배관과 전자밸브를 수납해 유지관리나 동파방지에 유리하도록 고안했다.
연구진 “국내 넘어 세계적 소방기술 발전 기여 기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거쳐 완성한 종합적인 시스템이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랙크식 창고의 특성을 고려해 탄생한 이 시스템은 화재감지와 스프링클러의 살수 과정에 인지-판단-행동의 인공지능체계를 도입한 지능형 수신반으로 운용된다.
랙 화재감지기 네트워크로 화재발생 위치 정보를 획득하고 수집 정보를 기반으로 집중식 스프링클러 작동을 위한 솔레노이드 밸브의 개방 여부까지 판단한다. 또 화재 확산에 따른 추가 솔레노이드 밸브 개방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도 반영했다.
연구진은 부가적으로 대공간 창고 화재 시 피난을 위한 ‘피난유도 시스템’의 개발도 완료했다. 화재감지와 진압, 피난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화재안전체계를 구성한 셈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실대화재 적용실험에서 이 시스템은 큰 효과를 보였다. 화재감지는 29초, 살수는 34초에 시작해 약 50초가 되는 시점에서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는 것을 확인했다. 화재로 인한 피해도 경미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성과는 소방청에서 실제 실험연구 기반의 실효성 높은 소방시설 기준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이는 화재로 인한 피해 손실 최소화뿐 아니라 물류 산업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 화재감지ㆍ진압시스템 개발을 통해 4차 산업혁명적 소방기술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스프링클러 시스템 개발로 우리나라 소방 기술력을 세계 시장에 홍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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