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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안전장치 없이 납품된 소방 공기호흡기… “논란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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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최영 기자
기사입력 2019-07-25

▲ 사진 좌측부터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 미노언, 하니웰애널리틱스에서 생산하고 있는 공기호흡기 © 소방방재신문

 

[FPN 신희섭, 최영 기자] = 소방청이 수년 전 공기호흡기의 안전성을 높이겠다며 기준을 강화했지만 정작 시ㆍ도 소방본부에서는 안전장치가 없는 제품을 장기간 구매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낳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문제를 두고 소방청에 공기호흡기의 공공계약 전반을 감사하고 제품의 규격 표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공기호흡기는 소방관이 화재 등 사고 현장에서 착용하는 필수 개인안전장비다. 소방관은 물론 요구조자의 생명과도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전성이 우선돼야 한다.


소방청은 과거 일선 대원의 안전과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법적 의무 제품 기준인 ‘공기호흡기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을 개정하고 전방표시장치(이하 HUD)와 급속충전장치, 사이렌 등 세 가지 안전장치를 반드시 설치토록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필수 규격이 신규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7년 동안이나 이 장치가 없는 공기호흡기가 소방관서에 버젓이 보급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함께 모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이슈가 됐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이번 논란의 내막을 집중취재했다.


필수 안전장치 빠진 채 보급된 공기호흡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공기호흡기는 소방관련법에 따라 정해진 ‘형식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 근거에 따라 운영되는 ‘공기호흡기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 기술기준’에서는 제품의 형태와 기능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


해당 기준 제3조에서는 공기호흡기의 사용 시간과 구조 등에 대해 구체적인 기능을 정하고 있는데 사실상 소방용으로 쓰이는 제품과 소방관련법에 따라 소방대상물(건축물 등)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는 제품을 별도 구분하고 있다.

 

▲ 지난 2012년부터 소방관이 사용하는 공기호흡기에 반드시 갖추도록 하고 있는 세 가지 안전장치(사진 좌측부터 HUD, 급속충전장치, 사이렌(수동식)


최근 논란을 낳고 있는 세 가지 안전장치는 이 규정에서 소방용에 한해 반드시 갖추도록 하고 있는 HUD, 급속충전장치, 사이렌 등이다. 규정을 따져보면 소방대상물에 비치하는 제품이 아닌 소방용에는 무조건 있어야 하는 장치로 분류된다.


HUD는 공기호흡기 면체 내부에 설치되는 장치로 용기 내 공기 잔량을 사용자에게 4개의 표시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잔량 표시는 15MPa 이상의 경우 60초마다 10초간 연속 점등되며 15MPa 이하인 경우 1초에 1회 이상 점멸해 사용자에게 공기의 양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급속충전장치의 경우 위급 상황 시 현장에서 사용자끼리 공기를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관이 공기가 부족할 경우 다른 대원으로부터 공기를 공급받아 호흡 시간을 늘려줄 수 있다. 사이렌은 현장 소방관이 혼자 남을 경우 위치가 어딘지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지난 2012년 소방청은 공기호흡기의 관련 기술기준을 개정하면서 이 같은 세 가지 안전장치를  필수 구조로 규정했다. 하지만 최근 이 장치들이 부착되지 않은 공기호흡기가 소방관서에 오랜 기간 납품돼 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확대된 상황이다.


필수 안전장치라는데… 일선에선 ‘갸우뚱’

 

규격과 다른 제품이 소방에 납품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는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일선 소방관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전을 위해 부착했다는 세 가지 장치들이 오히려 현장 활동에 있어서는 불필요한 기능일 수 있어 되레 해당 기준을 강제 규격으로 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 나오기 때문이다.

 

▲ 공기호흡기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 기술기준에서 규정하고 있는 세 가지 안전장치와 소방용이 아닐 경우 이 장치들을 제외할 수 있도록 한 근거 조항     © 소방방재신문

 

지역의 한 장비구매 담당자는 “HUD의 경우 공기호흡기 면체 내부에 장착이 이뤄지는데 전자 표시가 면체 안면부에 비치면서 오히려 현장 활동 시 시야를 가린다는 불평이 현장 대원들 사이에서 이어졌다”며 “이 장치가 있고 없고는 공기호흡기를 사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가격은 수십만 원씩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지역의 구매담당자는 “급속충전장치의 경우 실제 현장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현장에서 다른 대원의 공기를 공급받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 역시 무시할 수 없어 오히려 급속으로 공기를 충전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현장에 남아 있는 것보다 빨리 벗어나 새로운 용기로 교체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화재진압 활동을 하는 소방공무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소방공무원은 “안전장비가 다양한 기능이 있다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기능을 단순한 구조로 갖추고 있는 것이 안전할 수 있다”며 “애초부터 안전장치라는 명목으로 의무규정에 포함된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불합리한 공기호흡기 시장 논란… 왜 불거졌나

 

최근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배경은 국민원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소방청에 시정권고를 한 게 발단이 됐다. 권익위는 미노언이라는 기업이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이하 경기소방)에 공기호흡기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12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공기호흡기의 형식승인을 획득한 미노언은 그간 독점 구조를 띠던 소방 공기호흡기 시장에 신규 진입했다. 경기소방이 지난해 5월 조달청 나라장터에 발주한 공기호흡기 4종(용기, 등지게, 면체, 보조마스크)에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고 당시 42억여 원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하지만 형식승인 획득이 지연되자 결국 경기소방의 납품기일을 맞추지 못했다. 이후 몇 차례 납기일을 연장한 후에야 공기호흡기를 납품할 수 있었지만 경기소방이 제품 납품 전 진행한 검사 과정에서 이물질이 발견돼 불합격 처분을 맞았다. 결국 공기호흡기를 납품하지 못했다.


이후 미노언은 적법하고 타당한 방법으로 납기 연장을 요구했고 경기소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권익위에 민원을 냈다. 이에 권익위는 미노언이 납품한 공기호흡기 용기를 규정에도 없는 검사로 불합격 처분한 것은 초법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권익위는 이번 계약 건 외에도 그간 단일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공기호흡기 관련 공공계약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 것을 소방청에 요구하고 형식승인 기준과 구매규격을 표준화해 시도별 구매 절차가 각기 다르게 운영되는 문제점 등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라고 시정 권고했다.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자 공기호흡기와 관련된 문제점은 언론 보도를 통해 수면위로 떠올랐다. 모 방송 뉴스에서는 공기호흡기 기술기준에서 규정하는 세 가지 안전장치가 없는 공기호흡기를 지역 소방본부들이 구매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경쟁 구도 돌입한 공기호흡기 시장… “소방청이 논란 자초”

 

이번 논란의 이면에는 오랜 기간 단일 업체를 통해 공급돼 온 소방용 공기호흡기 시장에 두 기업이 새롭게 진입한 배경이 있다.


현재 소방관련법에 따라 공기호흡기를 생산ㆍ공급할 수 있는 회사는 수십 년간 대한민국 소방에 공기호흡기를 공급해 온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와 하니웰애널리틱스, 미노언 등 3곳이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소방용 공기호흡기 시장에 뛰어든 두 곳의 신규 기업들은 소방용 공기호흡기 시장 진입을 위한 제품 개발을 모두 완료하고 공기호흡기의 형식승인도 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소방에서 지난 2012년 형식승인 기준에 의무 기능으로 도입한 세 가지 안전장치를 실제 공기호흡기 구매과정에서 모호하게 적용했다는 점이다.


세 가지 안전장치의 적용 유무는 지금 상황에서 시장 판도를 바꾸는 핵심 사안이 된다. 실제 한컴라이프케어는 안전장치 적용 공기호흡기세트와 적용하지 않은 제품 모두를 생산하고 있다.


반면 하니웰애널리틱스는 안전장치가 적용되지 않은 공기호흡기세트 형식승인만 보유하고 있고 미노언은 안전장치를 모두 갖춘 공기호흡기세트의 형식승인만을 획득한 상태다. 이는 안전장치 장착 유무에 따라 납품 가능 업체가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소방에서 안전장치를 갖춘 제품만을 구매할 경우 한컴라이프케어와 미노언만 공급이 가능하고 하니웰은 판매가 불가하다. 반대로 안전장치가 없는 제품 구매 시 미노언은 소방용 제품으로 공기호흡기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납품할 수가 없다. 관련 기술기준에서 의무 사항으로 적용한 안전장치 기준에 맞춰 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공급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꼴이다.

 

게다가 하니웰은 최근 일부 시ㆍ도 소방본부에 공기호흡기를 납품한 상태다. 하지만 이 제품들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시ㆍ도 소방관서에서 안전장치가 불필요하다는 요구에 맞춰 공급된 제품이다. 만약 안전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납품을 문제 삼는다면 하니웰의 판로는 막히게 된다. 이러나저러나 한 종류의 형식승인을 보유한 업체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기호흡기 시장은 수십 년 만에 경쟁체제에 들어섰지만 소방의 어설픈 기준 설정과 장비 구매 행정이 논란을 부추기는 꼴이다. 일선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세 가지 안전장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만큼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구매 규격과 절차 문제 있었다” 인정한 소방청

 

지난 16일 소방청은 현재 공기호흡기의 형식승인과 시ㆍ도 소방본부의 구매규격, 절차 등에 문제가 있다는 권익위의 지적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공기호흡기 뿐 아니라 소방장비의 관리 전반에 대한 시스템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소방청은 “제품의 종류를 보다 다양화해 수요자 선호도에 따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포함,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소방관이 사용하는 장비에 대한 표준규격을 조속히 제정하겠다”며 “소방관서 사용 장비에 관한 규격 제정과 운용을 전담하는 장비기획과를 신설해 장비 표준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희섭, 최영 기자 ssebi79@fpn119.co.kr,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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